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첫 감기

gowooni1 2018. 11. 9. 11:23




어린이집에 보낸 지 며칠 되지 않아 아기가 감기에 걸려왔다. 여름이었지만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바람이 불었는데 저녁에 콧물이 찔금 흐르더니 덜컥 감기에 걸려버린 것이다. 어딘가에서 옮아 잠복된 바이러스가 찬바람에 활동을 개시한 모양이다. 어린이집 보내기 시작하면 감기 걸리는 것부터가 수순이라고들 하던데,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주르르 흘러내리는 맑은 콧물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바람 쐰다고 좋다며 웃어대던 아기는, 이내 코가 막히는지 짜증을 내며 보채더니 미간에 인상을 팍 쓰고 뚱해졌다. 밤에는 숨 쉬기가 힘든지 뒤척이며 울어댔다.


병원에 가서 처음으로 받은 처방엔 단순 기침가래약과 콧물약 뿐이었다. 이것만 먹고 나았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바람일 뿐, 아기의 감기는 점점 심해졌다. 하필 어린이집에 보낸 시기와 생후 6개월 면역력이 약해지는 시기가 겹쳤다. 처음으로 몸에 들어온 병원균과 맞서 싸우는 아기의 몸엔 항체가 거의 없어 바이러스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다시 병원에 가니 이번엔 중이염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또 한번 마음이 덜커덕 가라앉았다. 게다가 아기가 다니는 소아과 의사는 상냥한 얼굴로 정확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아기 중이염이 심한데요, 이 정도면 상,중,하 중에서 상에 속해요. 당장 항생제를 먹어야 하겠어요."

"상이면, 이보다 더 심해질수도 있는건가요?"

"그렇긴 한데, 약이 잘 듣는 편이니 지켜보도록 해요."

납덩이처럼 무거운 마음은 아기가 아픈 내내 지속되었다. 그래서 너가 밤에 그렇게 보챘구나, 많이 아팠구나, 마음이 쓰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아닌 타인의 아픔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쓰렸던 적이 있는가 생각해보았다. 아마 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애가 아프고 보니 엄마 마음이 뭔지 더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남편이 아파도 이 정도로 안타깝지는 않다. 하지만 남편은 어엿한 성인이고, 아기는 아직 면역력 제로에 가까운 순수 생명체다. 애초에 비교대상이 안 된다.


그러고보니 임신하기 전 남편한테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나는 나중에 애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애한테 맞추고 살지는 않을거야."

"그래?"

"응, 모든 걸 애한테 맞추고 살다가 나중에 애 인생이 곧 내 인생이 되는 건 싫거든. 그리고 애를 첫번째로 생각하다가 더 중요해야 할 우리 관계에 신경을 못쓰는 것도 싫어."

그런데 지금 보니 딱 내 모습이 저렇다. 아직 아기가 어려서 그렇다 쳐도, 거기다 애가 아프다보니 남편은 완전 뒷전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중이염은 더 크게 나빠지지 않았다. 항생제가 잘 들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중이염은 한동안 '상'인 상태에서 머물러 있다가 조금씩 호전은 되었는데, 그 다음에는 부비동염, 흔히들 말하는 축농증이 와버렸다. 또 며칠을 항생제로 버티며 염증이 더 번지지 않게 조심했다. 부비동염이 좀 나아지나 싶었더니 이젠 우유를 잘 삼키지도 못하고 쉰 목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인후염. 아이고야. 정말 아기가 약한 존재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감기로 인해 염증이 스쳐지나갈 수 있는 곳은 전부 한 번씩 머물러가는 모양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적응하기 위한 신고식을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 아기가 아픈 것을 마냥 마음아파 할 필요도 없다고, 아기는 아프면서 몸에 항체를 생성하고 스스로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중이라고, 상냥하지만 냉정한 의사가 이야기해주었다.


거의 두 달을 감기와 그로 인한 합병증세로 앓던 아기는 드디어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었다. 아픈 기간에는 어린이집에 거의 가지를 못했더니, 모처럼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날에는 선생님들의 얼굴을 까먹어 버린 모양이었다. 반가워서 큰 목소리로 한달음에 달려온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그날 뿐, 금방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선생님에 대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첫 감기 신고식을 된통 치르고 난 후에도 어김없이 환절기나 찬바람을 쐬면 감기에 걸렸다. 나도 처음처럼 마음이 쓰리진 않았다. 아기가 감기에 내성이 생기듯 나도 아기의 아픔에 내성이 생겨가는 것 같았다. 쓰라린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차라리 현실적인 대처를 해야했다. 아기에게 감기가 옮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아기가 뒤척이며 잠을 못 잘 상태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해둬야 하고, 나까지 아파지면 곤란하므로 안 아프도록 전반적으로 바짝 긴장하는 것이다. 아기가 아픈 기간엔 좋아하는 맥주 한 캔, 와인 한 잔도 절대 사절이다. 안 그래도 저질 체력인데 알코올 분해한답시고 에너지를 함부로 낭비하면 안 되니까. 아기를 키우면서 본의 아니게 체력과 술, 전반적인 컨디션을 조절하는 습관이 생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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