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행복과 사명감 사이

gowooni1 2018. 11. 28. 09:19




아기를 낳은 다음 날 아침, 온 몸이 붓고 아픈데다 잠까지 설쳐 몰골이 말이 아닌 와중에도 병원에서는 시간에 맞춰 근사한 식사가 나왔다. 양이 많아 남편과 함께 나눠 먹으며 TV를 보는데 그 프로그램이 인간극장이었다. 때가 크리스마스 직전이라 그런지 한 신부님이 노숙인들에게 밥을 나눠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주인공은 정확히 경기도 성남에서 안나의 집이라는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김하종 신부(빈첸시오 보르도)의 이야기였다.


김하종 신부는 1987년 이탈리아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원래 '빈첸시오 보르도'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사람이다.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한 후 김대건 신부에게 반해 1990년 한국으로 건너와 봉사를 하던 신부님은 1998년 IMF가 터지고 급격하게 증가한 노숙인들을 위해 안나의 집을 만들었다.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껏 운영해오다가 결국 2015년에 한국인으로 귀화까지 하였는데,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으로 김하종이라 명명하고 작년에는 이곳에서 환갑까지 맞이하였다고 한다. 인간극장에서는 안나의 집을 운영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러 이곳 저곳에 발이 닳도록 다니는 신부님의 모습, 아침부터 급식을 준비하는 분주한 모습, 사람들에게 사랑한다 외치며 밝은 모습으로 식사를 나눠주는 모습과 청소하고 구정물을 퍼내는 모습 등이 담겨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던 당시 나는 아기를 낳았다는, 형용 못할 특별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닥치더라도 감정 과잉 상태였을거다. 그러던 중 안나의 집과 김하종 신부의 이야기는 뇌리에 굉장히 깊숙이 박혀버려서, 그 프로를 본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간간이 생각이 났다. 세상엔 정말 굉장히 선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 저런 삶을 위해선 특별한 사명감이 없으면 안 될텐데 대체 어떤 사명감이 저들을 위대한 삶으로 이끄는 걸까, 개인의 안위를 뛰어넘어 사명감으로 사는 삶이란 과연 어떨까, 정말 행복할까 등 수많은 궁금증이 들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행복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행복 그 이상의 무언가를 위해 산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는 사람들. 그들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뒤로하고 자신 외부 혹은 내부의 목소리가 이끄는대로 살아가며 일종의 사명을 완수한다. 최근 한 방송에서 나온 이국종 교수의 모습이 또 그랬다. 그를 직접 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지만 적어도 방송에서 본 그의 모습은 쓸쓸했다.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현실과 타협하고 적당히 안주하는 편안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했을 것 같은 분위기.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대도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느꼈을 좌절과 체념의 목소리. 그 사이에 수없이 봐왔을 부당한 죽음이 담겨있는 눈빛 등이 내가 방송에서 본 이국종 교수의 이미지다.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명감으로 그런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사명감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대단해보이기는 했지만 그 심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는 자신이 경험한만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난 그만큼의 그릇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김하종 신부도, 이국종 교수도, 그 사명감을 완수하는 삶이 행복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말고, 그보다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결국 이들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을 이해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아기를 낳고 감정과다 상태일 때 본 인간극장 덕분에 당시엔 '나도 저렇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해야지, 어떤 사명감으로 살아야지'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현실로 복귀하면서 감정도 복귀했다. 나만큼은 필부필부가 아닐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누구보다 필부필부였다. 아기가 웃으면 세상 행복하고 아기가 아프면 눈물이 났으며 미래의 모든 계획을 아기 위주로 짜기 시작했다. 아기의 안위보장이 모든 일의 우선순위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은 더 넓어졌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졌다. 지금 와서 새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무언가를 시도하기보다, 그 에너지를 아기를 위해 쓰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봤다. 이 영화는 중학시절부터 20여년을 거쳐 몇 번을 봐 왔지만 이번엔 가슴 깊이 남는 구절이 다른 때와 달랐다. 검프의 엄마가 임종 직전에 검프에게 '난 네 엄마가 될 운명이었단다'였는데, 새삼 이 구절에 꽂히는 걸 보니 내가 내면으로도 엄마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쌓여가면서 이 아이의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특별한 사명감을 느껴본 적이 없음에 아쉬워했지만, 어쩌면 이미 내게는 큰 사명감이 주어진 것이다.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어, 이 아이를 행복한 아이로 키워야 하는 사명감. 이 사명감은 작은 행복과 큰 행복을 동시에 가져다주기 때문에 나에게 알맞다. 아이가 행복한 사람이 되면, 이 세상에 또 하나의 행복을 남겼으니 나 역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 된다. 또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굳이 포기할 필요도 없으니 만족스럽다. 물론 행복을 느끼는 관점이 이전과 달라지긴 하지만 행복의 총량으로 봤을때 내가 느낄 행복이 줄어들진 않는다. 오히려 늘어나면 늘어났겠지.


나는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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