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2주전에 싱가폴에서 아기를 낳아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동생은 늘 한국의 저렴한(?) 물가를 부러워하면서도 싱가폴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단다. 여러모로 비교해봤을 때 싱가폴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훨씬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는 거다. 그러면서 내게도 종종 아기를 싱가폴로 유학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유혹한다.
"언니, 여기는 무엇보다 법이 쎄잖아. 치안이 걱정 없어. 일단 나는 딸을 키우는 입장으로서 한국보다는 싱가폴에서 아기를 키우는게 훨씬 마음이 편해. 게다가 여기는 다문화 국가이다보니 여러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아. 영어랑 중국어는 기본으로 배우고 들어가는 데다가, 말레이어도 노출이 되어 있으니 좀 더 여러 언어에 익숙해질 수 있거든. 물가는 정말 비싸지만 그래도 난 한국보다는 여기서 아기를 키우는 게 낫다고 생각해. 언니도 잘 생각해 봐."
물론 단점도 있다. 첫째로 물가가 매우 비싸다는 점. 특히 외국인은 자국민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없기 때문에 병원비나 교육비가 매우 높다고 한다. 둘째로 발음이 그리 훌륭하지 않다는 점. 우리나라 영어를 콩글리쉬라고 하듯이 싱가폴 영어를 싱글리쉬라고 한다는데 과연 싱글리쉬라는 단어만 들어도 느낌이 온다. 셋째로 매우 더운 나라라는 점. 동생 내외를 보러 일전 싱가폴에 다녀온 이후로 남편은 공공연히 내게 선언했다.
"나는 이렇게 덥고 습한 나라에서 절대 못 살 것 같아."
하지만 외국어 습득 기회에 대한 유혹은 매우 컸다. 학창시절 내내 영어를 공부하고도 자막 없이는 외국영화가 들리지도 않는 현실에 크게 낙담을 했기 때문일까, 아기에게만큼은 외국어를 공부하는데 이 정도의 수고를 들지 않게 하고 싶다. 언어라는 것은 어린시절 습득해야 효과적이라고 이미 과학적으로 많이 증빙되어 있고, 또 무엇보다 나 자신이 산 증인이다. 나이 먹어 하는 외국어 공부는 거의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수준이다. 내 아기만큼은 외국어를 공부라고 생각하며 스트레스 받게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좀 더 넓게 접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라고 접근하며 재미있게 말하고 듣고 읽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조기유학이나 이민에 관심이 갔는데 이것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일단 조기유학은 돈이 많이 드는 데다가 세 식구가 함께 할 수 없으니 패스. 그렇다고 이민을 가자니 거기 가서 뭘 해 먹고 사느냐가 관건이었다.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으면 기술이민이라도 생각해보면 좋으련만 이렇다할 기술도 없고, 투자이민을 하면 좀 수월하다지만 투자할 자본도 없었다. 결국 한국에서라도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현실안주적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얼마전 아이 교육 문제로 이사를 고려하고 있는 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는 아직 유치원에 다니고 있지만, 아이 고등학교를 생각하면 빨리 좋은 학군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군이라. 아직 내게는 먼 얘기라 생각해서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초등학생만 되어도 고등학교 학군을 위해 이사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저는 좀 늦었어요. 아이 친구들을 생각하면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신경썼어야 하는데... 어쨌든 두 아이 중 한 명은 한 번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니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라도 갈 생각이에요. 첫째도 고학년이 되기 전에 가게 되니 그래도 조금은 적응이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말을 들은 나는 그날 저녁 남편과 함께 학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도 처음에는 아직 아기가 돌도 안 지났는데 그런 걱정을 벌써부터 하냐고 하다가 내 말을 듣고나서 현실을 직시하더니 이 근처 좋은 학교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 대해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나서야 우리는 왜 사람들이 그 지역을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째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학군을 위주로 돌아가는지에 대해서까지 토론을 했다. 어쨌거나 좋은 학군이 형성되어 있는 이상 수요는 계속 몰릴 수밖에 없으니 오를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이해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마음으로 공감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묘한 위화감이 있었다. 과연 조기유학이나 좋은 학군이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일까? 어느정도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분위기라는 것이 있으니까. 하지만 기존의 내가 생각해오던 좋은 환경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좀 더 내부적인 것이었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부모, 아이가 무언가를 해낼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부모, 가야할 길을 잘 모르겠을 때 조언해주되 결정을 강요하지 않는 부모, 아이의 관심사에 함께 흥미를 가져주는 부모, 함께 보내는 시간을 우선시하며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주는 부모, 무엇보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중심이 굳건한 부모. 전부 부모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즉 어떤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이런 부모가 제공하는 울타리 안에서 자라면 좋은 환경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습은 영락없이 자기 기준 하나 없이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흔들리고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아기가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병원신세를 많이 지고 있을 때에는 오히려 지금보다 마음이 굳건했다. 그때는 아기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할 것이며 공부하기 싫다면 절대 억지로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이 생각을 친구에게 했더니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만약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슬플 것 같아."
오히려 나는 그때 친구의 대답에 놀라며 나의 의지를 확고히 했었다.
"의외인걸. 너는 누구보다 쿨할 줄 알았는데. 나는 전혀 상관없어. 아이가 운동을 하고 싶다면 운동을 하게 하고, 공부를 하고 싶다면 공부를 하게 하겠지만, 절대 강요하진 않을거야. 입시위주의 시스템에 적응 못하면 대안학교 보내면 되지 뭐."
이렇게 쿨하게 말해놓고, 불과 몇 개월만에 학군을 조사해보고 있는 게 나라는 사람이었다.
지금으로서야 앞으로의 일을 예측할 수는 없다. 아기는 아직 자라나고 있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으니까. 이 계획들은 어쩌면 부모 욕심에서 비롯된 망상에 그칠지도 모른다. 지금 남편과 내가 부모로서 잃지 말아야 할 마음가짐은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며 함께 삶의 방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거다. 그때까지는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의 성장을 지켜봐주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나날이 발전하는 걸음마 실력에 함께 손뼉치며 기뻐해주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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