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최인아 책방

gowooni1 2017. 11. 3. 14:47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선정릉역에 들렀다. 아이를 낳은 후로 친구는 점심 시간 외에는 도저히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 없어, 우리의 약속은 매우 드물게, 그나마 점심 시간 위주로 이어진다. 모처럼이긴 하지만 만나면 여전히 반갑다. 

"덕분에 선정릉 역까지 와보네. 나, 여긴 처음인 것 같아."

"그래? 지금 계절에 여기 산책하기 좋은데, 밥 먹고 한 번 걸어봐. 가만 있어봐, 좀 추우려나."

만삭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둥글게 나온 내 배를 보며 친구는 말했다.

"아, 그러면 이 근처 최인아 책방 한번 들러봐. 너 분명, 좋아할거야."

"유명한 곳이야?"

"꽤. 모 대기업 부사장 하던 사람이 차린 개인 책방인데, 분위기도 좋아. 여기서 돌담길 따라 선릉역으로 쭉 따라 내려가면 금방 찾을 수 있어."

친구가 링크 걸어준 약도를 보며 선릉역 방향으로 쭉 내려가니 과연, 길 건너편에 뭔가 고즈넉하다고 해야 할까, 앤틱 하다고 해야 할까, 독특한 분위기의 건물 옆에 자그마니 '최인아 책방'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가만 보니 1,2층은 옷 가게인 것 같아서 책방은 어떻게 들어가는 것인가 하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니 건물 오른편에 나무 데크를 깔아높은 입구가 보였다. 입구부터 분위기가 일반 책방과는 사뭇 달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며, '이런 구석진 곳에 책방이...사람들이 과연 찾아오긴 할까?' 싶었는데 올라가서 보니 기우였다. 두개의 층을 한 층으로 튼 것 같이 높은 천장의 내부 공간에는 맞춰 짠 책장에 책이 가득 차 있고 일부는 2층으로 만들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사람들 몇몇이 앉아 책을 읽거나 커피를 주문했다. 



대형 서점 위주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우리 나라에 아직도 이런 개인 책방을 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감격하며 서점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개인 서점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 정확히 말하자면 장점이 한 눈에도 보였다. 출판사에서 로비를 하면 눈에 보이는 곳에 진열해 놓는-잘은 모르겠으나 보통의 서점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방식과는 달리, 서점 주인과 그 지인들이 읽어보고 좋았던 책 위주로 선별되어 진열되어 있다는 점. 그래서 그런지 평소 큰 서점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제목의 책들을 접할 수 있는 게 새로웠다. 그리고 그렇게 선별된 책은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진열될 만큼 가치를 인정 받았기 때문인지 한 번 읽고 금새 내용을 까먹는 여타의 책보다 깊이 혹은 무게가 있는 책이 많았다. 책 하나 하나가 서점 주인에게 가치를 인정 받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고 싶을 만큼 괜찮은 양서라는 것. 사실 이것은 내가 꿈꿨던 방식의 책방인데. 


너무 오랫동안 둘러보아 다음에 볼게 없으면 오지 않을 것이므로 적당한 시간을 둘러본 후 두 권의 책을 골라 계산을 하고 나왔다. 다음에 오면 또 추천 서적의 내용들이 조금씩 바뀌어 있기를 기대하며. 또 하나의 좋은 공간을 발견했다는 즐거움과, 내가 생각한 무언가를 다른 누군가가 이미 하고 있다는 약한 박탈감을 동시에 살짝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내 희망사항을 다른 누군가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미 하고 있어 준다는 것에 한 편으로는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좋은 독립 서점, 개인 서점이 점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의 어떤 멜랑꼴리한 기분이 들때, '아, 그 서점에 가면 이런 날씨에 딱인 책들을 쉽게 만나 볼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언제든 갈 수 있는 특색의 개인 독립 서점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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