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나는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그녀가 결혼 후 독일로 건너간 뒤 약 7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나는 대충 그 애가 일 이년에 한번쯤은 한국에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모처럼 한국에 들어오니 만나자고 했을 때에는
마치 오래 전 헤어진 연인에게서 연락이 온 것 같이 마음이 복잡미묘해져 버렸다.
그 애는 유심을 사지 않아 와이파이존에서 하는 카톡이 유일한 연락수단이었고
우리는 장소와 시간을 정한 채 거기서 만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나기로 했다.
어쩐지 그 애와의 만남은 그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고속터미널 센트럴시티 지하 반디앤루니스 서점 앞 오후 6시.
우리는 다행히 한 눈에 서로를 알아봤는데
그녀는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여전히 순수하였고 조용하였고 천진난만하게 웃었고
말을 예쁘게 하고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웠으며
니트 가디건과 스카프를 좋아하는 패션도 그대로였으니까.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애에 대한 정보는 부지런히 업그레이드 됐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슈투트가르트에 살지 않았고
이제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으며
이제 당분간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하지 못했고
아니 그보다 인생의 그 모든 것에 대해 미리 계획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인상은 좀 더 부드러워졌고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폭이 좀 더 생긴 것 같았다.
고집이 센 것은 여전하였지만
자칫하면 숨기고도 싶었을 자신의 나약한 모습도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도
내가 알던 그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헤어지기 전 그 애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메고 있던 커다란 가방에서 선물 꾸러미를 꺼내 건넸다.
나는 그 선물을 풀어보기도 전부터 감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용물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 아이는 그 선물을 사기 위해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 물건을 사러 나갔을 것이며 그걸 포장했을 것이고
그 큰 상자를 트렁크에 챙겨 비행기에 실어와 이 자리까지 가지고 나와 주었을테니까.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내가 좋아하던 노래만 따로 녹음한 테이프를 건네며
졸업선물이란 이름의 뭉클함을 안기는 아날로그적 방식은
십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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