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후 가장 먼저 떠오른 태교는 우쿨렐레였다. 집에 피아노도 있기는 했지만 피아노는 잘 치는 편도 아니니 CD를 듣는 게 훨씬 낫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쿨렐레도 잘 치는 건 결코 아니었지만 어쩐지 우쿨렐레가 더 끌린게 사실이다. 우쿨렐레는 몸에 밀착하고 연주를 해야하니까 뱃속에 더 잘 들릴 것 같았다. 아기가 뱃속에서 심심할텐데 가끔 음악소리가 들려오면 무료함을 달래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문제는 우쿨렐레가 없다는 거였다. 몇 년 전 독학해보겠다고 샀던 연습용 우쿨렐레는 장시간 방치되는 바람에 바디(body)와 넥(neck)이 부러져 완전 두동강이 났다. 배가 볼록하게 불러오던 어느 여름 주말, 남편과 함께 홍대에 있는 우쿨렐레 전문샵으로 하나 장만하러 나갔다.
그곳 주인은 기타와 우쿨렐레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30대 초중반 추정의 젊은 남자였는데 악기를 판매하는 것 외에도 저녁에는 강습을 한다고 했다. 게다가 단순히 악기를 판매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개인별로 연주 실력을 확인해보고 수준에 어울릴만한 악기를 추천해주는 것에서도 프로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었다. 우쿨렐레를 잡은지 하도 오래되어서 기본적인 코드 두어개 밖에 못잡는 나를 보고 처음엔 연습용 우쿨렐레를 권하다가, 악보를 보고 핑거스타일의 곡을 연주하는 걸 보더니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지금까지 독학한다고 쏟아부은 시간이 적지 않은데 그 시간에 제대로 배웠다면 훨씬 실력이 늘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나 역시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이제 곧 배가 불러올 것인데다 무거운 몸으로 홍대까지 강습을 받으러 다니기란 불가능했으므로 우쿨렐레 하나만 사 오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완전 초보자용도 아니고, 완전 전문가용도 아닌, 중간 정도 수준에서 가성비가 좋은 우쿨렐레를 하나 마련했다.
기타 신동 정성화만큼 현란하게 우쿨렐레를 치겠다는 야망은 애초부터 없었다. 나는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기본적인 코드 몇 개 가지고 노래를 부를 수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아기한테 동요를 불러줄 때 거기에 우쿨렐레 코드 반주까지 들어가면 좀 더 근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다. 그냥 밋밋하게 노래를 부르면 나의 고음불가 노래실력이 금방 탄로나지만, 우쿨렐레 반주로 커버하면 듣는 귀의 집중을 분산시켜 좀 더 들을만한 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일이 발생했다. 불러오는 배 위로 우쿨렐레를 딱 붙이고 연주와 노래를 시작하면 뱃속 아기의 태동도 함께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냥 작은 태동이 아니라 뱃속을 헤집고 다니는 듯한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어떤 때는 다리를 쭈욱쭈욱 뻗어대서 옆구리가 아플 정도였고, 배 위로 엉덩이를 불쑥 내미는지 윗배가 꿀럭하고 부풀었다. 그런데 아기 얼굴을 볼수도 없고 대화를 할 수도 없으니 얘가 좋아서 그러는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없다. 좋아서 움직이는 거면 다행이지만, '잘 자고 있는데 왜 이렇게 시끄러운거야'라며 신경질을 내는 걸 수도 있으니 말이다. 태어나면 알 수 있겠지, 지금은 엄마가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주는 게 아기에게도 좋겠지 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꿋꿋하게 우쿨렐레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태어나고 나서도 한동안은 아기가 잘 보지도 못하고 잘 듣지도 못하고 오직 울기만 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아기침대에 멀뚱멀뚱 누워있는 아기에게 우쿨렐레를 켜주었는데 별 반응이 없었다. 음, 우쿨렐레 태교가 별로 효과가 없었나? 그러다 아기가 엄마를 보고 웃기 시작하며 자신이 기분좋은 것을 표현할 수 있을 무렵이 되자 반응이 달라졌다. 우쿨렐레를 켜며 노래를 해주면 너무 좋아서 소리까지 내며 웃는 것이었다. 게다가 제법 호불호가 생겨서 자신이 좋아하는 멜로디와 노래를 들으면 꺄르르 웃다가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노래를 부르면 표정이 금새 뚱해졌다. 그러나 내가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는 몇 개 없었기 때문에 아기를 위해서라도 다른 곡들을 열심히 찾아 연주해주어야만 했다. 다른 곡들을 연주하다 반응이 좋은 것은 집중적으로 외워 연주해주고, 반응이 별로다 싶은 것은 과감히 패스했다. 이 방법은 매우 유용했다. 아기가 보채면서 잠을 안 잘 때 아기 띠에 안은 후 우쿨렐레를 치며 좋아하는 노래들을 불러주면, 울던 울음도 뚝 그치고 현 소리에 매우 집중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내 입모양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어느새 졸린 눈이 되어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이 방법이 계속 통용되면 좋았겠지만 효과는 얼마가지 않았다. 아기가 움직이며 스스로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끝났다. 자기가 실컷 움직이고 체력 발산을 하지 않으면 잠을 안 자는 단계로 들어서면서 우쿨렐레도, 책 읽어주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긴, 어느 순간 보니 나 조차도 우쿨렐레를 즐겁게 치고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우는 아기 달래기용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아기도 그게 무슨 재미가 있었겠느냔 말이다. 과감하게 우쿨렐레를 한쪽으로 치우고 아기의 발달과정에 맞추어 함께 열심히 몸으로 놀아주는 편이 나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방 구석에 곱게 누워있는 우쿨렐레가 몹시도 치고 싶어, 아기는 장난감과 함께 놀게 내버려두고 나는 우쿨렐레 연주와 노래를 신나게 불러댔다. 그랬더니 아기도 엄마가 신나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신이 나서 오랜만에 꺄르르 웃으며 듣고 손뼉을 치는 것이었다. 그래, 역시 내가 먼저 즐거워야 아기도 즐거운 것이었다. 아기를 위한답시고 즐거움을 강요하면 즐거울리가 없지.
모처럼 잊고 있었던 나의 다짐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아기에게 '즐거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 피곤에 쪄들에 항상 누워있었던 엄마가 아니라, 매일 즐겁고 웃음이 많은 행복한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뭐 지금은 솔직히 전자에 좀 더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 아기는 세상을 심각하고 진지하게만 보던 나를 매일매일 바꿔가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라고 항상 웃음으로 알려준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재미있게 사는 게 전부지. 아기가 커서 함께 캠핑다니며 우쿨렐레를 치고 노래를 부를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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