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아기와의 여행

gowooni1 2018. 11. 28. 14:17




이미 아기를 낳아본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기가 태어나면 얼마간 여행은 꿈도 못꾼다, 그러니 다닐 수 있을 때 실컷 다녀라'였다. 그때 나는 속으로 '에이, 다니려면 다니지 왜 못 다녀'라고 콧웃음쳤다. 아기가 있으니 조금 어렵긴 하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다닐 수 있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여행에서 활력을 얻는 사람 중의 하나였던 나는 여행을 빼놓은 삶이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되는 친구들이 있으면 함께 했지만 여의치 않으면 혼자서도 잘 했다. 여행을 다녀 오면 현실에서의 문제들이 생각보다 작게 보여서 좋았다. 인생을 보다 넓고 길게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도 좋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현지 사람들과 대화를 실컷 나눌 수 없다는 게 늘 아쉽긴 했지만, 그게 발목을 잡진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으며 언젠가는 나도 생활하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는 희망도 품었다. 그때에는 현지 언어를 배우며 현지 사람들과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대화를 나눠야지, 하면서.


아기가 태어나고 첫 몇 달간은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두 달 간은 병원 예방접종 외엔 밖에도 못 나갔다. 그러다 백일이 지나고 6개월 가까이 되어오자 슬슬 금단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계절은 어느덧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어가는데 두 계절이 지날동안 여행다운 드라이브나 나들이도 즐기지 못했으니 좀이 쑤실대로 쑤셨다. 아기가 태어난지 7~8개월이 됐을 즈음 괌에 다녀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여행에 용기를 얻어 우리도 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비행기나 렌터카는 카시트도 없고 매우 불편할 것 같아서 육지에서 우리 차로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한정해서 계획했다.


어차피 아기를 데리고 다닐 여행은 리조트에 머무는 것이 한계일 것이 뻔했다. 거기다 나는 바다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고 먼 곳으로의 드라이브도 너무 그리웠다. 그러다 정한 곳이 속초에 새로 생긴 롯데리조트였는데 이 곳은 내 기준에 딱 적합한 장소였다. 서울 양양 고속도로가 생겨 3시간 안으로 갈 수 있는데다가 지난 몇 십년간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었던 외옹치의 바다향기로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 새로 생긴 리조트라 깨끗할 거라 예상되는 점 등등이 마음에 들었다. 카시트 및 아기용품들이 완비될 우리 차로 직접 이동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7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먼 곳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고작 2박 3일의 일정을 위해 이사에 버금가는 수준의 짐을 챙겨야 했다. 아기 기저귀 한 가방, 젖병 한 가방, 혹시 모를 물놀이를 대비한 목튜브 및 물놀이 용품, 아기 여벌 옷 및 가제손수건 한 가방, 이유식을 시작한 터라 시판 이유식도 몇 개 챙겨야했다. 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분유를 먹기 때문이었다. 분유 포트와 분유 한 캔, 보온병까지 챙기고 거기에 남편과 나의 짐까지 챙기니 작은 차 트렁크 칸이 가득 차 백미러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왜 사람들이 모유 수유가 편하다고 했는지 알던 순간이었다. 괌에 다녀온 친구 역시 자신이 모유 수유를 하지 않았으면 괌까지 다녀올 엄두도 못 냈을거라 했다. 어쨌거나 여행이나 이동시 분유수유는 모유수유보다 기동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예상대로 여행은 아기 컨디션 위주로 돌아갔고, 리조트에 머무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앞에 있는 외옹치 항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사다 먹을 수 있었던 낙으로 힐링할 수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동해 바다의 잔잔한 파도를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와 산더미 같은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아기 용품을 정리하면서 당분간 여행은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제 마음이 동하면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던 시대는 끝난거다.


사실 그 여행은 아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해 떠났던 여행이란 걸 알고 있다. 산후우울증에 걸리기 직전 시름시름 앓아 매가리 없는 눈빛을 캐치해 낸 남편의 응급처치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제 아기는 온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싶어 안달한다. 돌이 가까워오는 요즘 2미터 정도는 우습다는 듯 걸으며 신체적 기량을 매일 최고치로 경신한다. 유모차나 카시트에 앉아 기동성을 제한받는 걸 어찌나 싫어하는지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보니 접근이 비교적 크게 허용되어 있는 우리집에서 가장 잘 논다. 이것 저것을 마음껏 탐색하며 물고 빨고 할 때 제일 많이 웃는다. 이유식도 하루 세 번으로 늘면서 나는 하루종일 아기 음식 만들고, 먹이고, 씻기고, 청소하기를 간식 포함 네 번 반복한다. 주방 사용이 필수적이다. 아마 캠핑카라도 있으면 모를까, 당분간 아기와의 여행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유식과 기저귀도 떼야 비교적 마음 편히 놀러다닐 수 있겠지. 그때까지는 정착민이 되어 아기가 마음껏 움직이고 세상을 탐색할 수 있게끔 도와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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