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아기의 첫 웃음

gowooni1 2018. 11. 6. 10:26




아기를 키우다보면 아기 발달 과정이나 속도에 대해 민감하지 않을수 없다. 특히 우리처럼 경험치가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아기의 평균 발달과정을 상세히 적어놓은 책에서조차 '아기의 성장은 개인차가 있으니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라'고 써 있지만, 대체 어느 정도까지 느긋하게 있어야 하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2주 내지 한달이었다. 다른 아기들보다 2주가량 먼저 태어났으니 발달과정도 2주, 그래 크게 잡아서 한 달 까지는 늦어질 수 있겠지, 한거다.


나보다 정확히 2주 전에 싱가폴에서 아기를 낳은 동생도 이런 나의 조바심에 한 몫 더 했다.

"언니, 우리 아기는 벌써 엄마, 라고 하는 것 같은데."

"언니, 모빌을 달아줘야 애들 시각이 잘 발달한다구, 우리 애는 벌써 모빌 보고 한참 웃고 놀아."

"언니, 아침에 일어나니 아기가 혼자 엎드려서 날 바라보고 있었어."

상황이 이렇다보니 왠지 나도 뭔가 뒤처지지 않게만은 해줘야 할 것 같은 거다. 전반적으로 우리 아기가 내 동생 아기, 그러니까 조카보다 조금씩 느렸는데, 조카가 2주 먼저 태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조카는 여자아이이고 우리 아기는 남자아이다보니 발달이 조금 더 느린 것 같았다. 믿을 수 있는 근거인지는 몰라도 통상 여아가 남아보다 발달이 좀 빠르다니, 그냥 그 말을 믿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 외엔 별 수 없었다.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독이 되었다. 평소와 달리 아기가 약간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아기질병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책을 들춰보았는데, 거기에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질병이 다 나열되어 있어서-거기다 간혹 사진까지- 무서워졌다. 아기가 용트림을 자주 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니 지켜봐야 한다거나, 토를 너무 많이 하면 위문협착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거나 등등. 책을 한번 펼쳐보니 또 다른 질병에 대해 접근하게 되고 또 알게 되는 것이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생각도 못했을텐데, 어떤 행동을 보이면 '혹시 이거..?'하며 더욱 초조해졌다. 수면부족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야가 닫힌 상태라 생각의 메커니즘이 곧장 걱정으로 돌진했다. 이러다가는 정신이 너덜너덜 해질 것 같아 강제적으로 그 책을 봉인해버리고 일부러 쳐다보지 않았더니, 그제야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그래,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고, 미리 사서 걱정할 필요는 없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고나 할까.


그렇게 두어달이 지나고 아기가 태어난지 70~80일 정도 되었을 무렵인 것 같다. 그동안 웃는 것은 배냇짓이어서 그냥 혼자 기분이 좋으면 웃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아기가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기 발달 과정 중에 아기의 '사회적 웃음'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건 아기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하는 첫 시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말 이 '사회적 웃음'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확신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직 2시간 간격으로 우유를 먹이던 시절 밤 12시, 아기 울음소리에 눈 비비고 아기 침대에 갔는데, 아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보통 밤에는 눈을 감고 울었는데, 눈을 똥그랗게 뜬 걸 보니 잠을 다 잔 모양이었다. 아이고 큰일났네, 또 한참 놀아줘야하는 건가, 하다가 어떤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났다. 아기들에게 밤 시간은 노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게 생각나서 나는 일부러 아기 눈을 안 마주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눈이 마주친 순간 아기가 먼저 나를 보고 씨익 웃었는데, 나도 모르게 나도 씨익 웃어줬더니, 그 반응에 더 신나서 활짝 웃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러니까 아기는 정말로 엄마를 보고 좋아서 웃는 것이었고, 내가 자기를 봐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후, 아기는 시도때도 없이 잘 웃었다. 물론 시도때도 없이 웃겨주려고 노력한 우리의 노고에 부응해 준 결과다. 특히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면 너무나 즐거운 듯이 까르르하고 잘 웃어서,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내 태교가 통했구나, 하고 뿌듯해했다. 근데 그건 어느 정도 나의 착각이었다. 아직이야 목만 가누지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때니까, 약간의 엔터테이닝만 있어도 마냥 즐거웠던 거다. 나중에 혼자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을 때에는 다른 놀잇감에 정신이 팔려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기가 웃어주기 시작한 이후부터 우리의 삶도 조금씩 활력을 찾아갔다. 아기의 웃음에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요, 나는 잘 자라고 있어요, 이렇게 웃을 수 있을만큼 세상이 즐거워요, 등등. 아기의 웃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우리도 더 웃을 수 있었고, 어떻게든 더 웃기게 해주려고 온갖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아기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끔 해주고 싶었다.


'세상은 참 즐거운 곳이네, 좀 더 재미있게 살고 싶어. 태어나서 다행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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