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관대해질 것

gowooni1 2018. 11. 8. 11:35

몸이 안좋다며 하루 밤을 푹 자고 일어난 남편은 본인 컨디션을 반신반의 하면서 출근했다. 중간에 휴가를 쓰고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일을 다 마치고 저녁에나 들어왔다.

"아프다더니 괜찮아졌어?"

"응, 오늘은 일 때문에 흥분해서 말을 지나치게 한 거 같아."

그러고서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듣자하니 비합리적인 상황에 순간 욱해서 열변을 토했다는 것이다. 음,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한 걸 보면 정말 괜찮아진 모양이군. 정말 아프면 욱 할 기운조차 나지 않으니 말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남편과 나는 거의 싸우지 않는다. 일부러 싸우지 않는게 아니라 싸울 기운이 없어 못 싸운다. 여전히 사소한 의견 차이는 있지만, 그런 거 하나 하나 일일이 따지고 들 여력이 없다. 물론 쌓이다보면 한번씩 방출은 하는데 거기서 끝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자꾸 아기 기저귀 갈아주는 것을 까먹을 때, 기저귀 갈아주라고 말하는 것도 귀찮아져서 내가 직접 간다. 그러다가 나도 잠깐 깜빡해서 아기 엉덩이에 발진이 생겼으면 그때야 한마디 하는 것이다. "아기 기저귀 좀 자주 갈아달라고 그랬잖아." 이런 일 가지고 생기는 감정소모는 여기서 더 나가지 않는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개입되면 불거진다. 보통 때라면 참견을 하지 않을 사람들도 아기 문제에 있어서는 참견을 많이 한다. 아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건 알겠지만, 다들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고집한다. 그런데 엄마가 된 나의 감정상태도 민감해진 상태라서 예민하게 받아들이고는 화를 내고 분노한다. 물론 소심한 내 성격상 사람의 면전에 대고 화를 내는 경우는 정말로 극히 드물지만, 그 분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혼자 있을 때 그 일을 곱씹으면서 계속 분노하는 한편, 어떻게 반응해야 좀 더 성숙한 걸까하고 반성도 한다. 아예 무시해버리면 분노도 일지 않을텐데, 그러기엔 아직 인생내공이 턱없이 부족하다.


'어떻게 해야 좀 더 성숙한 반응일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한 건 얼마되지 않았다. 화가 나면 있는 힘껏 화를 내버리던 습관이 어디 가지를 않아서, 뱃속에 아기가 있을때 한 번 그랬더니 아기가 너무나 놀랐는지 태동이 오랜 시간 잠잠해진 적이 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분노를 잠재우려고 엄청난 마인드컨트롤을 했는데 그러고도 거의 만 하루가 지나서야 아기가 조금씩 발길질을 해주었다. 그때가 아마 '엄마로서' 정신적 각성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때인것 같다. 그래, 나는 이제 엄마지, 예전처럼 마음대로 분노해서도 안되는거야.


무엇보다 나는 아기가 나같이 쉽게 분노하는 정신적 매커니즘을 형성하지 않기를 바랐다. 좀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대수롭지 않은 일엔 신경쓰지 않기를, 자신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대해지기를, 그러면서도 정말 필요할 때에는 정의롭고 현명하게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비록 생각이 이러하더라도, 행동은 반대인 엄마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과연 저리 훌륭하게 자라날 수 있을까?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 게 인간인데, 하물며 아이에게는 엄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말이다. 알게 모르게 엄마의 심리를 알아챌거고,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법도 배울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슬플 것이다.


 제이슨 므라즈의 비교적 신곡 'have it all'의 가사가 너무나 좋아서 3일만에 외워버렸다. 아이에게 우쿨렐레와 함께 불러주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냈는데, 므라즈의 노래 스타일이 거의 랩 수준이라 따라부르는게 쉽지 않다. 미얀마를 방문했다가 영감을 받아 작사했다는 이 가사 내용이 무척이나 독특한데, 뭔가 불교적이기도 도교적이기도 하면서 전반적으로 I bless you 한 느낌이다. 해석하자면 대충 이렇다.


May you have auspiciousness and causes of success

당신의 모든일이 순조롭고 타당하길
May you have the confidence to always do your best

최선을 다하기 위해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길
May you take no effort in your being generous

당신이 관대함에 있어 어떤 노력도 필요없길
Sharing what you can, nothing more nothing less

당신이 할수 있는 한도에서 함께 공유하기를
May you know the meaning of the word happiness

당신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알길
May you always lead from the beating in your chest
당신의 가슴이 뛰는 대로 살아가기를

May you be treated like an esteemed guest

당신이 존경받는 손님으로 대접 받기를
May you get to rest, may you catch your breath 

중간에 휴식도 취하고 숨도 고르기를 


 나는 여기서 take no effort in your being generous에 확 끌렸다. 관대해지는 데 어떠한 노력도 들이지 않기를, 이라니 너무나 멋지지 않은가. 찾고 있던 답이 한 줄로 정리되어 다가온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 아기가 관대한 사람이 되길 바라고, 관대한 마음을 갖는데 크게 애쓰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처럼 쉽게, 별 것도 아닌 작은 일에 쉽게 화를 내고, 다른 사람들의 사소한 결점에 쉽게 분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시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노력을 하고 볼 일이다. 그냥 엄마가 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진짜 엄마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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