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육아일기 D+227 ; 중이염과 박치기

gowooni1 2018. 8. 3. 11:41




아이를 둘 이상 낳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첫째 때 힘들었던 게 기억이 안날 때가 온다. 그 때 쯤 둘째가 생각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나 역시 그럴 때가 올거라고 종용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렇지 않을거 같긴 하지만 그 마음이 이해가 될 때는 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 라고 생각했다. 만 7개월이 지나니 그랬다. 밤에 안 깨는 것은 아니지만 수유를 하지 않아도 버티는 날이 이틀 지속되자 마음에 약간의 희망과 여유가 생겨버려서, '아 그 마음이 이해가 갈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다.


아기 콧물이 2주가 가까이 되어도 나을 기미가 없어 일주일만에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중이염으로 번졌다고 항생제와 콧물약, 정장제를 처방해줬다. 그제야 요새 왜 그리 보챘는지 이해가 갔다. 아기는 말을 못하니까, 우는 것이나 보채는 것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데, 괜히 낙관적으로 일주일만에 병원에 갔는가 싶어 속이 상했다. 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약을 먹이고 이유식도 먹이고 중간중간 간식도 먹이면서 지켜봤는데, 상태가 호전되는가 싶더니 움직임이 엄청나게 활발해지는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뒹굴고, 뒷다리를 들어 엎드려 뻗쳐를 하고, 스스로 앉기를 자유자재로 하는데 총 3일이 안 걸렸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힘이 쎄져서 도저히 8.5키로의 몸에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볼 수 없는 괴력으로 식탁을 밀어제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목욕을 시키는 것이 점차 버거워지고 있었는데 거기서 그만 사고가 났다. 뭐든지 잡고 일어서려는 습성과 무게 중심이 머리로 쏠려 있는 상태에서 괴력을 발사하더니 내가 잡고 있는 손까지 뿌리치고 아기욕조 밖으로 튕겨나가 그만 이마를 바닥 타일에 퍽,하고 박고 말았다.


그 순간,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는 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머리 뼈와 바닥 타일이 부딪혀 나는 둔탁한 탁, 소리가 어찌나 무섭던지. 잽싸게 아기를 집어들어 빨갛게 변한 이마를 살펴 보았지만 겉으로 봐서는 괜찮은지 알 수가 없었다. 아파서 울어대는 아기를 달래면서 남편한테 전화를 했으나 회식에 간 남편은 함흥차사가 되어 전화를 받을 기미도, 다시 콜백 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나는 여기서 가장 가까운 병원인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이 나을지,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었던 한양대병원 응급실이 나을지 가늠하면서 나보다 1년 먼저 아기를 낳아 키우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내 한껏 고양되고 긴장된 목소리와는 다른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래? 아마..괜찮을거야."

전화기 너머로는 친구의 아기가 보채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정말? 너도 그랬어?"

"우리 아기는 바닥 타일에 부딪힌 적은 없었지만...아마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식겁한 적이 많았던거 같아. 침대에서도 떨어졌었고.."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가 어쩐지 내 마음까지 진정시켜 주는 것 같았다. 마침 안고 있던 아기도 울지 않고 전화통화를 하는 내 모습이 신기하게 보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내 입모양을 주시했다. 일단 머리를 부딪힌 아이가 토를 하지 않고 10분이상 울지 않으면 별 문제 없다는 인터넷의 카더라 소식도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게다가 배가 고팠는지 우유를 주니 잘 먹고 눕혀놓으니 금방 쌕쌕하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중이염의 상태도 확인할 겸 다니던 소아과에 방문해보니 중이염도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고 머리도 크게 이상이 없어보인다고 한다.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 이 폭염에 병원에 간다고 자꾸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 마지막으로 걸렸는데, 계속 집에만 있다가 밖에 나오니 기분전환이 좀 되는지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하며 눈을 반짝인다. 엄마가 좀 더 조심할게. 이제 큰 힘이 드는 무리한 일은 남편에게 전담하고 나는 좀 더 레시피를 연구해서 맛있는 이유식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지난 번 먹인 닭고기 사과 고구마 죽이랑 연두부 양송이 죽을 거의 다 먹었으니 이번에는 소고기 양송이 감자죽과 닭고기 애호박 당근죽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소고기 양송이 감자죽

한손에 올라갈 만큼의 소고기 조각을 물에 넣고 삶아준다. 그 사이 양송이 세 개를 블렌더로 갈아 놓고 감자 반 개도 갈아 놓는다. 소고기가 다 익혀지면 꺼내서 식혀주고 그 사이 30분 이상 불린 쌀 3스푼도 갈아둔다. 소고기까지 갈아주면 모든 재료를 소고기 삶은 물에 넣고 저어가며 끓여준다. 쌀이 들어가면 눌러붙기 쉬우므로 아무리 바빠도 중간중간 저어가며 끓여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닭고기 애호박 당근죽

냉동 닭가슴살을 하나 꺼내 물에 넣고 푹 삶아준다. 그 사이 당근을 갈아 이유식 재료를 만든다. 오늘 넣을 분량 만큼의 당근을 빼고 나머지 간 것은 이유식 재료 용기 알알이쏙에 티스푼으로 한 스쿱씩 넣어 둔다. 애호박은 갈아서 보관해 둔 것이 있어 얼린 애호박 4큐브를 빼서 준비한다. 불린 쌀 세스푼도 갈고 닭가슴살도 다 익었으면 식기를 기다렸다가 블렌더로 갈아준다. 이렇게 준비한 재료를 닭가슴살 삶은 육수에 전부 넣고 끓여준다. 물을 많이 넣으면 오래 끓여서 죽의 농도를 조절해줘야 하는데 장단점이 있다. 오래 끓이면 덥지만 쌀이 더욱 부드러워진다. 쌀은 아무리 갈아도 오래 끓이는 것이 부드러운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먼저 저녁으로 닭고기 애호박 당근죽을 먹여봤는데 역시나, 몇 스푼 먹지 않고 떼를 쓴다. 의자에 앉는 것이 싫은건지, 이유식이 맛이 없는 건지(먹을만 하던데), 더운 건지, 그냥 먹기 싫은건지, 오늘도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이 먹기를 바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