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잃어버렸을까.
아기를 키우면서, 이 초순수 결정체가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렸을 순수한 즐거움'이다. 아무것도 재지 않고 계산되지 않은, 정말로 그것이 너무 즐거워서 하는 일들. 내게도 분명 그런 일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지 않게 되고, 더불어 그 즐거움을 추구하는데서 오는 순수한 기쁨까지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 일을 하고, 나중에 여유가 되면 하겠다고 미뤄두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행복 지연이 아니라 행복 망각이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이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내 아이만큼은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그저 즐거워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매 순간이 놀이이고 재미인, 매일 아침 눈 떠서 오늘은 뭐 하고 놀지, 하고 궁리를 하는 시기를 가능한 한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다.
아기랑 놀아주면서 이 아이의 행동을 가만히 살펴보면 의외의 것들에 신기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아기는 세상 모든 것들이 아직 전부 처음이니까 신기한 것 투성이일테지만, 그 가운데 기뻐 자지러지는 것들이 분명 있는데 어른인 내 눈으로 보면 당최 왜 기뻐서 웃는지 알 수 없다. 이불자락이 건조대에서 떨어지는 것에 웃거나, 자신이 손으로 쿠션을 쳤는데 쿠션에 기대어 있던 인형이 쓰러지는 모습에 웃던가 등등. 물론 까꿍을 해줘도 아직은 잘 웃어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등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어쨌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웃음 코드를 이해하려고 매번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지만 이미 떼가 묻을대로 묻고 계산하기에 급급한 어른인 내가 아이의 순수한 웃음 코드를 이해하려 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든 아기에게 감사하며 나 역시 돈이 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야지 하고 다짐을 해본다. 그러나 다짐은 다짐이고 현실은 현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이유식을 만들고 밥을 챙겨먹고 아기 간식도 챙기고 빨래도 널고 또 다른 이유식 메뉴를 고민하다 보면 '돈이 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시간이 당최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 날 업로드 되는 웹툰을 잘 챙겨본다면 그나마 여유로운 날인 편.
그렇다고 해서 시간과 자원이 무한정 주어졌을때를 상상해보자. 과연 내가 이때에도 '돈이 되지 않는 순수하게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내게 있어 그 일은 뭘까?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내 인생 속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웹툰으로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우쿨렐레를 켜고. 지금 생각나는 것은 결국 이 정도인데, 이것도 결국 시간과 돈이 왕창 주어진 상태에서 해봤자 곧 지루해질 것 같다.(흠, 하지만 이건 내가 가보지 않은 영역이므로 아무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더 높은 수준을 추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하여간 피곤하고 힘들긴 해도 내 인생을 살아가면서 틈틈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삶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어느새 이유식을 만드는 일도,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일도, 아이와 무엇을 하고 놀아줄지 고민하는 일도, 아이를 재우는 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의미있는 일과가 되어버렸는데 이 속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발견하는 편이 백번 빠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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