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포르토벨로의 마녀 - 파울로 코엘료

gowooni1 2015. 6. 21. 23:07




저는 예전에 대체 무엇을 읽었던 걸까요? '포르포벨로의 마녀'는 제가 좋아하던 몇 안되는 다시 읽고 싶은 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예전의 나라는 사람이 과연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긴 한 걸까 싶습니다. 예전의 막연히 재밌다는 느낌은 대체 어떻게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요? 이번에는 좀 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몇 년 전의 제가 이 책의 묵직함을 어떻게 소화하였기에 마냥 재밌는 책으로 여겼던 것인지, 미스테리입니다.


파울로 코엘료 하면 역시 신비주의죠. 그의 가장 대중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감명을 주는 작품이라면 연금술사일건데, 그 이외의 작품들에는 작가의 신비주의가 한 발 더 깊이 나가 있습니다.(물론 신비주의와 거리가 먼 작품도 있긴 하지만요) 그리고 이 작품, '포르토벨로의 마녀' 역시 연금술사보다는 좀 더 심도있게 작가의 성향이 반영되었습니다. 연금술사를 이미 접한 독자라면 알겠지만, 주인공은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를 끊임없이 찾아 헤맵니다. 포르토벨로의 마녀에서는 여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주인공 아테나 역시 남들이 보는 자신이 아닌, 진짜 자신다울수 있는 자기로 살기 위해 줄기차게 방황합니다.



아테나는 어떻게 보면 행운아입니다. 버려진 집시의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레바논 부부의 눈에 들어 입양된 후 풍족하게 자랍니다. 아테나에게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관심을 끄는 강력한 영혼의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발현되어 양부모를 끌어당겼고, 자라나면서는 사람들의 애정을 끌어당기고, 성인이 되어서는 남자들의 사랑을 끌어당기며 살아갑니다. 굉장히 특별하고 매혹적인 존재인 거죠. 가만히 있어도 주변 사람들을 만족시켜주는 존재. 하지만 본인은 만족을 몰라 행복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테나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오래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부모가 그 사실을 꺼내기 직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척 연기를 할 수 있는 생각이 깊은 여자이지만, 자신이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영혼의 공백을 느낀다는 점이나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힘, 예지몽을 꿀 수 있다는 능력들 때문에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잊기 위해 일찍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하면서까지 아이의 양육에 힘을 쓰지만 결국 자신이 친모를 찾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영혼이라는 결론을 내리자마자 양부모에게 찾아가 자신의 생모를 찾게 해 달라고 떼를 씁니다. 양부모는 처음엔 아테나의 이런 부탁을 거절하였지만, 아테나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에 결국 그녀의 손을 들어줍니다.


아테나가 집시의 딸이라는 것, 강력한 영혼을 가지고 주변인들을 끌어당긴다는 것,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본다는 것. 이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같은 종류의 생각을 심어놓습니다. 그녀는 뭔가 특별하지만 알 수 없게 이단적이고도 종교적입니다.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만듭니다. 이 여자, 마녀 아닐까? 하고 사람들은 점점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테나 역시 그런 자신의 위험성을 잘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영향력을 넓혀나가기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점점 포르토벨로의 마녀가 되어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위협합니다.


참,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두 가지 복선이 깔려 있습니다. 이것이 복선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것인지 잠시 고민하였지만, 결론을 끝까지 읽지않으면 도저히 추리할 수 없을 것 같으므로 알려드리죠.(사실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좀 미약합니다) 첫 장부터 아테나는 죽은 여인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아테나의 일대기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테나의 주변인들을 통한 인터뷰를 통해 아테나의 이야기가 연결됩니다. 죽은 아테나는 어떤 여자였다,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특히 아테나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방어하기 위해서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게 런던 경시청에 근무하는 애인이 있다고 줄곧 말합니다. 사실, 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게 마지막을 너무 급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작가의 귀차니즘에 의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도 듭니다.



결말이 제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니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여전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아테나가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은 여자라 사람들을 매혹하는 것처럼, 그와 같은 매력의 작품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