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너와 함께 하는 여행 10

요정출몰지역

"요정출몰지역에 가봐. 거기 애들 좋아해." "요정출몰지역?" 이름이 너무 독특해서 무언가 싶었는데 토끼 요정들이 출몰하는 먹이주기 카페로 컨셉을 잡고 이름을 아주 독특하게 잡았다는 그곳. ​ 근데 진입로도 독특해서 올림픽선수촌 아파트가 보이는 하남 외곽 주택가 및 공장 지역을 끼고 좁다란 길을 꼬불꼬불 지나가도 도저히 표지판이 보이지 않더란 말입니다. ​ 네비가 잘 못 알려줬는가 싶어 돌아가려하니 저 구석에 교회 건물이 있고 그 아래 1층에 요정출몰지역이 두둥, 나타났어요. 이런 곳에 있는 것도 신기한데 아침 오픈 시간인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요정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것이 더 신기.ㅎㅎ 물고기 먹이는 돈을 받아요 수질관리 차원이라고..ㅋㅋ 내부는 조그맣게 카페처럼 테이블이 있..

첫 놀이동산

싱가포르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갔을 땐 거기 날씨답게 엄청 습하고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원래 테마파크라는 곳이 환상의 이미지를 심어주니까 싫어할 사람이야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그 분위기를 먼저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영화보다도 애니메이션을 훨씬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마다가스카르 OST가 흥겹게 들려오고 여기저기 캐릭터들이 진짜처럼 서 있는데, 애니메니션의 한가운데로 폭 빠진 것 같은 착각. I like to move it, move it이 들려올 때마다 고개가 앞뒤로 흔들거리며 없던 흥마저 솟아올랐다. 나중에 아기가 생기면 꼭 같이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그곳에서 처음 어렴풋이 했다. 그러다가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건 역시 아기가 태어나고부터다. 아직 돌도 안 된 아기..

캠핑 대신 바비큐

아이가 좀 크면 베짱이 가족이 되어 함께 캠핑을 다니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살자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자연을 누비며 풀벌레 소리를 듣고,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감수성을 키우는 것도 참 좋겠다 싶었다. 그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남편은 부지런히 캠핑용품을 하나둘씩 사다 모았고 나는 어디 놀러 갈 때마다 우쿨렐레를 챙겨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이는 텐트 치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건 좋아했으나 우쿨렐레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편안하고 안락한 콘도미니엄에 가서 자동차 가지고 노는 것을 더 좋아했으며, 고기를 굽기도 전에 숯에 불 붙이는 과정에서 흥미를 잃었다. 역시 계획한 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 아이도 나름의 독립된 인격체니 그 취향을 존중해줘..

타프 신고식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일상 풍경이 바뀌었다고 뉴스에서 떠들었다. 북적이는 여행지 대신 캠핑족이 늘고, 캠핑 예절을 지키지 않는 초보 캠핑러들 때문에 기존 캠핑러들이 소음 등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거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실소가 새어 나왔다. 어쩌면 우리도 그중 하나일지 몰라서다. 하이원에 가서 아이랑 워터파크도 가고 카지노도 구경시켜주겠다는(입장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계획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코로나 때문에 또 변경되었다. 워터파크도, 카지노도 들어갈 수 없는 하이원이라. 그럼 대체 뭐하지, 하다가 근처에 계곡이 많으니 당일치기 캠핑으로 고기 구워 먹고 오는 걸로 결정했다. 지난번 뙤약볕에서 고기 구워 먹는 고생을 한 후 남편은 타프(그늘막)도 질렀다."어차피 우리는 아이 때문에 당분간..

장마 여행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질척이는 아스팔트를 걸으며 길을 가는데 우연히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다. "이번 주말에 비 엄청 온다는데." "이야,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캠핑을 가야 하는데." 으음? 비가 많이 오는 날에 캠핑 가는 건가? 초보 캠핑러인 내 입장에서는 제법 참신한 발상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날이 좋아야만 캠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역시 초짜다운 발상이다. 날이 좋아서 혹은 날이 좋지 않아서 그 모든 날이 너와 함께라서 좋았다는 어느 드라마 명대사처럼, 진짜 캠핑러에겐 날이 좋든 좋지 않든 캠핑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날이 없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가 제법 여행의 중수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던 나는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여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날씨는 없다고 생각했..

초보 캠핑러

산정호수는 남편과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비교적 초창기에 방문했던 데이트 장소다. 그때는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몰랐으므로 상대에게 시간을 들여가며 서로를 알아가야 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이 호수도 뭔가 알 듯 말 듯한 분위기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특히, 호수를 한 바퀴 돌며 얼핏 보았던 콘도미니엄, 절벽 같던 제방, 김일성 별장터, 호수를 한 바퀴 돌다 보면 나왔던 독특한 한옥 등이 아련하게, 한 번 더 방문하여 좀 더 알고 싶은 종류의 어떤 것으로 각인되었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역시 숙박시설. 아이가 제대로 잠을 못 자면 모두의 컨디션이 망가져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없으므로, 산정호수 여행을 하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본 건 그 콘도미니엄..

애 덕분에, 나 때문에

아기를 좀 더 가까이서 보겠다는 마음에 직장 사무실을 집 근처로 옮겼을 때 친구가 말했다. "애 때문에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전부 핑계야." 그게 무슨 말이냐 물었더니 부연 설명이 돌아왔다. "다들 이렇게 말하잖아. 애 때문에 직장을 옮겼다, 애 때문에 회사 때려치웠다, 애 때문에 이사했다, 등등. 하지만 그건 모든 것이 애 때문에 가 아니라 순전히 본인을 위한 일이라는 말이지. 결국 인간은 이기적이거든. 자기가 좋으려고 하는 일인데 정작 본인은 몰라." 그러니까 이 친구의 말은, 애 때문에 회사를 때려치웠다고 말하기 전에, 애를 더 많이 보고 싶은 자신의 마음 때문에 때려치웠다고 말해야 더 정확하다는 거다. 그리고 나더러도 '애 때문에 직장을 옮겼다'같은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와 더 가까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방

친구에게서 급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지금 강원도 가는 중이야. 내일 양떼목장으로 올래?" 이런 반가운 일이. 우리도 내일 강원도에 갈 예정이었던 거다. 양떼목장에서 아이도 놀리고 바람도 쐬면 좋을 것 같아서 냉큼 그러자고 대답하고는 저녁에 남편에게 말했더니, 반가워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거긴 영동고속도로 타야 하잖아. 우리는 고성 가야 해서 속초 양양 고속도로 타야 하는데."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늘 예측불허라서 많은 변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행히 출발 당일 아이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그러나 한참 스티커에 빠져있어서 "스티커!"를 연속 외치는데, 스티커를 안 사주고는 장거리 이동이 어려울 것 같았다. 교보문고에 들러 스티커북을 하나 사주고 겨우 출발을 했는데, 이번엔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갯벌체험

아이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게 되는데 보통 이런 식이다. "우리 아기는 나를 닮아서 갯벌을 싫어할 거야. 뙤약볕에 미끈미끈한 뻘 속에서 노는 거, 생각만 해도 더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닐걸, 아빠 닮았으면 조개 잡고 게 잡는 거 엄청 좋아할 텐데."라며 반박한다. 참고로 남편은 바닷가 도시의 토박이다. 기왕 말이 나온 거 한번 가보기로 했다. 아기가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보기 위함이라기보다 하나의 경험을 더해주고자 함이다. 아이를 다 키워본 인생 선배들이 하나같이 말하기를, 지금 시기에는 아무리 데리고 다녀봤자 나중에 기억도 못한다고 그랬다. 그러나 데리고 다녀봤자 소용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비록 기억을 하지는 못할지라도 바다를 책으로만 본 아이랑 직접 두 눈으로 ..

프롤로그

아기가 두 돌이 되던 겨울, 우리는 스키장에 가기로 결정했다. 아기에게 새하얀 눈밭을, 설경을 보여주자는 명분이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삼 년간 못 가본 스키장 분위기에 대한 그리움이, 명분으로 합리화되었다. 스키는 못 탈지라도 눈썰매장만 가도 충분할 것 같았다. 곤돌라를 타고 산 정상 부근에 조성된 눈썰매장에 아기를 내려놓았을 때, 아기는 그야말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무장을 한다고는 했지만 칼날처럼 스치는 강한 바람과 추위는 난생처음 겪어보는 것일 테니, 어른인 우리도 추운데 두 돌 아기는 오죽하랴 싶었다. 그러나 이내 눈이 부시도록 하얀 눈이 신기하기는 한지 만져도 보고,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보고, 미끄러져 보기도 했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긴 줄을 기다려 드디어 눈썰매를 탈 차례가 되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