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어린이집

gowooni1 2018. 11. 6. 14:21





졸지에 하우스푸어가 되어버린 터라 복직을 하지 않는 호사는 감히 누릴 수가 없었다. 아기가 커나가고 있기는 한데 여전히 마냥 어려보였고, 과연 이 갓난쟁이를 두고 복직을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걱정이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로또에 당첨이라도 되면 모를까, 어쨌거나 은행에 월세만 내며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출이자는 계속 상승중이었으며, 은행에서는 재직상태가 아니라면 이율이 더 오를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퇴양난이자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유일한 출구는, 복직해서 다람쥐처럼 열심히 쳇바퀴 굴리며 개미처럼 일해서 조금씩 원금을 갚는 수뿐이었다.


그러한 상태니 당연히 어린이집을 일찍부터 알아보는 것은 필수였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대로 임신하자마자 대기를 걸고자 하였으나 그건 옛날 이야기였다. 요즘은 아기가 태어나서 주민등록번호까지 나와야 대기를 걸 수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아기가 태어나고 나면 정말이지 24시간이 아기에게 묶여 있기 때문에 어린이집 대기를 걸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는데, 아기 보느라 코앞이 급급한 상황에서 어린이집 문제는, 자기 직전 머릿속에 찰나 떠올라 '내일은 꼭 걸어놔야지' 하는 정도의 문제였고 그 내일은 계속 내일로 미뤄졌다. 그러다 100일이 다 되어갈 무렵 아차, 이제 더 이상 미루면 복직이 어렵겠는걸, 하며 발등에 불 떨어진 듯 허둥지둥 찾아보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어린이집에 관심도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어린이집이 부족하다고 할 때는 그런가보다 싶었고 어린이집 학대 얘기가 나오면 '무서운 세상이네' 정도에서 끝이었다. 그런데 애가 생기고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갑자기 뉴스를 많이 보는 것도 아닌데 TV에 어린이집 학대 사건은 왜 이리도 자주 등장하던지, 왜 통학버스에 아이를 두고 내리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지 의아했다. 어린이집 대기를 걸면서 보니까 안 사실은, 사실 어린이집이 그리 많이 부족한 것 같진 않더란 말이다. 문제는, 인증을 받은 곳이나 국공립 어린이집이 별로 없는 것이었고, 그런 데는 대기자 수만 수십에서 수백명이었다. 더구나 나 같은 경우는 만 0세인 아이를 맡길 곳이 필요했는데 이 만 0세를 맡길 곳은 정말 드물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원 수가 굉장히 제한되어서 대기를 걸어놓고 마냥 사람이 빠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다보니 100일이 다 되어 대기를 건 것이 너무나 늦은 감이 있더란 말이다. 만약 아무도 빠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복직하는 날까지 맡길 곳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하나? 복직 연장을 해야 하는 건가? 그게 가능해도 그럼 월급은? 대출 이자는? 대책없는 하우스푸어의 머릿 속은 날로 복잡해졌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아이가 5개월이 지났을 때 한 곳-총 두 곳 밖에 없었다-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아기는 6개월이 다 되도록 뒤집지를 못해서 혼자 바닥에 등 붙이고 팔다리를 팔딱거리며 엥엥 거리는 게 움직임의 전부였지만, 아이가 너무 어리다고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든 안다니든, 가서 30분을 있다오든 1시간을 있다오든, 무조건 등록을 해야했다. 0세반 정원이 6명밖에 되지 않는데 그 중 1명이 빠져나가길 또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어린이집 원장 역시 현실적인 조언으로, 지금 등록하지 않으면 언제 자리가 생길지는 본인도 모른다고 하며, 그거야 본인이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나의 복직일을 고려했을 때 일단 등록을 해두는 편이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아기는 태어난 지 5개월만에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등록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아기는 매우 어렸기 때문에 적응 기간을 길게 두고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나도 함께 어린이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노는 것을 지켜봐 주기로 했다. 팔다리만 팔딱거리는 아기가 혼자 놀아봤자 모빌을 쳐다보는 정도였지만, 이미 시야는 다 트여있어 고개를 옆으로 조금씩 돌리며 사방을 눈으로 탐색해나갔다. 그렇게 처음엔 30분씩 있다가, 나중에는 아이만 들여보내다가, 1시간으로 늘리다가, 2시간으로 늘리는 식으로 천천히 적응시켰다. 집에만 있던 아기가 낯선 공간에 익숙해지게 만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선생님과의 관계를 쌓아가는 일이었다. 아이가 선생님이라는 한 인간에게 적응해야 하듯 선생님도 아이의 기질이나 성향을 파악해 나가야 했다.


처음에는 '이 선생님이 과연 믿을만한 사람인가'라는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영 미덥지않다 싶으면 그만 두고 다른 곳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무엇보다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하니까. 게다가 아기의 담임이라는 사람은 뭔가 나이는 많고 새초롬한 표정이 내가 아침마다 인사를 해도 받는둥마는둥하여 '정말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당장 다른 곳을 물색해본다 해도 거기에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고 지금은 그렇게 오랜 시간 있는 편도 아니니 당분간은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 '믿고 맡긴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마음가짐이었다. 아이를 셋이나 낳고도 출산휴가 3개월씩만 쓰고 바로 복직한 한 회사 언니의 말이 기억났다. 내가 임신을 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맡길 곳에 대한 현실적인 걱정을 토로하고 있을 때였다.

"있잖아, 아기를 맡길 곳은 생각보다 많아. 아파트 가정 어린이집들 있지? 그런 곳은 그렇게 자리가 꽉 차 있지 않거든."

"그래요? 그렇지만 언니, 아이를 맡기더라도 너무 어려 걱정되지는 않았어요?"

"걱정은 되지. 하지만 일단 사람을 쓰는 이상, 무조건 믿고 맡겨야해. 그리고 생각보다 아이들이 야무져서 금방 적응해. 생각보다 아이가 강하거든. 사람도 믿고, 아이도 믿어주는거야."

그러더니 언니는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말야, 아이를 한 번 낳아 키우는 이상, 자기 중심을 잘 잡는 게 정말 중요해. 키워보면 알겠지만 사람들이 정말 말이 많거든. 그런거 하나 하나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중심을 잘 잡는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


과연, 그때는 몰랐으나 아이를 키워보니 그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어린이집만 하더라도 사실 의견이 분분하다. 얼마전 11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어린이집에서 낮잠 재운다고 이불로 질식시키는 등의 학대사고로 한참 언론이 들끓을때만 봐도 인터넷 댓글들이 다양했다. 그렇게 어린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 것부터가 잘못이 아니냐 에서부터 아기를 편하게 키우려면 아예 낳지 말았어야지 등등, 어린이집에 아이를 일찍 보낸 엄마에게 비난의 화살이 빗발쳤다. 나만 하더라도 아침에 아기를 데리고 어린이집 앞에 서 있다보면, 지나가는 할머니가 아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아니 이렇게 어린애를 벌써..."하고는, 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언니가 말해던 '중심 잡기'가 떠올랐다. 남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방식대로 밀고 나갈 것. 사실 아기를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는 게 불쌍하다는 것은 어른들 입장에서 생각한 것뿐이다. 우리 아기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린이집 선생님만 보면 웃고 좋아하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가고, 집에서는 깨작거리는 이유식을 거기서는 경쟁하듯 먼저 먹겠다고 아우성이며, 어린이집에서 실컷 재미있게 놀아줘서 그런지 집에와서도 한참을 웃고 즐겁게 논다. 엄마랑만 붙어 있을때는 기껏 놀아준다는 게, 고음불가 주제에 우쿨렐레나 켜며 노래를 부르지 않나, 재미없는 책이나 잔뜩 읽어주며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하는게 전부였는데, 어린이집에서는 보육 전문가들이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놀아주니 얼마나 즐거운가. 말만 하지 못하지 온몸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쏟아내는 게 아기들이다. 아침에 갔을때 아기가 얼마나 선생님을 반가워하는지, 집에 데리고 올 때 얼마나 선생님과 떨어지길 아쉬워하는지, 눈빛만 봐도 안다.

 

처음에 느꼈던 선생님에 대한 의구심은 당연히 사라졌다. 다행히 아기는 선생님을 잘 만난 것 같고, 덕분에 어린이집 문제에서는 크게 걱정할 것 없이 복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곳에 정착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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