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gowooni1 2015. 7. 5. 13:30




요즘은 '예전에 좋았던 책 다시 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읽어서도 여전히 마음에 남으면 내 인생과 함께 할 작품으로 고르기 위해서입니다. 서머싯 몸의 '면도날'과 '달과 6펜스' 역시 다시 읽기 목록에 올려놨었는데 먼저 '달과 6펜스'를 읽기로 했습니다. 두 작품 다 주인공이 자신의 길을 위해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버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더 극적이긴 합니다만.


미리 말하자면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모델은 화가 폴 고갱입니다. 이 작품에서 묘사한 찰스의 작품과 그 감동 대부분은 고갱의 작품에서 그대로 얻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게다가 주인공의 대략적인 인생이 고갱의 그것과 닮아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이고 작가는 언제나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때문에 완벽하게 재현했다 하기는 어렵습니다. 완벽하게 재현했다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 전기나 위인전이 되었겠지요.


나레이터 '나'는 아마 서머싯 몸 그 자신이 모델로 되었을 겁니다. 의학생 시절이었던 친구를 언급할때나 작가로서 인정을 받고 런던이나 파리 사교계 여기저기서 기웃거리는 모습이 작가 자신의 모습과 그대로 닮아있습니다. 소설의 설정은 '나'가 이제 막 문단에 데뷔에 사교계 사람들에게 초대를 받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찰스 스트릭랜드를 알게된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누구나 맨 처음 스트릭랜드를 만날 때에는 그가 위대한 화가가 될 것이라는 것을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취미로도 결코 그림을 그리지 않는데다가 먹고사는 수단은 증권 중개인으로서 벌어들이는 수입이기 때문이지요. 그의 아내가 예술을 사랑하여 작가들을 종종 초대하여 오찬회를 열지만 스트릭랜드는 워낙에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라 손님을 훌륭하게 대접하지도 못하는 재미없는 작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그런 그를 지독히 사랑하는데 아무도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긴 남의 사랑에 이해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미 그들은 결혼한지 17년이 되어 다 큰 아이들 두명이나 키우고 있는 중년에 다다른 부부인데 말이에요.


그러다 여름휴가철이 끝나고 다시 사교철이 시작되었을 무렵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스트릭랜드가 아무것도 남긴 것 없이 처자식을 버리고 파리로 도망갔다는 겁니다. 때마침 런던 한 찻집의 아가씨도 그무렵 일을 관두고 종적을 감춰버렸고요. 소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들 해석하기 편한대로 각색을 해서 여기저기 이야기를 하고 다닙니다. 스트릭랜드가 찻집 아가씨와 눈이 맞아 처자식을 버리고 파리로 애정도피를 하였다고 말이죠. 스트릭랜드의 아내 에이미는 졸지에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의 동정을 사는 역할을 떠맡게 됩니다. '나'는 에이미의 부탁을 받아 파리에 가서 스트릭랜드의 마음을 되돌려 돌아오도록 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무슨일이 있어도 이혼은 절대 할 수 없으니 불장난 같은 사랑이 식으면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아내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죠. 사람들은 스트릭랜드가 그동안 중개인으로 벌어놓은 돈이 굉장히 많을 것이며 새로운 애인과 함께 파리의 호화로운 호텔에서 인생의 쾌락을 즐기고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나'도 그냥 그런줄로만 알고 주어진 주소를 찾아 파리로 날아갑니다.



그런데 웬걸요. 주소를 찾아간 벨쥬호텔은 호사스러움은 커녕 일반 여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허름한 호텔이었고 스트릭랜드는 지저분한 단칸방에 혼자서 지내고 있는겁니다. 아내의 의심을 전하자 여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범주라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고 완전 무시합니다. 이혼을 하든 안하든 상관도 없으며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나눠줄 재산은 하나도 없는 상태로 그는 혼자 해방만을 찾아 파리로 왔던 겁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이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왔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합니다. 마흔이 다된 나이에, 그동안 그림이라고는 정식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으면서, 안정적인 삶과 토끼같은 처자식을 그렇게 무참히 버리고, 그게 인간으로서 제정신이면 할 수 있는 짓이냐는 온갖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말합니다. "이런 맹추같으니라고.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그의 진실한 열정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나는' 자신의 역할도 잊어버리고 예술가적 영혼을 마음속 깊이 찬미합니다. 그 때문에 '나'는 스트릭랜드의 윤리성을 비난하면서도 위대한 예술적 영혼에 끌려 그의 소식과 자취를 마냥 무시하지 못합니다. 스트릭랜드의 일생은 그를 알게된 사람들을 모두 불행에 빠뜨리고 악의 구렁텅이로 몰고하는 거대한 악의 화신이자 블랙홀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더 궁금해하고 깊이 끌리듯 스트릭랜드가 내뿜는 거대한 자기장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서머싯 몸은 고갱의 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은 나머지 오랜 시간동안 그의 인생을 모델로 소설을 쓰겠다고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고갱이 인생을 마쳤던 타히티 섬까지 다녀왔다고하니 작가적인 열정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스트릭랜드는 고갱의 복제판이라고 점점 세뇌를 당하게 되는데 구분할 건 구분해야죠. 실제로 고갱은 증권중개인이긴 하였으나 일을 하면서도 20살부터 꾸준히 그림을 배웠고, 서른대 중반 넘어 파산을 하게되자 그의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그를 떠났다고 합니다. 하는수없이 일용직을 전전하며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하다가 타이티섬으로 가서 말년을 장식했다는데, 실제 모델은 스트릭랜드와 다르게 주변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다시 읽은 달과 6펜스는 여전히 감동적이긴 하지만 예전과 다른 면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예를 들어 서머싯 몸이 통속작가라고 비난을 받았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예전엔 왜 그런지 공감을 하지 못했거든요. 이번에 읽었을 때에는 그런 비난이 약간 감이 오더군요.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어떻기 때문에 그렇다'는 식으로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요.



게다가 또 몰랐던 면들, 서머싯 몸이 세속적인 여자들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그리는 여자들, 특히 그가 비판하고자 하는 여인상들은 대략 이렇습니다. 남자돈 혹은 남의 돈으로 중상류 계층의 삶을 유지하며 겉치레(사람을 대접하는 것에서부터 응접실이나 외모를 꾸미는 모든 것)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인간 군상이랄까요. 그가 그런 혐오감을 가질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만 만났던 것이 오히려 안타깝습니다. 좀 더 진실된 여자들도 많을텐데, 그런 사람들을 많이 접했더라면 그런 혐오감까지는 생기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참, 마지막으로 팁 아닌 팁을 드리자면, 달은 스트릭랜드가 추구한 위대한 예술적 영혼이고 6펜스는 그가 혐오해마지않았던 세속적 여자들이 추구한 돈을 뜻합니다. 이런 대립구도를 더욱 극대화시키려고 세속적 여자들을 더욱 세속적으로 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시 읽어도 좋은 작품이라는 것에는 틀림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