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직 우리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신체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 금전적인 문제였다. 우리는 결혼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여전히 편히 몸 누일 전세집도 마련 못했고 남편은 여전히 내 편이 아니었다. 이 세상 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다고 하듯 이 남자도 결혼하니 갑자기 효자가 되어 사사건건 조씨(남편은 조씨다) 집안의 대변인으로써 그들의 입장을 강요했다. 물론 나 역시 우리집의 대변인이 되어 반박하니 서로의 입장이 좁혀질 수가 없었다. 신체적으로야 뭐, 나는 이미 서른 중반이었고 남편은 마흔을 향해 달리고 있었으니 늦었다고 보면 늦은 셈이지만, 결혼을 괜히 했다고 후회까지 종종 하던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부모가 덜컥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난했던 싸움도 어느 정도 잦아들고, 대출 대부분을 끼고 아파트를 계약하여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아기가 선물처럼 우리에게 찾아왔다. 어쩌면 그만 마음의 안정을 찾으라고 아기가 와 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딱 맞게. 의학적인 노산의 경계 직전에 서있던 나는 많은 축하를 받았고 나와 남편 역시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기뻤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직시해야했다. 이제 막 대출을 엄청 받아 사버린 아파트는 어쩌지? 은행에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휴직을 해버리면 대출 원금은? 이자는? 한 사람이 벌어도 당분간 이자만 내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까? 아기를 낳으면 돈이 많이 든다던데, 저금 해 놓은 것도 전부 집 계약하는 데 써버린 상황에서 앞으로의 지출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지나갔고 내 배는 쑤욱 쑤욱 커져갔다. 단단하고 속이 꽉 찬 수박을 뱃속에 담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점점 숨쉬는 것도 힘들어졌고 지하철을 타러 오르내릴때는 허벅지 근육이 터질것 같았다. 멜론만하던 수박이 진짜 수박처럼 커질 무렵에는 무릎 사이도 벌어지고 발목도 자연스레 밖으로 빠져 팔자 걸음으로 뒤뚱뒤뚱 걸어야 했다. 그 와중에 일 때문에 신경을 썼더니 배가 찌르르 아파왔다. 병원에 갔더니 아기 머리가 너무 많이 내려와 있다고 조산기가 있으니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의 배려로 급한 일만 마무리하고 조금 일찍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다.
여전히 경제적인 문제가 마음에 걸렸지만 어쩌랴,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건강하게 아이를 낳는 것에 집중하는 일. 예정일까지 갑자기 생긴 3개월의 시간동안 태교를 하며 엄마가 될 정신적 준비를 했다. 육아 관련 도서를 닥치는대로 섭렵하며 백지 상태에서 스폰지처럼 흡수해나갔다. 아기를 낳으면 꼭 수면교육을 해야지, 오, 경제교육, 독서교육은 필수야, 유대인이 한다는 하브루타 교육법도 좋을것 같네, 출산 시 나오는 무슨 호르몬이 아기에게 좋다던데 무통주사를 맞으면 효과가 없다 하니 가능하면 맞지 말고 출산해봐야지, 등등 수없이 많은 생각과 각오도 했다.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뱃속 아기에게 들려준다고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도 불러주고 클래식도 자주 틀었다. 시끄러워서 그런건지, 좋아서 그런건지 알 수 없지만 음악을 들을 때 아기는 내 뱃가죽을 찢고 나올 듯 다리를 쭉쭉 펴대며 움직이고 놀았다. 톤이 낮은 아빠 목소리를 아기가 더 잘 듣는다고 하여 남편에게 자기 직전 동화책을 읽어달라고도 했다. 가능하면 마음을 편하게 먹고 아기에게 세상은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니 무사히 나와서 행복하게 지내자고 둘이 도란도란 -사실은 혼자- 이야기도 했다.
내가 너무 세상의 긍정적인 측면만 이야기 해 준 걸까? 아기는 세상을 너무 궁금해했다. 빨리 나와 놀고 싶었던 모양이다. 굳이 예정일의 열흘이나 전에 먼저 세상을 보겠다고 아우성이었는데, 진통으로 몸을 배배 꼬면서도 '예정일 하루만 넘겨도 한 살이 어려질 수 있었는데 아까워라'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정확히 38주 3일 만에, 진통만 32시간을 넘게 버티며 힘들게, 힘들게 엄마가 되었다. 자연출산은 무슨, 무통주사 맞아도 죽을뻔 했는데, 없었으면 진짜 큰일날 뻔했다. 좁은 골반으로 오랜 시간 버티며 힘들게 세상을 나온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호흡이 가쁘고 울음 소리가 약하여 곧장 인근 대학병원 인큐베이터로 직행해야했다. 아기를 낳다가 잠깐 기절한 나는 미약한 아기 울음 소리에 눈을 떠 주위를 살펴보다가 대학병원 직행 전 아주 잠깐, 1초 정도 아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굴이 자주빛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소소한 일상-Daily > 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인다는 것, 먹는다는 것 (0) | 2018.11.07 |
---|---|
어린이집 (0) | 2018.11.06 |
아기의 첫 웃음 (0) | 2018.11.06 |
100일 동안 (0) | 2018.11.05 |
첫 만남 (0) | 2018.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