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육아일기 D+301 : 말하는 연습

gowooni1 2018. 10. 16. 12:03




배틀 트립은 내가 고정하여 즐기는 몇 안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그것도 등장하는 사람들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데, 아무래도 어린 아이돌이 나오면 흥미가 떨어져 잘 안보게 된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나 그보다 약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여행할 때가 특히 재미있는데 아무래도 유머 코드가 또래랑 비슷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런데 지난주 태진아와 강남이 나와 단양을 가는 프로를 진행했다. 으음, 태진아와 강남? 둘이 쿵짝이 잘 맞는 거 보니 뭔가 오래 같이 생활한 느낌이 난다. 검색해보니 강남이 트로트 가수로 전향해 태진아와 함께 공연을 다닌단다. 암튼 둘의 나이 차가 꽤 많이 나는데도 잘 맞는 거 보니 태진아가 많이 받아주는 것도 있고 강남이 많이 재롱을 떠는 것도 같다. 뭐, 일단 티브이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그렇더란 얘기다.


이 이야기를 왜 꺼냈는고 하면, 단양 편에 깜짝 등장한 그들의 히든 카드, 역사 강사 최태성이 꽤나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은 그냥 다니는 것 보다 역사를 알고 찾아가는게 훨씬 재미있는데 이번 단양 편은 그것까지 충족시켰다. 처음에는 히든 카드로 누가 나올지 궁금증을 증폭시켰는데 만약 요새 유명한 또 한 명의 역사 강사가 나왔으면 실망할 뻔했다. 그 사람은 아무래도 뭐랄까, 프로필을 보나 이미지를 보나, 연예인이 되기 위해 역사 강사가 되었다는 인상이 강하단 말씀이다(나에겐 그렇다). 그런데 최태성은 역사를 좀 더 재미있게 말하기 위해 역사 강사가 되었다는 느낌, 그러니까 역사를 위한 진짜 역사 선생 느낌이다. 말하는 것만 봐도 역사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너무 즐거워 하는게 눈이 보인다. 저 사람과 여행을 다니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겠구나 싶다. 그의 자녀가 은근 부러워진다. 매일 저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아빠와 산다면 대화를 나누는 것,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매일 기다려질 것 같다. 나도 아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엄마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공부도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재미있게 말하는 법도 좀 연습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토리를 즐길 줄 알아야지. 한동안 스토리 위주의 소설을 보지 않았다.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인문 교양 서적, 요새는 특히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빠져서 육아서적만 취급했더니, 편식으로 인해 머리가 스토리의 즐거움을 잊어가고 있는 듯 했다. 반면 남편은 무협소설만 읽는 사람인데 최근 주성치 영화가 티브이에서 많이 나와 자꾸 내게 스토리를 설명하려 드는 것이다. 주성치 영화의 재미를 느끼려면 무협 소설을 많이 보면 좋다, 특히 김용의 작품은 꼭 봐야 한다. 등등. 알리바바 마윈도 김용의 팬이라고도 하고, 아무래도 스토리의 즐거움엔 무협소설이지 싶어 고등학생 때 이후 보지 않았던 무협지를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남편에게 작품 추천을 부탁하니 주저없이 '영웅문'이란다. 당장 근처 도서관으로 가 찾아보니 없고, '사조영웅전'이 있다. 나중에 알아보니 아주 옛날 '영웅문'이란 이름으로 고려원에서 나온 건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이 세 작품을 합쳐 내 놓은 거란다. 도서관에 비치된 '사조영웅전'은 '김용소설번역연구회'가 정식판권을 가지고 김용의 최종 교정까지 받아 번역한 작품이란다. 읽어보니 과연, 김용, 김용 할만하다. 어쩜 이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을까, 그는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또 한 권 빌려온 책은 스토리텔링에 관한 책인데 좀 독특하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게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서 해준다고 한다. 오, 흥미롭다. 대충 들춰보니 이야기를 만드는 기본 구조에 대한 노하우를 얘기하고 있는 듯하다. 배경을 설정하고 인물을 창출하고 사건을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하기, 주인공과 악당의 대립구도를 만들기, 무엇인가를 쟁취하고 싶은데 그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만들기 등등. 이러한 이론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를 만들어 아기에게 들려주면 좋아할까? 아직은 너무 어리고, 나중에 좀 더 크면 시도해봐도 재밌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아이가 다 따라줘야 하는 일이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꼭 해야지, 하고 마음 먹었던 게 크게 4가지가 있었는데- 수면교육, 독서교육, 경제교육, 하브루타 교육- 이 중 수면교육은 써먹지도 못했다. 아기의 컨디션과 사이클이 맞아줘야 하는데 전혀 맞지 않아 아예 시도도 못했다. 독서교육? 책은 읽어주기는 하지만 별로 집중하지 않는다. 뭐든 결국 상호작용이다. 부모의 욕심과 바람으로 인해 뭔가를 억지로 시켜봤자 역효과라는 걸, 이미 우리가 자라면서도 뼈저리게 느꼈고, 여전히 느끼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다.


요즘의 내가 노력하는 것은,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고 아이가 하고자 하는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아직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이리와' 라든가 '안돼' 하는 것에 반응하는 거 보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인데, 지금부터라도 말하는 습관을 제대로 들이지 않으면 부모라는 이름의 독재자가 되기 쉬울 것 같다. 처음부터 나 자신의 말하는 습관,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과 관계를 제대로 형성해야 나중에 아이에게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필요할 땐 단호하게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