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 그러니까 개천절에 하필 남편이 회사에 가야해서 혼자 아기를 봐야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기가 유난히 보채는 바람에 무리를 좀 했다. 혼자 서너 시간 가량을 힙시트 하고 산책을 시켰다. 내려놓기가 무섭게 울어대니 당최 내려놓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결국은 내내 아기를 들고 다닌데다가 남은 체력이 바닥 상태였던 터라 병이 나고 말았다. 목요일 아침에 먹은 것이 계속 소화가 되지 않아 까스활명수를 마시며 버티다 금요일엔 기어코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엉덩이 주사를 양쪽으로 두대나 맞은 후 병실에 누워 링겔을 맞았다. 밖에는 콩레이 영향으로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병실에는 죄다 환자들이 누워 콜록거리고 있으니 뭔가 마음이 짠 한게, 나 자신에게 측은해졌다. 나이를 드니 병실에 누워 링겔 맞는 횟수가 잦아지는 것 같다. 체력 관리좀 해야지 이래서는 안되겠다 생각하면서도 부대끼는 속 때문에 딱딱한 병원 침대 위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렸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우울해서 어제는 남편과 아기, 셋이서 롯데월드타워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다. 주말에 거의 먹은 것이 없어 조금만 걸어도 힘이 빠지고 속은 계속 부글거리지만. 어차피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한 오래 걸을 수도 없으니 괜찮겠지 싶었다. 서울 사는 사람이 남산에 안 오른다고, 집 가까이 롯데월드타워가 있다보니 평소 갈 생각을 못했던 곳이다. 아기 낮잠 다 재우고 간식도 다 먹이고 느긋하게 오후 3시쯤 출발하니 차도 안 막히고 주차도 수월해서 순조로웠다. 오며 가며 10분도 안걸리고 아쿠아리움을 다 보니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기분 전환 할 훌륭한 곳이 있었거늘 왜 늘 굳이 그 먼 하남 스타필드까지 다녔던가 싶었다. 마트에 들러 저녁에 먹을 것까지 사고 집에 오니 5시밖에 되지 않았다. 훌륭하다, 훌륭해.
아침에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집에 와서 약간은 대대적인 작업을 했다. 집안 구조 바꾸기. 아기가 점점 행동반경이 넓어져서 재배치 할 가구들이 좀 있었다. 화장대를 거실에서 안방으로 들여놓고 거실을 아기 친화적으로 정리했다. 아기 방에서 이불 쌓는 용도 전락한 안락의자를 꺼내 거실 한 쪽에 배치했다. 뭔가 집이 한 결 더 정돈된 기분이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기도 뭔가 바뀐 집 구조에 신이 나는지 오늘은 보채지도 않고 이 장난감, 저 장난감 들쳐보며 실컷 웃으며 논다.
어린이집에서 아기를 데려오기 전에 그냥 데려오면 서로 힘들다. 나는 무엇을 하고 놀아줘야 할지 몰라 힘들고 아기는 재미가 없으니 힘들고. 어린이집에서는 이것저것 놀이 프로그램도 많고 선생님들이 밀착해서 놀아주니까 심심할 겨를이 없다가, 집에만 와서 거실에 덩그러니 던져지면 그때부터 엄마 껌딱지의 엥엥 보채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랑 놀아주는 데에도 머리를 써야 한다. 오늘은 무엇을 하고 놀까, 어떤 것을 먹일까, 어떤 책을 읽어줄까, 등등. 모든 일이 유비무환이다. 오늘은 핑거푸드 놀이까지 살짝 새로운 프로그램을 첨가해서 준비했다. 데려오기 전에 당근과 아보카도, 사과를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을 크기로 잘라 놓고, 간식으로는 사과 바나나 퓨레를 준비했다. 덕분에 실컷 웃으며 만족하게 놀다가 간식까지 배부르게 먹은 아기는 보채지도 않고 스르르 낮잠이 들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정말 정말 흔치 않으므로 꼭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고, 지난주 상황이 깊은 골이었다면 오늘은 산 마루에 서 있는 기분이다.
아기가 잠든 방문을 반만 살짝 열고 거실로 나와 유튜브에서 가을 재즈 채널을 찾아 틀고,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 이슬차를 우려 마시고 있자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기분. 나이를 먹고 행복의 기준이 바뀐다. 무엇인가 하고픈 일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한 기분은 영속적이지 않다. 그것을 하지 않고 있을 때는 불만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나의 행복 기준은 더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고, 배를 따뜻하게 해주는 차를 한 잔 마시고, 집 안은 원하는대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고, 아기는 낮잠을 자고, 퇴근시간이 되길 기다리며 남편을 기다리는 이 상태. 훌륭하지 아니한가 말이다.
'소소한 일상-Daily > 일상-생각-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아일기 D+301 : 말하는 연습 (0) | 2018.10.16 |
---|---|
육아일기 D+296 : 아기에 대한 관심 (0) | 2018.10.11 |
육아일기 D+286 : 엄마의 삶 (0) | 2018.10.01 |
동경, 멋진 라이프 스타일 (0) | 2018.09.13 |
육아일기 D+253 : 순수한 즐거움 (0) | 2018.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