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신경써야 할 현실적 문제들

gowooni1 2018. 11. 30. 14:26




어린이집에 아기를 데리러 가보니 얼굴에 상처가 생겨 있었다. 선생님이 미안해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 장난감을 서로 갖겠다고 하다가 다른 친구가 그만 손톱으로 할퀴었단다. 왼쪽 귀 위로 고양이가 할퀸 것 같은 선명한 손톱 자국 세 개와 머리 위쪽에 길쭉하게 할퀸 상처가 제법 깊었다. 속상하긴 했지만 아이들끼리 그럴 수도 있으려니 싶어서 이해했다. 나도 아기를 보느라 온몸이 손톱으로 생긴 상처투성이니까. 그런데 다음 날 데리러 가보니 이번엔 왼쪽 눈 옆으로 굉장히 깊게 파인 손톱 자국 하나가 더 생겼다. 어제의 상처들보다 조금 심각했다. 이번엔 원장선생님이 나와 자세한 정황을 설명했다. 분쟁이 붙은 아이는 어제와 같은 아이로, 그 친구가 손을 쥐는 방법이 독특해 아무리 손톱을 짧게 깎아도 상처가 나기 쉬운데다, 집에 오빠까지 있어 싸움의 기술이 이미 제법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 아기한테 장난감을 뺏기자 손을 뻗어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이야기다.

"저희가 좀 더 잘 봤어야 하는데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저희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깍듯하게 인사하는 원장선생님 앞에서 무어라 말을 하기도 좀 그랬다. 한편 얼굴에 큰 상처가 나 놓고도 뭐가 좋은지 마냥 신이 나서 웃고 있는 아기를 보니 또 심각한 표정만 짓고 있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더 속상한 건 하필 그 주말에 돌 스튜디오 촬영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일정시간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로 결정한 이상,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한 분쟁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선생님들이 신도 아니고 어떻게 100퍼센트 아기들을 보호하겠느냐만은, 그래도 흉터가 꽤 남을만한 상처를 안고 돌아오니 걱정이 되었다. 아직은 고작해봤자 아기들의 분쟁이고 설령 악의였다 해도 큰 악의는 아니겠지만,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나름대로의 사회성을 길러나갈텐데 상황에 맞춰 적당한 반응을 하는 법도 알려줘야 하는게 아닐런지 이리저리 궁리를 했다.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였기 때문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기를 어린이집이라는 작은 공동체에 보내놓고 나니 신경 써야 할 것이 여럿 생겼다. 그 중 하나는 의외로 명절이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명절은 지난 추석이었는데 무심하게 있던 내게 친구가 물었다.

"어린이집에 추석 선물 할거야?"

"아니,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해야 해?"

"글쎄, 내 친구는 화장품을 했다던데. 나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중이야."

"이젠 법이 바뀌어서 함부로 선물 할 수도 없을텐데. 그거 김영란 법에 걸릴 걸."

호기롭게 안하겠다고 말해 놓고도 영 찝찝하여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니, 어린이집 원장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이지만 일반 보육교사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만약 그렇다면 보육교사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본인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이 아니라 선물을 받아도 상관없는 상황에서 A아기의 엄마는 선물을 주고, B아기의 엄마는 선물을 주지 않았다면  A아기에게 좀 더 마음이 가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마음이 더 쏠리는 거였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담.

이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면 선물을 받는게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선물을 받으면 더 잘해달라는 의미니 신경을 더 써야 할 거 아냐. 난 그게 싫어서라도 선물을 들고 오면 표정이 굳어버릴거 같은 걸."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친구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닐 거라는 게 문제였다.


결국 나는 적당한 타협선을 찾아냈다. 우리 아기가 다니는 어린이집엔 원장 및 도우미 선생님까지 포함하여 총 7명의 선생님이 있었다. 아기의 담임 선생님에게만 선물을 하는 것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영아반은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반이라 시간이 되는 다른 선생님들도 돌아가며 들어와 아기를 봐준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에 적용된다 해서 원장선생님만 빼 놓는 것도 슬플 것 같았다. 또 만약 선물을 건네는 모습이 다른 학부모들에게 보이기라도 하면 그들 역시 은연중 부담을 느낄 것이기 때문에 좋지 않다. 그리하여 도출해낸 방법은 어린이집 가방에 들어갈만큼 작은 선물로 7개, 가격은 한 사람당 1만원 안팎으로 하여 김영란법도 걱정없이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준비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처음에 '뭘 그렇게까지 하나'하는 심정으로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다가, 나중엔 '아이를 키우는 건 신경 쓸 일이 많은 일'이라는 걸 씁쓸하게 인정했다. 선물을 하나 하나 포장을 하면서 나역시 속으로 내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안하면 더 신경이 쓰일 것 같았다.


얼마 후 돌 스튜디오 촬영 액자가 나왔다. 다행히 포토샵으로 처리가 되어 사진상으로는 흉터가 보이지 않았다. 실제 아기 얼굴에는 딱지가 떨어져나가고 깊에 패인 자국이 생겨버렸다. 아직은 아기가 어리니까 커가면서 살이 채워지겠지 하는 심정으로 보고 있지만 볼 때 마다 마음이 쓰리긴 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며칠 전 만난 친한 지인에게 털어놓았더니, 오히려 나보다 흥분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들만 셋에 막내가 6살이라 국공립 어린이집에만 다니고 있는 참이었다.

"딱 들어봐도 그 어린이집이 별로인 걸. 우리 막내는 지금껏 한 번도 그런 일 당해서 와 본 적이 없어. 무조건 월요일에 가면 손톱검사부터 싹 하고. 게다가 명절 때는 일절 선물 받지 않는다고 먼저 알림장 와. 한 번은 학부모 상담한다고 해서 빵 하나 사서 가져가봤는데, 도로 가져가라고 하더라고."

그러고나서 그녀는 역시 국공립 어린이집이 좋다는 이야기, 들어가긴 어렵겠지만 어서 대기를 걸어놓으라는 어드바이스 등을 해 주었다. 아기가 하나라서 다른 비교대상이 없는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다보니 들을수록 국공립 어린이집이 정말 좋긴 한가보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이 정말 별로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신경써야 할 일들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아기가 선생님을 잘 따르고 재미있게 지내주는 모습을 보면 아직까지는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직 아기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어린이집이 좋은 어린이집의 기준이다. 만약 결제권자가 갑이고 서비스 제공자가 을이라면, 나는 갑을 가장한 을이다. 엄마로서는, 얼마든지 결제해줄테니 서비스만 최고로 제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는 입장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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