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육아일기 D+210 : 음식, 연구가 필요하다.

gowooni1 2018. 7. 17. 10:33



만화 '오무라이스 잼잼'은 작가와 그 가족들이 음식을 주 화제로 하여 오손도손 살아가는 이야기다. 에피소드 하나 하나 읽으면서 세계의 음식이나 그 역사에 관해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그보다 이 가족들의 음식 사랑이 얼마나 유별난지, 이를 바탕으로 인생을 얼마나 즐겁게 살아가는지 보는 게 더 재밌다.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나도 음식을 사랑하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더욱 만끽하고 싶어진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당장 오늘 저녁 뭐먹지 하고 생각하다보면 메뉴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귀찮아 치킨에 맥주나 간단하게 먹지 뭐, 하고 말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이런 정크푸드 생활을 청산해야겠다는 다짐을 백 번은 더 한 것 같다. 계기는 당연히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 나는 비록 그러지 못했더라도, 아이는 식도락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으니까. 그러니 나라도 먼저 영양이 가득한 음식을 맛있게 즐기며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다짐을 하고 고민을 한 결과 처음 생각한 아이디어가 식단표를 짜고 그대로 실행하는 건데 남편에게 말을 했더니 반응이 좋다. "우리도 한 주에 한 번씩 식단표를 짜면서 함께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거야. 나중에 아기가 크면 아이의 의견도 같이 반영하고. 그럼 서로 먹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잖아."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주만 해보기로 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한 주간의 식단표-이유식 및 어른 식단 포함-를 짜고 장을 보러 갔다. 아무 계획없이 그날 닥치는 대로 먹을 때에는 장 볼 때에도 손에 집히는 것, 평소에 좋아하는 것으로 손이 갔는데, 건강하고 균형잡힌 식단표를 나름 구성하고 장을 보러 가니 뭐랄까,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마구잡이로 사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월,화요일은 소고기 표고버섯 죽인데 소고기는 집에 있으니 표고버섯만 사면 되겠다, 수요일은 사과브로콜리 퓨레를 해줘야 하니 사과를 사야겠지만 하나만 필요하니 집 앞 마트에서 한 두개만 사야지, 금요일은 생선인데 지금 사면 신선도가 떨어지니 그날 가서 한 마리만 사야겠다, 지금 청경채가 싼데 다음주에는 다듬을 시간이 없으니 미리 사서 이유식 용으로 손질해 냉동보관해줘야겠다, 등등.


건강식단표 실행 첫 번째 날. 먼저 오늘은 단호박 퓨레와 쇠고기 표고버섯 죽(이유식용 및 어른용), 그리고 수박쥬스를 만들어야 한다. 아침부터 단호박을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돌려 겉면을 살짝 익힌 후 칼로 4등분을 하고 물을 부어놓은 찜기에 올려 놓는다. 이후 쌀을 씻어 물에 불려놓고 쇠고기는 물에 담가 핏기를 뺀다. 핏기를 뺀 쇠고기는 잠길 만큼만 물을 붓고 삶는다. 이유식용 죽은 안심으로 비계가 없는 것을, 어른용 죽은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눈에 보이는 냉동된 쇠고기를 사용한다. 등심으로 추정. 이제 냉동실에 굴러다니는 쇠고기 얼린 것을 다 쓴 것 같으니 다음에 마트에 갈 때에는 쇠고기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장보기 리스트에 적어 놓는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쇠고기 등심, 안심, 단호박이 익는 동안 수박쥬스를 만든다.


쥬씨에서 사먹던 수박쥬스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물을 탔을 거 같다거나, 설탕을 더 넣었을 것 같은게 아니다. 가장 아쉬운 건 씨를 같이 갈아버려서 꼭 씨앗 갈린 텁텁함을 함께 느껴야 했다는 것이다. 내가 만드는 수박쥬스에는 씨를 완전히 제거할 예정이다. 미리 사각으로 큼직하게 잘라놓은 화채용 수박을 꺼내 잘게 잘라가면서 칼로 씨앗을 하나하나 다 걸러주는데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냉장고에 오랜시간 들어있던 수박을 손으로 잡고 작업하는 거라 손가락도 시렵다. 블렌더에 하나하나 씨를 발라가며 빨간 수박 속살만 잘라 넣다보니 쇠고기 안심과 등심이 다 삶아져서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다시 수박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수박 씨 발라내기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단호박을 너무 푹 쪄버렸다. 시간을 보니 수박 손질하는 데에만 거의 30분. 요리는 재료 손질이 전부라더니 정말이군. 단호박이 식도록 찜기 뚜껑을 열어 두고 수박을 갈아 쥬스를 만든다. 블렌더로 갈아 쥬스 용기에 담는데에는 1분도 안 걸리는 것 같다. 반 잔 따라 시원하게 들이키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둔다. 오늘은 간식으로 단호박 퓨레를 주는 날이니, 수박쥬스는 내일 주기로 한다. 아기는 달콤한 수박을 좋아한다.


다 익은 쇠고기는 작은 크기로 잘라 블렌더에 넣고 간다. 다음 표고버섯을 꺼내 역시 작은 크기로 잘라 블렌더에 갈아준다. 이후 불린 쌀을 갈아주는데, 완전히 갈아버리지 않고 약간 입자를 크게 하여 씹는 식감이 남도록 갈아주는 것이 포인트이다. 이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가 않는다. 지난 번에도 입자를 남기고 간다고 갈았는데 끓여버리니 쌀이 불어서 흡사 밥알과 같은 크기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아직 이가 나지 않은 아이는 입에 넣자마자 혀로 밀어냈다. 이번에는 주의를 하면서 갈아보았다. 이때 쌀 몇 그램, 고기 몇 그램, 이런 것이 너무 귀찮아서 대충 하는데 나는 그냥 모든 재료를 1:1:1로 맞추는 편이다. 쌀을 갈아버리니 1에서 조금 안되는 것 같긴 하지만 일단 그냥 갈아놓은 만큼만 넣기로 한다. 쌀은 불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아까 고기를 끓여놓은 육수는 버리지 않고 여기에 준비해 놓은 재료를 모두 넣는다. 이제 끓이면서 저어주기만 하면 된다. 어른용 죽도 비슷하게 준비하지만 우리는 식감이 있어야 맛있으니 쇠고기만 갈고 표고버섯은 적당히 잘라서, 쌀은 그냥 넣는다. 여기에 양파도 다져 넣고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한다.


식은 단호박을 만져보니 아직 따뜻하지만 뜨거운 정도는 아니다. 숟가락으로 떠서 블렌더 통에 담는데, 너무 익혀버려서 흐물흐물하다. 덕분에 껍질이랑 속살이 한몸이 되어 잘 긁어지지 않는다. 최대한 긁어서 노란 속살만 담고 끓여 식힌 물을 조금 부은 후 갈아주면 퓨레 완성. 맛을 살짝 보니 지난 번 단호박보다 달다. 그냥 퓨레로만 먹여도 좋아할 것 같다. 지난번 것은 너무 안 달아서 닭고기 단호박 죽 이유식 할때 넣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아기가 계획대로 잘 먹어주면 좋으련만, 단호박 퓨레는 달짝지근하니 맛있는데도 거부한다. 오히려 지난번 달지 않은 닭고기 단호박 죽을 더 잘 먹었다. 폭염특보가 내린 날이니 시원한 수박이라도 먹이고 싶지만 차가운 건 안되니 전자레인지에 20초 데워 숟가락으로 떠 먹여보았다. 쥬스라고는 하지만 그대로 갈은 거라 아기에게는 슬러시에 더 가까운 식감이다. 한 숟가락 떠 먹이니 맛있는지 더 달라고 손을 뻗으며 아우성이다. 쇠고기 표고버섯 죽은? 한 입먹고 운다. 배가 안고픈데 먹여서 그런건지, 졸려서 그런건지, 맛이 없어서 그런건지 알 수가 없다. 아기의 알 수 없는 반응에 나는 매일 내일은 무엇을 만들어 줘야 아기가 잘 먹을까, 하고 고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