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달라진 생각

gowooni1 2018. 11. 12. 12:04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는 거다. 그중 가장 흔한 예가 '아이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며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 강요하는 유형이다. 정말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되는건가? 당연히 개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려있는 거 아니겠는가. 게다가 아이를 낳아 키워놓고도 어른이 못 된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데. 일단 '아이는 인간인 이상 꼭 낳아봐야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도 어른스럽지 못하다. 자신의 기준만을 강요하고 남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어딜 봐서 어른스럽단 말인가. 게다가 그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않은 삶, 아이를 낳지 않은 삶을 살아본 것도 아닌데, 그 삶에 어떤 좋고 나쁨이 있는지 안다고 그런 식으로 말을 함부로 하는지, 과연 인간 중 어느 누구에게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말이다.


그런 나에게 아이를 낳고나서 변화가 하나 생겼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임신을 하고 나서도 별로 아이들이 예뻐보이거나 사랑스럽지 않았다. 아이들은 시끄럽고 아무데서나 울고 떼를 쓰니까, 가능하면 아이들이 없는 곳을 찾아 다닌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보니 시선이 변했다. 아이들이 예뻐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일부 예쁘장한 아이들만 예쁘게 보이다가 점점 모든 아이들이 다 귀하고 예뻐보이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이런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신기해하며

"나는 솔직히 우리 아기가 제일 예뻐보이고 다른 아기들은, 음 솔직히 예쁜 아이들만 예쁘지"

란다. 듣고보니 과연, 이게 보통의 시선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기왕 말한 김에 범우주적으로 넓어진 나의 시선 변화에 대해 얘기했다.

"다른 아기들이 전부 귀하고 예뻐보여서, 여건만 된다면 입양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

"입양? 나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그러니까 내 말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나는 아이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게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다고나 할까. 그 아이들의 불행을 내가 하나라도 줄여줄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거지."

친구는 생각보다 많이 놀랍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아기를 좋아하지 않던 예전 내 모습을 기억하니 더욱 그랬다. 하긴, 나역시 이런 나의 변화가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세상 모든 아기들이 귀한 대접을 받고 사랑이 가득한 사람으로 자라나면 좋겠다니, 이건 너무 나답지 않게 해맑은 생각 아닌가. 하긴, 이제 나답다는 기준이 뭔지도 헷갈리는 지경이다.

당연히 입양은 어려울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처럼 몇 명씩 입양해서 키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경제적이나 신체적 여건이 따라줄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10개월 넘은 아기 한 명 키우는데만도 한 달에 두 번씩 병원 가 링겔을 맞는 처지에 대출이자 덕분에 복직을 해야만 하는, 한 몸으로 워킹맘과 베이비시터 역할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역시 무리다. 암튼 중요한 건, 아이를 낳고 나서 내 시선과 생각이 크게 변했다는 점이다.


아이를 키우는 건 매 순간이 테스트 같다. 현재 나라는 인격체가 형성되는 데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것이 옳고 그르다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살아온 적도 없는데, 아이를 키우는 순간마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발현되는 내 반응들을 보고 나조차도 놀란다. 아기를 보다가 힘이 들어 한숨을 푹 내쉬다가도, '이런 모습을 아기가 보고 한숨 쉬는 걸 배우면 어쩌지'하며 놀라 혹시 아기가 내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살펴보게 된다. 아기가 이유를 알수 없이 징징대면 나도 모르게 '왜 그러는거야' 하고 같이 징징거리고 있다. 내가 생각하던 현명하고 인내심 많은 엄마로서의 자세는 온데간데 없고, 오늘 하루도 버텨야 한다는 생존이 목표가 되어 눈앞에 닥친 일만 처리하는 데에도 급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가는 것이 나로서는 정말 신기한 일이다. 나 자신의 행동을 한 번 더 돌이켜보게 만들어준 이 작은 존재에게 고맙다. 좀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좀 더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해주는 아기가 있어 다행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나 더 클 수 있구나, 하고 깨닫게 해준것도 당연히 아기이다. 플라스틱 봉지를 쓰려다가 멈칫하는 것도,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전부 이 아기 덕분이다. 아기가 깨끗한 지구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환경을 생각하는 듯 하는 행동까지 낳았다.


아기는 분명 내게 '관대함'이라는 미덕도 선물해줬다. 다른 아기들이 예뻐보이니 시끄러운 것도, 우는 것도 예전만큼 싫지 않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탐색하는 아기들의 끝없는 호기심과 왕성한 에너지가 이제야 보인다. 신나게 뛰어다니다 내 몸에 부딪히는 아이들한테 내던 신경질도 줄고, 실수로 힘껏 발을 밟아도 쉽게 용서가 된다. 30여년을 살면서도 갖추지 못한 미덕이 단 1년 새에 생기다니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은 아마 이런 면도 어느 정도 포함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자기 삶의 경험이 절대적인 양 남들에게 자기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은 사양이다. 나는 아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편을 택할 것이며, 자신이 살지 않은 삶의 방식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둘 것이다.  그리하여 나중에 우리 아이 세대들이 말하는 '꼰대'만은 절대 되지 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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