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라는 단어를 비교적 스스럼없이 쓰는 편이다. 모두에게 쓰는 건 아니고 매우 편하다고 느끼는 친구 두세명에게만 쓰는 정도. 물론 그들도 날 부를 때 야, 라고 부르며 편하게 대한다. 그 외 다른 사람들에겐 '야'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다가 아기가 생겼고, 아기가 무언가 다급한 상황을 만들 때, 예를 들어 콘센트 구멍에 손가락을 넣으려 한다거나 음식물을 집어 던질 때, 나도 모르게 아기에게 "야"라고 부르면서 행동을 저지하려 들었다. "야야야, 위험해" 혹은 "야야야, 하지마"
그런데 내뱉고보니 이 말이 참 거슬리는 것이었다. 분명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말이었는데, 아기한테 "야"라고 부르는 나 자신에게 거북한 감정이 생겼다. 아기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키우기로 한 나 자신과의 약속에 어긋나는 기분이랄까. 만약 내가 정말 아기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했다면 "야"라는 말이 나올까? 단순히 나의 보호 아래 있다고,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 아니었을까? 분명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마음에 어떤 필터가 생겨서 '야'라는 말이 함부로 안나가는데, 존중하기로 한 아기에게는 나도 모르게 필터가 벗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를 안 지 벌써 18년이 되가는데 입에서 한 번도 '야'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본 일이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더니 부모님이 자신에게 그 단어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단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그 단어가 입에 안 붙어져서, 자연스레 안 쓰게 되었어."
"그럼 아기가 뭔가 위험한 걸 만지려 하거나 다급한 상황일 땐 어떻게 불러?"
"그냥 이름을 부르지."
그 단어를 쓰지 않기 위한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면 좀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음, '야'라는 말을 그냥 욕이라 생각해. 그럼 자연스럽게 안 쓰려 노력하지 않을까?"
'야'라는 말이 욕이란 생각은 안 들지만, 안 쓰기 위해서는 훌륭한 방법 같았다. 그런데 내 생각 기저에 그게 욕이라고 인식되지 않아서 그런지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기가 뭔가 지저분하거나 위험한 것을 만지려 하면 '야야야 안돼'란 말이 먼저 입에서 튀어나가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유난스럽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야'가 단순한 '야'가 아니라, 아기를 존중하는 마음의 결여 같아서 꾸준히 거슬렸다. 그러던 와중 또 하나의 작은 사건이 생겼다.
11개월이 다 되어가는 아기는 요즘 유모차를 싫어해서 앉히기만 하면 소리를 지른다. 어린이집의 다른 아이들이 소리지르는 걸 벤치마킹했는지 소리지르는 양상도 다양하다. 그래도 매번 안아주기만 할 수는 없는터라 유모차에 앉는 습관을 들여주려 노력중이었다. 하루는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선생님한테 아기를 건네 안은 후 유모차에 앉혔는데, 앉히자마자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기의 발바닥을 살짝 치면서 '이노옴'하고 엄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아기의 표정이 내 얼굴을 보며 멈칫했고, 나 역시 속으로 '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다. 바로 웃으면서 장난이었음을 시사했지만 아기는 웃지 않은 채 소리는 지르지 않고 유모차에 뚱하니 앉아 있었다. 선생님한테 인사를 하고 집으로 오는 내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누군가가 나를 다른 사람 앞에서 무안을 줄 때 기분은 참으로 별로다. 내가 설령 잘못했더라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호통치는 직장 상사는 최악이다. 반면 내가 설령 잘못했더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가만 있다가 단 둘이 있을 때 잘못을 이야기하며 다음부터 그런 실수 없으면 좋겠다고 다독이는 상사는 감동이다. 정말 이 사람이 나를 위한다는 것이 느껴지므로, 그 사람에게는 진심을 다해서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나는 방금 과연 어떤 부류였을까? 굳이 따지자면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주는 부류였던 것이다. 왜 나는 늘 후자가 되고 싶어했으면서도 무심코 낸 반응은 전자였을까?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보다, 아이 훈육을 잘 시키는 엄마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더 컸던 게 아닐까? 지금이야 작은 일이니까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무심코 내는 반응이 이러했는데 과연 나중에 갑자기 훌륭한 엄마가 되어 후자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미리 말하는 습관을 잘 들여놔야겠다. 말 습관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도 아니니 더욱 그래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로만, 다짐으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아이를 존중하는 게 무언지, 존중하는 방법이 무언지 꾸준히 생각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피해자만 기억하고 가해자는 기억 못하는 세상에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가해자가 되고 싶진 않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화살이 되어 아기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때, 놓아버린 활시위를 기억조차 못하는 엄마가 되어선 안된다. 나중에 아기가 "엄마가 그 때 나한테 그런 말 했잖아. 나 그 때 정말 상처받았어."라고 말할 때, "엄마는 기억 안나는데."라고 말하면 아기는 두 번 억울할 테니까.
역시 아기를 키운다는 건, 나 자신이 생각만큼 훌륭한 인격체가 아니었음을 꾸준히 깨닫게 되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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