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100일 동안

gowooni1 2018. 11. 5. 14:12




아기를 데리고 와서 처음 몇 달 간은 정말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른다. 시간이 하루 단위로 마무리되는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어져있는 것 같았다. 아기는 한 두시간 간격으로 울었고 그 때마다 우유를 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줘야 했다. 아기가 자는 시간에 잠을 자야 한다고들 했지만, 막상 잠이 들려 하면 또 아기가 울어대니 당최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을 못 자니 미칠 것 같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시간 이상 푹 자보는 게 소원인 날들이 계속되었다. 다크서클은 턱 아래까지 내려왔고 눈은 맨날 침침했다. 인류 최대의 고문은 역시 잠을 못자게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잠을 못자니 안 그래도 회복되지 않은 몸에 우울한 기분이 겹쳐, 아, 이렇게 모두들 산후 우울증에 걸리는구나, 왜들 산후 우울증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유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줬는데 아기가 울면 왜 우는지 알 수 없어 그것 또한 죽을 맛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영겁의 시간 동굴에 갇혀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는데, 이러한 인생이 앞으로 평생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니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않았던 엄청난 책임감의 중압감이 밀려왔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아기 울음소리의 노예가 되어 평생 우유 먹이고, 기저귀 치우고, 옷 갈아입히고, 빨래하고, 젖병을 닦아 소독하고, 목욕 시키고, 재우는 고행길을 걸어야 하는 기분이었다. 아기를 키우는 게 힘들다는 말만 들었지 막상 그 생활 안에 갇히니 이건 힘들다는 말 정도로 끝날 게 아니라, 정말, 엄청나게, 죽을만큼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걸 왜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는지 모두를 원망하고 싶었다. 이렇게 힘든데 왜 사람들은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하는지, 키워주지도 않을거면서 아이만 낳으라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아기가 앞으로 어떤 기쁨을 가져다주든지 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무책임한 사람만은 절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뭐, 모든 순간이 힘들었던 건 아니다. 아기가 배냇웃음을 지을 때면 그게 너무 귀여워 얼른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건 한 순간이라 포착하기 힘들었다. 조금씩 눈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탐색하거나 엄마 눈을 빤히 쳐다볼 때는 혹시 내 목소리를 기억할까 싶어 뱃속에 있을 때 들려주던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러나 아기는 별로 기억하는 것 같지 않았고 금방 싫증을 내거나 울거나 무언가 다른 걸 요구했다. 이런 시간들은 전체의 0.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이 0.1퍼센트의 시간으로 나머지 99.9퍼센트의 시간을 버텨나갈 힘을 겨우 얻었다.


뱃 속에 있을 때는 아기가 마냥 건강하고 잘 먹고 쑥쑥 클 줄 알았는데, 이 역시 크나큰 착각이었다. 특히 토를 엄청나게 하는 게 문제였다. 아기들이야 토를 자주 한다고들 하니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사실 이게 절대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었다. 토를 자주 하니 옷도 자주 갈아입혀야 하고 우유도 더 자주 먹여야 하고 빨래감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모든 일이 몇 배로 늘어나는 것이었다. 토를 하는 양상도 매우 다양해서, 마시는 와중에 왈칵 하기도 하고, 다 마신 후 트림을 시키는 와중에 쏟는 건 다반사였다. 트림을 다 한 것 같아서 눕혀 재우고 주방에 나가 설거지를 하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보면 우유를 마신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기 침대 위에 누워 사방이 다 젖도록 쏟아내기도 했다. 안락의자에 앉아 아기를 왼팔에서 오른팔으로 살짝 옮기는 와중에는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분수토를 하는 바람에 의자와 카펫은 물론 그 사이에 있던 나도 그 하얀 비를 맞아야 했다. 이렇게 자주 분수토를 해도 매번 마실때마다 그러는 건 아니니 안심하라는 소아과 의사의 말만 믿고 그저 버틸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토를 잘 하는 아기를 위한 분유를 찾는답시고 몇차례 바꿔봤는데, 그런 분유에는 전분 성분이 섞여 있어서 그런지 변비가 심해져서 아기가 더욱 힘들어했다.


아기의 컨디션이 저런 상황에서 무슨 수면교육이랴. 정말 내가 엄청나게 원대한 꿈을 꾸었다는 걸 깨달았다. 수면교육은 아기가 잘 먹고 잘 자는 이상적인 상태일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가능하면 생후 6주부터 시작해 통잠을 자도록 유도하는 것이 수면교육의 핵심인데, 우리 입장에서 말할 것 같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우리는 아기가 통잠은커녕 제발 3~4시간이라도 좀 자주기를, 소화를 잘 시켜주기만을 바랐고, 이것뿐만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 아기에 대한 바람이 소박해졌다. 수면교육 다음 시도해볼 예정이던 독서교육은 당연히 더욱 원대한 꿈이 되었다. 그저 아기가 건강하게만 자라나주길 바라는 필부필부가 되었다.


남편과 나의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푸석해지고, 헬쓱해지고, 주름이 깊어졌다. 피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의 경우는 특히 임신 때부터 생긴 기미가 수면 부족 및 다크써클과 겹쳐 더욱 시커매지고 있었다. 출산 후 늘어진 뱃가죽은 여전히 축 쳐져있고, 거기다 배 중앙에 생긴 임신선은 뱃가죽이 쳐지면서 더욱 새까매보이는데다, 안그래도 없었던 가슴은 거의 사라져버린 주제에 들어가라는 배는 들어가지도 않고, 피로에 쪄들은 눈 아래엔 눈밑 지방까지 툭 붉어져나와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한 두 달 만에 10년은 폭삭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아기가 100일이 되던 날, 나는 아기 백일상을 차리고 셋이 가족 사진을 찍은 후, 곧장 근처 피부과로 달려가 레이저로 기미부터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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