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아기와 함께 한 첫 1년

첫 만남

gowooni1 2018. 11. 5. 10:52





임신을 하면서 자기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거라 예상하는 엄마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눈에 아기가 보이지 않으니 도통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아기는 괜찮을까? 태어나서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불안해하진 않을까? 엄마 품에 안기고 싶어하진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나 혼자만의 기우이길 바랐다.


신생아실 면회는 하루에 두 번, 30분씩 가능했는데 나는 아직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남편만 하루 한 번 다녀왔다. 태어나자마자 찍은 사진이 없는게 제일 아쉬웠다. 사진이라도 있으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을텐데, 하필 신생아실은 촬영까지 금지되어 있었다.

"아내가 아기를 너무 보고 싶어 한다고 사정하면서 한 장만 찍어다 줘."

그 다음날 남편은 미션 클리어, 무사히 한 장 찍어 나왔다. 동정에 호소하니 살짝 허락해 준 간호사의 인간적인 배려 덕분이었다. 그러나 인큐베이터 안에서 콧 속에 호스를 잔뜩 꽂은 채 눈 감고 찍힌 사진으로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영 답답했다. 결국 나는 산부인과에서 퇴원하고 산후조리원으로 들어가는 날, 그 사이 시간에 처음으로 아기 면회를 감행했다. 길 가에는 눈이 쌓여 있고, 몸은 회복되지 않아 다리는 후들후들하고, 껴 입은 패딩 사이로 찬 바람이 파고 들었지만 햇살만은 따뜻한 겨울날이었다.


왠지 대학병원 신생아실이라면 아기들의 생사를 결정짓는 긴박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막상 가서 대기하고 있으니 딱히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다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엄마 아빠들이, 하루에 몇 분 주어지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 얼굴 보고 싶어서 긴 줄을 서가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일반 병실이랑 다른 점이라면, 전부 마스크를 써야하고, 비닐로 된 앞치마를 둘러야 하고, 손을 깨끗이 씻고 나서야 입장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과정들 때문에 긴 대기줄을 서서 입장하고 나서도 시간이 꽤 걸려 실제 면회시간은 30분이 못 되었다.


그렇게 하여 처음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기를 마주했을 때, 아기는 여전히 코에 호스를 꽂고 팔목과 발목에는 각종 주사 바늘이 꽂힌 채 앙상한 가슴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자고 있었다. 지난 8개월동안 씩씩하고 명랑하고 강한 엄마가 되기로 다짐했기에 망정이지,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아 하마터면 엉엉 울 뻔했다. 나와 남편은, 우리에게 주어진 몇 분 안되는 시간동안 '오늘의 아기 모습'을 깊이 기억하기 위해 조용히 아기의 자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면회를 마치고 산후조리원으로 돌아가는 중, 나는 임신기간 내내 그렇게 마시고 싶었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 마셨다. 그 한 잔에는 그동안 나의 노고를 스스로에게 치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 아까 눈물이 왈칵 날 뻔했는데, 가까스로 참은거 알아?"

"그랬어?"

"응, 나는 슬픈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데, 처음부터 약한 모습 보이면 안되잖아."

남편은 아빠얼굴로 웃으며 묵묵히 운전을 했고, 나는 이내 차창 밖의 앙상한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침묵에 잠겼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니 뱃 속에 정말 아기가 없다는 게 실감났다. 임신은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그건 다 끝이 있기 때문일거다. 끝나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 기간을 더 행복하게 포장하는 것 아닐까.


아기는 정확히 2주 동안 신생아실에 입원해 있었다. 덕분에 나는 산후조리원에 있는 대개의 시간을 아기 없이 혼자 혹은 남편과 보냈다. 다른 사람들은 아기와 첫 2주를 함께 수유도 하고 ,말도 걸고, 교감을 나누며 보내는데 그럴 수 없는 우리 현실에 다소 서글퍼졌다. 게다가 그 기간은 크리스마스 및 신년까지 포함하고 있었으니 아기는 첫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신생아실에서 홀로 보낸 셈이다. 다들 아기가 퇴원하면 고생이 시작되니 지금 편히 쉬고 체력을 비축해 두라고 말해 줬지만, 그게 또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매일같이 아기를 보러 가야 직성이 풀렸다.


아기의 호흡은 금방 좋아졌으나 소화를 거의 못 시켰고, 거기다 황달수치까지 올라가 많은 시간을 형광등 밑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엄마 아빠의 포근한 품에 못 안겨 스트레스를 받아 황달이 생겼는지, 아니면 황달이 높아서 차라리 병원에 입원한게 다행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2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아기를 데려오는 날에는 그저 설레고 마냥 신이 났는데, 그 때 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힘들 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저 품에 쏘옥 들어오는 아기가 부서질 것만 같아 조심조심 안고 살금살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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