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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엄마의 힘 - 사라 이마스

gowooni1 2017. 10. 20. 13:08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서 기다리는 중 '유대인 엄마의 힘'이란 책이 로비에 놓여져 있는 걸 봤습니다. 원래 유대인 하면 교육으로 유명하니까, 저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궁금해서 한 번 들춰봤습니다. 얼핏 보니 중국 유대인 엄마가 이혼 후 세 아이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이민가서 유대인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내용처럼 보입니다. 보아하니 그렇게 고학력자인 엄마도 아닌 것 같고, 이스라엘로 가서는 춘권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세 아이를 키워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제법 훌륭하게 자라났습니다. 점점 흥미가 생겨서 더 자세히 읽어보고 싶었지만 검진을 받으러 들어오라는 말에 일단 책을 덮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말이죠. 


다음 날, 육아에 대한 책을 잔뜩 빌려 볼 생각으로 도서관에 갔다가 다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이 책을 먼저 집어 든 다음 또 다른 유대인 교육 관련 책들을 골라 왔습니다. 사실, 유대인 교육에 관한 책을 몇 권만 읽으면 그들의 노하우를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얼마 되지 않는 인구 수에 비해 월등히 높은 아이비리그 진학률, 하버드를 비롯한 명문대 교수의 비율, 세계적 갑부로서 자리를 꿰차고 있는 비율 등등 유대인을 수식할 수 있는 훌륭함의 비율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비율을 차지하게 만든 근간인 그들의 교육방식이 각광을 받고 있는 거죠.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들 교육의 핵심은 탈무드, 하브루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기, 답을 알려주지 않기 등등 입니다. 


'유대인 엄마의 힘'에도 이러한 내용들이 아주 무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마인드에 대해 잘 나와 있는 것 같달까요. 모든 것을 다 해주고 감싸는 전형적인 중국 극성 엄마에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하게 만들고 스스로 살아갈 길을 모색하게 만드는 현명한 유대인 엄마로서 자신의 마인드를 다잡아 갔던 저자의 경험과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에, 유대인이 아닌 일반 독자로서 공감대 형성이 더 잘 되더라는 말이죠. 


이 책에서는 단순하게 하브루타로 아이들을 교육시켜서 토론 능력을 발달시켜라, 탈무드를 읽어주면서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라, 라는 뻔한 지침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보다 현실적인 내용부터 시작합니다. 처음 중국에서 이스라엘로 이민을 갔을 때까지만해도 그냥 전형적 엄마였던 저자는, 다 큰 아들 둘과 아직 어린 딸이 집안 일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며 온갖 수발을 다 듭니다. 이유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너무 평범합니다. 쓸데없이 집안 가사일에 시간을 쏟다가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져서 성적이라도 나빠지면 안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하루는 이런 광경을 지켜본 놀러온 이웃집 여자가 경악을 합니다. 이건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 아니라 망치는 방식이며, 이런 식의 교육 방법을 이스라엘에 퍼뜨리지 말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이스라엘, 유대인 집안이라면 당연히 가족을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아이든 어른이든 집안일을 함께 해야하고, 그것 때문에 시간을 빼앗겨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거죠.


저자는 처음엔 자신이 그동안 고수해왔던 교육방식과, 이스라엘 유대인 식 교육방식이 너무 상충되어 혼란을 겪습니다. 또한 갑작스런 지침 변경으로 인해 아이들이 혼란을 겪지는 않을까 걱정도 하지요. 하지만 생각보다 의젓한 두 아들은, 특히 본인들이 현지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또래들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는지, 자신들에게 집안일을 공평히 부담해 달라고 말하며 먼저 청합니다. 수동적인 삶의 방식에 익숙했던 이 아이들은 자신과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독립적이고 어른스럽고 목표의식이 분명한 또래 유대인 아이들을 보면서 배운 점이 많았을 겁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저자는 현명한 유대인 엄마로 거듭나가고,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할 줄 아는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해 나갑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공감이 갔던 부분은, '역경지수'에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아이들처럼 오냐오냐 하며 키워진 사람으로서 저는 어릴 때 누구보다 역경지수가 낮았습니다. 그래서 어쩌나 선생님한테 혼나거나 매라도 맞았으면 분한 마음에 잠도 못자며 씩씩 거렸고, 그 후유증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잘하는 것이고, 잘해야만 하며,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 것이 마땅했기에 어쩌다가 잘 못한다는 비난이라도 들으면 억울하기 그지 없었고, 그 이후로는 그 것에 대한 흥미를 상당히 잃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역경지수가 낮은 데다 남들의 인정에 가치관이 맞춰져 있어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대해서는 먼저 생각하지 않는 수동적인 아이였던 거죠. 그러나 만약 제가 역경지수가 좀 높았더라면, 그러니까 어릴때부터 많은 좌절도 경험해보고, 못한다는 말도 많이 들어보고 하면서 자랐더라면 어땠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남들의 비난에도 내성이 생겨 끄떡하지 않을 수 있는 강인함도 생기고, 남들이 뭐라하든 말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중심도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요? 인생은 다시 살아볼 수 없으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역경지수'는 참으로 중요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유대인은 일부러 시련을 만들어 아이의 역경지수를 높인답니다. 또한 즉각적인 만족은 아이를 망친다고 하여 일부러 만족지연 교육을 시킨다네요. 과도한 만족과 즉각적인 만족은 더 많은 만족을 요구하게 만드는 인간의 본성상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므로, 일부러 좌절을 경험하게 하여 만족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교육을 시킨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로봇을 사달라고 부모에게 조른다면, 그것을 당장 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로봇의 가격을 인지 시키고 그걸 살 수 있을만한 돈을 벌 수 있도록 노동의 대가를 제시한 다음 그것을 다 이뤘을 경우 돈을 주기는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로봇하나 산 후에 끝낼 것인지, 아니면 그 로봇이 정말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 후 결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그 결정에 대해서 부모는 일체 간섭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이므로, 아이가 정당히 번 돈으로 무언가를 구입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순전히 그 아이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볼 만 한 것은 유대인의 경제교육입니다. 이미 유대인의 경제력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요. 그러나 그들이 그런 경제력을 손에 쥐기까지 그들이 받은 교육의 배경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고찰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유대인 관련 교육책을 여럿 읽어본 결과, 유대인들도 각자 조금씩 다른 경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이 아무리 소수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국가를 이룰만큼 인구수가 많은데 그 모든 사람들의 철학이 같을 수는 없겠지요. 이 책에서는 딱히 어떻게 경제교육을 시켜라, 하는 지침은 없지만, 정당히 노동을 시키고 그 대가로 돈을 벌게끔 해야 경제관념이 생긴다고 일관성 있게 말을 합니다. 또한 경제교육은 가능한 한 일찍 시키는 편이 좋다고도 합니다. 스스로 경제력을 키울수 있는 능력을 만들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의 가치를 알고 어떻게 쓰며 어떻게 저축할지 계획하고, 무분별한 소비를 하지 않는 절제력을 키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저는 '역경지수'와 마찬가지로 이 '경제교육'에 대해서도 많은 공감을 했는데, 만약 제가 일찌감치 경제관념이나 재테크에 눈을 떴다면 지금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많이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처럼 저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나 재테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러나 만약 일찌감치 재테크의 개념이 잡혔더라면, 벌써 20년 먼저 앞서갈 수 있었을테니 아무래도 돈이 생겼다고 함부로 쓰는 무분별한 생활은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역경지수, 경제관념 등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상당히 많지만 결국 한가지로 귀결됩니다. 모든 것을 해주려 하지 말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라. 질문을 하더라도 정답을 바로 알려주지 말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서 답을 찾게 만들고, 돈을 요구해도 바로 주지 말고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그래야 인생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을때 스스로 방법을 찾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라는 거죠. 물고기를 잡아 주면 하루를 먹고 살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다는, 결국 평범한 진리로 귀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