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위로'라는 제목에 필이 꽂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사람일겁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 그렇지 않더라도 혼자 있는 시간의 절대적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그 속에서 안정감을 되찾는 사람. 즉, 고독이 주는 위로를 진정으로 느껴본 사람들 말이지요. 아마 저 역시 저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엄밀히 말하자면 고독이 주는 위로만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고독이 주는 모든 의미를 알려줍니다. 고독이 가져다 주는 위로를 포함하여, 고독해야만 하는 이유,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혼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천재들의 이야기 등등을 말하죠. 혼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천재들의 이야기는 또 다양한데 대체로 이 천재들은 매우 우울한 기질을 타고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우울한 기질을 극복하기 위하여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했다고, 앤서니 스토는 자신의 어마어마한 스키마와 조사를 동원하여 하나하나 이야기 합니다. 카프카에서부터 뉴턴, 그리고 비트겐슈타인까지. 하지만 사실 그런 이야기들을 읽는 독자들은 고독의 위로를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의문을 느끼지요. 천재들의 고독하면서도 불행했던 삶을 사느니 차라리 천재적이지 못하고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하여도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갖다붙인 '고독의 위로'라는 제목은 별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고독에 대한 고찰' 혹은 '고독론', '고독의 모든 것' 정도가 적합할 듯 합니다. 앤서니 스토가 붙인 이 책의 원제 역시 '고독의 위로'가 아니라 '고독(Solitude)' 입니다. 부제가 있다면 'Return to the Self' 인데, 이는 [자신에게로 돌아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니, 아무리 봐도 '위로'라고 보기는 힘들어요.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내내 '아, 나는 고독을 사랑해. 고독한 나를 이해할 사람은 세상에 몇 되지 않아. 그러나 고독한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누군가나 뭔가가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런 나의 심정을 정확히 알아주는 책의 구절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싶어. 그리고 그렇게 위로받고 싶어!'라고 생각을 했으며 그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겠다면 분명 실망할 겁니다. 저 역시 그런 위로에 대한 기대감을 끝까지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 에필로그를 덮으며 결론 지었습니다. '이건 고독론이야'.
그러므로 저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고독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보라고 과감히 추천하겠지만, 고독이 주는 위로는 책의 앞 장을 비롯하여 몇 챕터 부근까지만 기대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미리 말하겠습니다. 확실히 앞의 몇 장은 고독이 주는 긍정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위로가 됩니다. '음, 에드워드 기번은 일생을 거의 혼자 살면서도 유쾌하고 명랑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니! 혼자 사는 내 인생도 나쁘지 않겠는걸.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운이야. 나는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미 책의 앞 부분에서 충분합니다.
이런 류의 책이 또 그렇듯이,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와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도 의도치않게 알게되어 또 다른 재미를 가져다줍니다. 고독한 일생을 살았던 천재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도 재미지만, 인생의 말년으로 갈수록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그리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 내면의 평온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그런 면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리스트가 초절기교 연습곡으로 젊은시절 이름을 날린데 비해 말년에는 아무런 기교도 찾아볼 수 없는 곡들만 작곡하며 자신의 내부에 충실한 음악만 남긴 것, 바흐의 푸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말년을 살아내지 못한 모차르트와 같은 음악가들은 그런 음악을 남기지 못했으니 어떻게 보면 오래 살고 인생의 모든 과정을 감내하는 것은 음악가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에게 필요한 일이자 행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앤서니 스토는 1920년에 태어나 2001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 책을 출판한 때는 1988년으로 그의 나이 대략 68세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그 역시 인생의 말년을 충실하게 살았고, 말년이 주는 고독함을 누구보다 철저히 누리며, 고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겁니다. 그가 고독한 삶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끝에 가서는 고독한 삶, 인간관계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 삶에 긍정적인 결론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은 결국 그가 고독이 주는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사람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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