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기

gowooni1 2018. 11. 1. 11:05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기준이 없다는 건 불쌍하다. 한 지인은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여전히 남들 시선에 기대어 살아간다. 이렇게 하면 남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저렇게 해야 남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 사람의 기준인데 뭐랄까, 한참 어린 나의 입장에서 봐도 답답한 지경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남들'이 자기 기준이라고 해명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 기준'이 결여된 인격체에서는 책임감도 없고 권위도 없다. 자신이 뭔가를 결정하면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싫다고 하는 사람의 주장을 누가 따르겠는가. 저렇게만은 나이 먹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막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게 피곤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그게 좀 더 명확해졌다. 인생의 한 장, 그러니까 인생을 초장 중장 종장으로 나눠본다면 초장이 확실히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물론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것이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무엇보다 엄마로서의 엄청난 책임감이, 두 어깨를 휴일없이 24시간 끊임없이 압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는 그만두면 되고, 결혼이야 이혼해도 그만인 세상이지만 아이는 언제까지나 나의 아이로서 세상에 존재할 것이니 빼도박도 못하는 것이다. 언제든 리셋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인생은 그게 아니더란 말이다.


이 책임감은 나를 정신적으로도 심히 압박해서, 타인의 시선이 예전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쉽게 말해서 남들 생각 하나 하나 신경 쓸 겨를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더이상 내가 몇 살로 보이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아졌고, 다른 사람 눈에 내가 '근사해'보이는지도 중요하지 않아졌다. 아이를 보느라 하루하루 '생존'에 급급한 생활에서 그건 사실 하찮은 고민거리였다. 그러고보니 인생의 초장, 하찮은 고민거리가 제법 큰 고민이던 시절이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휴.


한편으로는 남들로부터 평가받는 삶이 지겨워진 것도 있다. 뒤늦게라도 이런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어찌보면 씁쓸한 일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평가받는 자, '을'로서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의 반증이니까. 그렇다고 '앞으로는 '갑'으로의 인생을 살겠어!' 이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써가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다.


역시 그러기 위해선 '자기 기준'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나답게 제대로' 살려고 하는데만도 자기 기준이 필요한데, 거기다 한 인간의 엄마로서야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일이 어렵다. 나만을 위한 자기기준은 어떻게든 내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니까 그럭저럭 버틸만한데, 다른 인격체를 위한 기준을 세우고 지키는 일은 몇 배의 요령과 자기 신뢰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육아법만 해도 시중에 나와있는 책에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까지 합치면 엄청나게 많은데, 그렇다고 그걸 다 따른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고 그저 나의 경험과 아기의 성향, 그리고 타인의 조언 약간을 적용하여 조금씩 기준을 수립하고 수정해 나갈 일이다. 이 사람의 말에 따르고 저 사람의 말에 따르다 이도 저도 안되면 나도 결국 '남들'이 자기 기준이 되어버릴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남들'이 자기 기준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좀 매몰차게 말해서 정신적으로 나약하고 게으른 사람들이다. 욕도 얻어먹을 각오도 하고 손가락질 받을 용기도 불어넣어가며 자기 기준을 세웠어야지 않나 싶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을'이다. 사람들을 만날 때-특히 모르는 사람 혹은 직장 상사-는 필요이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 버리고 혹시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까 긴장의 끈을 놓치지 못한다. 앞으로도 계속 '을'일 것이다. 아기를 키우려면 주변의 많은 도움을 위해 굽신거려야 할 테니까. 다만, 조금 더 편하게, 어깨 힘을 좀 더 빼고, 배에 깊은 숨을 불어 넣고,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