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관심가는책200+

이동진 독서법 - 이동진

gowooni1 2017. 11. 1. 11:24





일전,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책을 좋아하는 제게 말했습니다. 

"언니, 팟빵 알아요?"

"아니."

"팟빵이라고 팟캐스트 앱인데, 거기에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고 있거든요. 저 요즘 그거 듣는데 재미있어요. 언니 꼭 한 번 들어봐요."

그래서 알게 된 게 팟캐스트라는 개념과 이동진이라는 사람, 그리고 빨간책방이라는 방송과 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책 읽는 것을 좋아할 뿐 다른 사람이 책에 대해서 품평하는 것에 크게 흥미가 없는 저는 금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입니다.


그러다 얼마 전 서점에서 좀 촌스럽게 생긴 표지의 빨간 책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엔 '이동진 독서법'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이 책에는 마음이 끌리더란 말입니다. 이 사람이 말하는 책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낄 수 없었을지 몰라도,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이 갖고 있는 독서법에는 관심이 생겼다는 말이죠. 내용을 스윽 보니 어려운 내용으로 잘난 척 하는 문장도 아닌 것 같아 별 망설임없이 집어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기준을 갖고 책을 고르며, 어떻게 책을 읽어 나갈지 궁금했습니다. 


이 책 제목 위에는 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음. 사실 이게 핵심이더군요. 이 네 문장이 이동진이란 사람의 독서법을 함축적으로 나타내주는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핵심을 파악하기 위하여 책을 읽나요? 그 과정을 즐기려고 읽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이 네 문장을 길게 늘어뜨린 한 권에 집중해보기로 했습니다. 


작가는 책을 너무 어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숭배하지 말라고 하고, 가능한 한 책을 더럽게 읽으라고 종용합니다. 그리고 마음 끌리는대로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재미 없으면 과감하게 덮으라고도 말합니다. 세상에 책은 많고 하루에도 몇 십권씩 쏟아지는 것이 신간인데 뭐하러 굳이 재미도 없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버리고 독서에 대한 흥미도 잃어버리냐는 거죠. 여기까지는 뭐,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저도 이와 비슷하게 책을 읽으니까요.(줄을 긋거나 낙서하며 읽는 것은 제 방법이 아니긴 하지만요.) 굳이 재미도 흥미도 없는 권장도서 목록을 쫓다가 한동안 책을 멀리한 게 한 두 번인가요.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한 술 더 뜹니다. 비록 한 페이지를 읽더라도 그 책을 읽은 것으로 친다는 거죠. 으음? 고작 한 페이지를 읽고도? 그런데 그 고작 한 페이지를 읽기 위해서라도 책을 사고, 그 한 페이지가 마음에 들면 그 페이지를 찢어서라도 들고다닌다네요.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괴팍하네. 굳이 찢을 것 까지야. 요즘 같으면 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다녀도 될텐데.' 물론 그랬던 시절이 옛날이면 스마트폰이 없었을테니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 싶기도 합니다만.


누구보다 많은 책을 사고 실패한 경험이 많을 것이라고 감히 자신하는 이동진씨는, 친히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먼저 서문을 보고, 그 다음 목차를 본 후, 그것도 괜찮다 싶으면 책의 2/3 페이지 가량을 펼쳐 읽어보랍니다. 2/3 페이지 가량에는 저자의 필력을 숨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책의 첫 부분은 다들 재미있는 내용을 싣고 공감가는 내용으로 독자의 환심을 사지만, 2/3 부분에서는 저자도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추구하는 추진력이 떨어지고 독자들도 웬만큼 흥미와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 2/3 페이지가 힘이 있으면 그 책은 좋은 책이라고 판단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 페이지만 좋아도 책을 사버리는 이동진 씨는 정말 책을 어지간히 사랑하는게 분명합니다.


영화평론가인 이동진씨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아무래도 영화와 비교를 많이 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책에 대한 사랑은 많이 다른가 봅니다. 영화는 일이기 때문에 하루에 3편 이상 보면 질린다지만, 책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가 않는다는 거죠. 이 부분에서 저는 저자가 저보다는 많이, 아주 많이 한 수 위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루에 책을 3권 이상 읽으면 질리거든요. 취향은 그것을 위해 쏟아부은 시간과 비례하는데(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저자와 일치하여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동진씨의 독서 취향은 그야말로 무한대라는 거잖아요. 그 무한대 취향을 쌓기 위해 쏟아부은 시간도 당연히 엄청날 거고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도 빼놓을 수 없는 말입니다. 어쩌다 한 번 책을 읽을 시간이 나서 그 책을 읽고 강한 행복을 느꼈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쾌락에 가깝다는 거죠. 그렇지만 매일 일정한 시간을 책읽기에 할애하여 그 행복을 소소하게 자주 느끼면 빈도가 증가하잖아요. 그게 바로 행복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주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쩌다 한 번 있을 이벤트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보다 습관에서 재미를 찾아야 한다는 거에요. 우리의 일상을 매일 이루고 있는 것은 이벤트가 아닌 습관인데, 이 습관에서 항상 재미를 느끼면 이 삶 자체가 늘 살 만한 것이 되고 행복한 인생이 되는 거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먹게 될 아침 식사를 기대하고, 갓 내린 커피 냄새를 만끽하고, 우리가 하는 일에서 사소한 감동을 느끼고, 매일 만나는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데 안락함을 느끼며, 시간을 내어 자신의 습관 속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하루를 마무리 하는 샤워를 한 후 쾌적함을 느끼는 것. 이런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을 지탱하는 원천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