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육아일기 D+296 : 아기에 대한 관심

gowooni1 2018. 10. 11. 11:44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 많은 사람들이 말을 건다. 평소라면 나한테 관심도 주지 않았을 사람들이 내가 아기를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꽤 친근하게 느껴지나 보다(물론 아기한테 친근감을 느끼는 거겠지만).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는 사람들은 아장아장 걷는 아기에서부터 초등학생, 미혼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 이제 아이를 다 키운 중년의 사람들, 그리고 노인들까지 다양하다.


처음보는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거는 것이 아직 낯설 무렵,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기만 했다. 아기를 키우면서도, 말을 하는 아기들이 말을 걸면-우리 아기는 아직 말을 못하니까-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몰라서 웃었고, 붙임성 있게 다가오는 초등학생들은 이 아이들의 놀라운 사교성에 익숙하지 않아 웃었고, 어른들 및 노인들 역시 나한테 말을 거는게 아니라 아기만을 보고 말을 거니 딱히 할 말이 없어 웃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아기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귀여움과 예쁨을 받고 있음을 굳이 거절하고 싶지는 않으니 웃으며 나 역시 호감을 보이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사교성을 보이며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은 힙시트를 하고 서점에서 신간을 둘러보고 있는데, 멀리서 나(와 아기)를 발견한 한 여자가 거의 달리듯 다가와 구면인 듯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말을 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기는 몇 개월인지, 나는 몇 살인지-나는 왜?-등등 호구조사를 하듯 상세히 물어보며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려 하는데 나중에는 더 이상 할 말은 없고, 계속 말을 거는 이 사람과의 대화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하는 와중 다행히 남편이 끼어들어 주어 그 자리를 모면했다. 한편으로는 미안하면서도 해방감을 느끼며 서점을 나오는데 그 사람의 아쉬워하는 시선에 괜히 미안해졌다. 남편은 이런 사람들을 통틀어 '이상한 사람'이라고 지칭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호감을 표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매도하지 싶지는 않은 심정이다.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 남편과 셋이 다니면 사람들이 말을 잘 안 걸지만, 아기와 단 둘이 다니면 그 횟수가 급상승한다. 한 번은 아기를 앞보기 하여 힙시트를 하고 집 근처 번화한 전철역에 볼 일이 있어 가는데, 지나가던 모든 노인분들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유명인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연예인이 되면 어딜 가든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사를 할테니 아마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모든 아이들이 예뻐보인다는 것이다.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일부러 노키즈 존을 찾아 가지는 않았지만 거의 그럴뻔한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아무리 못생긴 아이도 다 예뻐 보이고 귀여워 보이는 건 내가 '엄마의 눈'으로 아이를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냥 귀여워하던 친구 아기도 내 아기를 낳고 나서 보니 더 귀여워 보이고, 동네에 뛰어다니는 꼬마 아이들도 '저렇게 다니면 춥지는 않을까,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도 '엄마의 눈'이 장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참견하고 싶어하는구나, 하고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나만 해도 몇 번이나 이런 소리를 노인분들께 들었다. "그렇게 하고 다니면 아기 감기 걸려요.", 혹은 "아기 모자 씌워줘야지, 양말도 신기고."


엊그저께는 마트에서 또 한 명의 '과도히 친절한 사람'을 마주쳤다. 화장실에서 베이비 시트를 펼쳐놓고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는 나를 발견한 그 여자는 화장실에서부터 장보러 들어간 마트 안에서까지 계속 말을 걸며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 분의 요지는 대략 이랬다. 나도 아이를 낳아서 키워봤지만 정말 지금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때도 잘해준다고 해줬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잘 해줄 걸 하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지금 같아선 우리 아들하고 장가도 안보내고 평생 함께 살고 싶을 정도다, 아기는 발달과정이 다 달라서 조금 늦는 거 같아도 결국엔 다 따라오니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등등. 어찌나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시던지 그 분을 기다리던 일행도 지겨워하고 먼저 마트에 들어가 있던 남편도 내가 언제 오나 기다릴 정도였다. 헤어지고 나서 가만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내게 말하던 심정은 아마 교인들이 '이렇게 좋은 감정을 살아 생전 같이 누리자'는 전도하는 마음과 같지 않을까 싶었다. 마음에 풍부한 감정이 흘러 넘치다 보니 그런 말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긴, 또 모르는 일이다. 원래부터 그런 캐릭터인 사람일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