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6일 오전, 공식적으로 나는 엄마가 되기 전에 먼저 이모가 되었다.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먼 나라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난 조카의 사진과 영상을 본 순간,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한 것이, 짠하게 밀려왔다. 이런 소중한 생명의 경이는 아무리 큰돈을 주고도 살 수 없겠구나, 하는 진부한 감동에 새롭게 젖어들었다.
곧 있으면 예정일이라 나 역시 출산 준비로 바쁘다. 아기 침대를 들여놓고, 방수요를 깔고, 침대 범퍼를 삶아두었다. 새로 산 것과 물려받은 아기 옷가지들을 아기 전용 세제를 사다 세탁하고, 옷장 서랍 하나를 비워 아기 옷을 차곡차곡 개 넣었다. 아직까지는 병원에서 별 말이 없는지라 자연분만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검색해보고, 골반을 넓혀주는 요가자세를 찾아 따라한다. 임신 초기 예약해두었던 집 근처 산후조리원에 가서 산전 마사지를 받으며 태어난 지 2주가 안 되는 신생아들을 실컷 바라보다 돌아온다.
무엇보다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교육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항상 밝고 건강하고 기쁨이 가득 넘치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세상에 태어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인생에서 많은 즐거움을 발견하길 바란다. 웬만한 시련에는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강인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인생을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만의 인생철학을 세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돈을 너무 밝히거나 무시하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올바른 경제관념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또 하나의 인간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과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이 저런 사람이 되지 못하면서 아이만 저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것 자체가 이기심일 거다. 나 역시 어릴 적 TV를 보는 엄마 입에서 나오는 'TV 보지 말고 책이나 봐, 공부나 해'라는 말에 얼마나 반감과 괴리를 느꼈었던지.
서점과 도서관,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며 육아에 관한 책을 읽어치우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육아법이 너무나 많고, 거기에는 서로 상충되는 방법도 많다. 예를 들어 어느 책에서는 '아이가 울면 즉각 반응을 보여야 건강한 애착관계가 형성되고, 아이는 세상에 대한 신뢰를 얻는다' 하고 쓰여 있지만, 다른 책에서는 '아이가 운다고 해서 즉각 반응을 보이면 아이에게 시련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생기고 인내심이 없어지며 독재자 같은 아이가 된다'고 쓰여 있다. 모유수유에 관해서 어느 책에서는 '모유는 완전식품으로 가능한 한 오래 먹이고 완모(완전 모유)를 하는 것이 좋다'고 쓰여 있지만, 다른 책에서는 '모유는 배가 금방 꺼지고 철분이 부족하여 다른 이유식도 함께 해야 하는 반면, 모유수유하다 잠이 드는 경우도 많아 수면 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쓰여 있다. 그것 말고도 각종 나라나 민족별 육아 책이 있다. 엄마가 행복한 프랑스 식, 아이가 행복한 스웨덴 식, 독서량이 높은 핀란드 식, 모두가 행복한 덴마크 식, 엄격한 독일 식, 하브루타 교육으로 유명한 유태인 식 등등. 다 읽을 여력이나 시간도 되지 않거니와 괜히 이것저것 잡식하다 일관성만 잃을 것 같다. 무엇보다 육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육아뿐만이 아니겠지만- 기초 철학을 세워두고 일관성 있게 지키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기 어려우나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적용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수면교육, 독서교육, 경제교육, 하브루타 교육이다. 이 정도면 일관성 있게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집중해서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다.
수면교육
수면교육은 임신 후기인 지금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어서 더욱 관심 있게 보고 있는데, 생후 6주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잘 시간이 되면 수면 의식을 치러준 후 수면만을 위한 공간에 놓아 '혼자' 잠이 들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핵심이며, 중간에 아이가 칭얼거리더라도 그것이 가수면 상태일 수 있으니 바로 달려가 반응하거나 들어 안으면 오히려 잠이 깨어버려 잠투정이 심한 아이를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정말로 영아 산통이니 식도염 증세 때문에 아파서 잘 깨는 아이일 경우에는 적용하기 힘들 것이며, 아이의 상태와 고유 리듬을 잘 타서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독서교육
임신 초기부터 태교동화를 읽어주었는데, 아이를 낳아서도 이 습관을 계속 이어나가면 좋겠다 싶어서 찾아보게 된 것이 독서교육이다. 나는 독서교육을 통해 아이를 천재로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도 쭉 아이와 뭔가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지속하고 싶다. 함께 무언가를 읽고, 그것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 느낀 바를 이야기하고, 그렇게 항상 공감하는 사이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아이가 너무 활동적이라 독서에 큰 관심을 두지 못할 경우에는 지속할 수 없겠지만, 만약 잘만 된다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늘 함께 이야깃거리를 공유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경제교육
나는 특히 경제교육 부분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이의 경제교육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시킬까 많은 고민을 하며 책을 읽어 본 결과, 결국 경제교육도 인성교육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위해서는 나부터 제대로 된 경제관념을 지니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입으로는 아이가 무작정 돈 많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은 무작정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발견했는데, 과연 이런 모순된 생각을 가지면서 아이에게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할 수 있을까? 돈이 많아야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서 자라게 될 아이가 '세상은 돈으로만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다른 여러 풍요로움이 존재해'라는 생각을 가진 아이로 성장할 수 있을까? 먼저 나 자신의 경제관념, 부에 대한 관념, 풍요로움에 대한 관념을 수정하고 정립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강남의 10억대 이상 부동산 소유자도 아니고 월 1000만 원 이상 수입을 창출하고 있지도 못한 평범한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나는 강남에 사는 사람들만큼 많은 돈을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학원비에 쏟아 붓기 힘들 것이다. 인생에 어떤 변화가 생겨 그보다 넉넉한 수입이 생기더라도 그렇게 돈을 쓰고 싶지 않다. 나는 아이가 교육, 학습, 학원 등에 치여 어린 시절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불행한 아이가 되는 걸 원하지도 않는다. 어린 시절은 짧고 나중에는 유년기의 추억을 꺼내 곱씹으며 살아갈 텐데 제대로 된 추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보다 세상에는 시간이라는 부, 마음의 여유라는 부, 영혼의 풍요로움이라는 부가 있음을 일깨워주며 나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사용하는 사치를 누리고 싶다. 많은 시간을 함께 사용하며 아이에게는 돈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 써야 할 곳과 아닌 곳, 선택과 포기, 자제력과 인내심을 길러주고 자신의 소득 범위 내에서 지혜롭게 소비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다.
하브루타 교육
이는 유태인의 교육법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2명씩 짝을 지어 서로 읽은 내용에 대해 토론하며 학습하는 방식인데, 이를 위해서는 참 많은 선행학습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방법이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학습'이라는 철학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전형적 주입식 교육으로 대학까지 나와서 한 번도 누군가에게 '내가 학습한' 내용을 설명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대학원 시절 내가 맡은 주제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때에는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함을 처음으로 깨닫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간을 투자했다. 더 많이, 깊게, 주도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고 그것을 말로 설명하는 연습까지 미리 선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그렇게 하고 나면 그 주제는 내 안에서 '나만의' 무언가로 확실히 정립되어 큰 자산이 되는 것 같은 뿌듯함이 생겼다.
어느 고령의 어머니는 대학교수인 아들들과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아들들이 지은 논문과 저서를 다 읽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내가 과연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엄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신 하나만은 온전히 배우고 싶다. 그냥 의무감에 정기적으로 함께 시간만 보내면서 얼굴만 보다 안부 묻고 헤어지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정신까지 공유하며 공감할 수 있는 사이. 그런 사이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에게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줄 수 있는 엄마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유태인 교육 관련 서적에서는 이런 하브루타 식 교육을 하기 위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말해준다. 단순히 책을 읽어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도록 유도할 것, 아이의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되물어 줄 것, 항상 의문을 가지고 답을 찾도록 인도하되 자신만의 사고력과 사고 메커니즘을 구축하도록 유도할 것 등등.
이 모든 생각과 결심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아무도 내일을 살아보지 않았으므로. 또 이런 결심들이 현실과 마주하면서 어떤 식으로 변모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엄마가 되기 위해 많은 준비와 각오를 하는 현재 내 모습을 기록하고자 함이고, 언젠가 육아를 하다 힘이 드는 순간 마음을 다잡고자 할 때 이 글을 다시 읽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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