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 자신의 성향에 대해 파악한 것이 하나 있다면, 무언가에 하나 빠지면 어중간하게 빠진다는 것이다. 완전 깊이 몰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생각 안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뭔가 빨리 해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조급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요즘은 식단표 짜기, 이유식 만들기, 만화 그리기, 글 쓰기, 책 읽기 등등에 빠져 있는데 이 모든 것들에 완전히 몰두 한 것도 아니고(그도 그럴 것이 너무 분산되어 있으니까) 그렇다고 생각의 끈을 놓고 있는 것도 아니라 괜히 혼자 마음만 급해진다. 식단표를 짜면서도 '그럼 다음에는 무슨 음식으로 짜야하나' 생각하고, 이유식을 만들어 놓고도 '다음 이유식은 뭘 만들어줘야 하지'. 만화를 그리면서도 '다음 에피소드는 뭐로 하나', 글을 쓰면서도 '다음 번엔 무엇에 관해 쓸까' 라고 생각한다. 참 어중간하니 답답한 일이다. 이럴 때에는 발레리나 강수진을 한 번씩 떠올린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그녀의 삶의 모토. 그러나 나는 늘 오늘에 몰두해 있지 못하니 밤에도 내일은 뭘 해야하는가 하는 생각에 잠도 잘 못잔다. 고쳐야 하는데 하면서 고치지 못하는 것도 분명 병이다.
내게 주어진 재원이 풍족하지 않다보니 그나마 유일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시간뿐인데, 이 시간을 천천히 들여서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몰두하고 싶다. 빨리 '이것을 끝내고 저것을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버리려고 매 순간 노력할 것이다. 조급한 마음이 가져다 주는 것은 결국 시간이 지나고 보면 후회밖에 없는 것 같다. 늘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급할수록 한 템포 쉬어가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해야 하겠다.
누군가가 내 모습을 보고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인간이 하루 아침에 변하겠는가. 오히려 리마인딩 시켜준 그에게 감사할 일이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본 'I feel pretty'가 떠오른다. 뚱뚱해서 자존감이 낮은 여주인공 르네가 머리를 다친 후 자신이 너무 예뻐보이는 것부터 영화가 전개되는데 한편으로는 뻔한 코미디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각할 거리를 꽤 준다. 단지 예뻐지기만 한다는 이유로 저렇게 자존감이 180도 바뀔 수 있는지도 의아하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나 자신의 태도만 바뀌어도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시선도 흥미롭다. 그러나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캐릭터는 화장품 회사의 젊은 CEO 에이버리 르클레어(미셸 윌리엄스)다. 어릴 때부터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난 에이버리는 만인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콤플렉스 따위는 전혀 없을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콤플렉스가 조금씩 드러난다. 흥미로웠던 건 그녀에게 콤플렉스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이 우아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콤플렉스로 인한 불만이 남들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화시키지 않는다. 르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머리를 다쳐 원래의 마음 상태로 돌아오고 그 충격에 중요한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잠적하지만 그런 르네에게 남긴 에이버리의 음성메시지에는 비난의 기색이 없다. 다시 돌아온 르네도 비난은커녕 반갑게 대한다.
조급해하지 않는 마음과 남들을 늘 우아하게 대하는 마음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겠느냐, 라고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게 일맥상통한다. 조급해하지 않아야 늘 마음에 여유를 지니고 남들을 여유롭게 대할 수 있다,고. 설령 조급하더라도 내색하지 않는 여유로움 정도는 기본으로 늘 가지고 싶은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의 진정한 내면까지 그 여유로움이 깃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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