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철학*문사철100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gowooni1 2015. 6. 26. 19:33



'사랑의 기술'은 제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다가, 결국은 영어로 된 책까지 사서 밤에 머리맡에 두고 잠이 안 올 때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책입니다. 사실 원서를 읽는 이유는 영어 실력을 좀 올려보려한 거지만 제 실력으론 해석이 술술 되지 않아서, 불면증에 아주 그만입니다. 두어 장 읽다보면 어느새 눈이 스르르 감겨 잠을 잘 수 있거든요.


반복해서 읽은 이유도 몇 가지 됩니다. 첫번째에는 제목에서와 같이 사랑의 기술을 좀 터득해볼까 싶어서였는데 웬걸, 내용이 너무 좋은 겁니다(그 어릴적 제게 있어 사랑은 빠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랑의 수동적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텍스트를 읽을때는 그야말로 유레카였지요). 그러나 책의 모든 내용이 재미있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아서 재밌는 부분만 몇 번 더 읽었어요. 재미없는 부분은 살짝 넘기면서 말이죠. 그러다 원서를 샀는데, 이것도 제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해석이 제법 되면서 잘 읽혔지만 재미없던 부분은 영 해석이 되지 않는 거에요. 그렇게 몇 번씩 영어책이랑 한글책이랑 번갈아가며 읽다보니 번역이 눈에 거슬리는 것이 몇 군데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기술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여 저자 에리히 프롬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포괄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그러다가 문예출판사에서 번역한 사랑의 기술을 읽었는데, 영어책으로 읽은 부분을 제가 해석한 의미대로 가장 멋지게 번역한 것이 바로 여기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독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저는 사랑의 기술을 반복해 읽은 지 한참 후에 이 책을 포괄적으로 읽게 된 것입니다.




프롬은 사랑도 하나의 기술이 필요한 행위로 봅니다. 목수가 목공일을 훈련해서 기술을 쌓고,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연습을 반복해 해서 스킬을 익히는 것처럼, 사랑도 사랑하는 행위를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됩니다. 일반인들이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만을 사랑하고 다른 모든 사람을 배척하고 마는데 그것은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마인드와 어긋납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전생애에 걸쳐 배려하고 인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하겠다고 결심하는 행위이고, 사랑하는 사람 혹은 행위를 통해서 세상의 다른 부분마저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인드를 말합니다.


제가 해석한 식으로 좀 더 쉽게 해석을 하자면 이런 셈입니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연습하는 것이 생애의 대부분인 사람입니다. 평생에 걸쳐 피아노만 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피아노를 치는 매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피아노가 쳐지지 않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피아노를 칠 기분이 아닌 날도 있을 것이며 하루쯤 쉬고 싶은 날도 있을테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꾸준히 쳐서 자신의 실력(기술)을 갈고 닦아 향상시킵니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쉬고 싶다고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면 그건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피아노 치는 것을 좀 즐기는 아마추어일 뿐이니까요. 진정한 피아니스트라면 전 생애에 걸쳐 대부분의 시간을 인내와 집중을 갖고 연습을 반복하는 그런 자아상이 확고히 박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을 바쳐 이제 사랑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달합니다.




그러니까 프롬은 사랑의 프로가 되려면 이런 피아니스트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는 자신과 조건이 잘 맞아야 하고, 키가 좀 커야 하고, 예쁘거나 잘 생겨야 하고, 돈이 어느정도 있어야 하고, 말이 어느 정도 통해야 하고, 사회적인 평판이나 명성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고 등등의 이유를 내세워 '사랑에 빠질만한 대상'을 발견한 후에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는데 말입니다. 아, 하지만 그도 내세운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걸 조건이라고 말하기는 좀 뭣 하지만, 아무튼 프롬은 사랑이라는 것이 영혼의 성숙도가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설명이 필요할까요? 저는 바로 '아!'하는 감탄사와 함께 마음속 깊이 공감하고 말았습니다.




자, 그럼 이제 제가 몇 년 동안 재미없어서 그냥 넘겼던 부분에 대한 설명도 좀 해드려야죠. 이 부분에 오랫동안 흥미가 없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는 단순히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고 싶어하는 일반적인 독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사랑의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감동이나 지식을 줄 수 있는 부분만 읽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이 부분을 읽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기술'의 큰 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네요. 프롬은 사랑을 단순히 연인과의 사랑을 떠나 어머니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 형제애, 신과의 사랑을 구분하여 이론적으로 접근하였습니다. 프롬이 원래 유대교 집안의 아들이었으나 종교를 버리고 종교를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마음껏 키웠기 때문에 신과의 사랑에 맹목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이 듭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구절이 타 종교에 비해 좀 더 많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또, 그가 어머니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외동아들이다보니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이라고 설파합니다만, 조건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라면 공감에 한계가 있겠죠. 이런 사랑에 대한 이론을 한참 늘여놓은 후에야 마지막 장에 가서 저자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사람으로서 여기까지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참, 문예출판사의 사랑의 기술을 추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부록, 라이너 풍크 박사의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랑'이 아주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들 수밖에 없는 인지상정, '이렇게 사랑의 기술을 설파한 사람은 얼마나 제대로 된 사랑을 한거야?' 라는 질문에 답이 되는 글이랄까요. 프롬의 개인사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의 성장과정과 성격형성과정, 그와 함께 생의 일부를 함께 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알 수 있으니, 가십이라면 가십이지만 그가 이러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던 과정도 살짝 엿 볼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