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라우라 에스키벨

gowooni1 2015. 5. 3. 10:10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제가 책을 즐겨 보지 않았던 시절에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입니다. 음식과 사랑과 성에 관한 이야기들이 남미 환상문학적인 요소와 섞여 특이하게 펼쳐지는데, 그때는 환상적인 것들이 남미쪽 특색인지도 몰라서 그냥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했었지요.


주인공 티타는 말도 안되는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는 죽을때까지 엄마를 모셔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더라도 절대 결혼을 할 수 없는 거죠.(엄마가 일찍 죽으면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엄마인 마마 엘레나가 살갑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절대군주가 이보다 약하면 약했지 심하지는 못할 겁니다. 마마 엘레나에게 있어 딸들은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따라야 하는 존재이며 거역은 곧 반역으로 가차없이 처분의 대상이 됩니다. 사실 티타도 그런 마마 엘레나에게 딱히 반기를 들며 살아본 적은 없습니다. 티타는 아직 어린데다가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면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 같아서 그것만 처리하고 살아가는 데에도 바빴습니다. 페드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페드로와 사랑에 빠져 그가 청혼하러 온다고 했던 날, 티타는 처음으로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는 페드로와 결혼할 수 없지만 그녀도 페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페드로의 청혼은 곧 엄마에 대한 반역이므로 마마 엘레나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페드로는 아버지와 함께 청혼하러 마마 엘레나를 방문했고, 그 날 운명의 장난이 이루어집니다. 마마 엘레나는 그들의 청혼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한 편 첫째 딸 로사우라와 결혼하라고 종용합니다. 페드로는 엄청나게 낙담을 하며 로사우라와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 사랑하는 여자와 가까이 있을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로사우라와 티타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앙숙으로 변합니다.


티타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끊임없이 마마 엘레나에게 반항을 하고, 마마 엘레나는 그런 티타를 가문이 정한 악습의 고리에 매어 놓으려고 발악합니다. 티타는 어찌되었건 마마 엘레나가 죽을 때까지 보살펴야 하는데, 음식도 잘하고 사랑도 많고 매력적인 티타는 한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많은 행복을 누리고 싶어하니 괘씸하기 그지 없습니다. 차라리 티타가 순종적이고 못생기고 악습의 고리에 스스로를 가둬두는 성격이었으면 마마 엘레나의 인생은 끝날때까지 완벽했을텐데요. 거기다 첫째딸 로사우라는 그런 마마 엘레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점점 엄마처럼 닮아갑니다. 로사우라는 티타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페드로가 자신이 아닌 티타를 사랑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투합니다. 그 와중에 둘째 딸 헤르트루디스는 마치 가족의 세계가 너무 좁다는 양 가문의 악습을 다 끊고-사실 둘째에게 특별히 부과되는 의무는 없었지만- 자기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며 다른 세상도 존재한다는 걸 티타에게 보여줍니다.


'환상문학적인 요소'들은 쉽게 말해서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인과관계의 중요한 축이 되어 꼭 나타난다는 겁니다. 티타는 요리를 잘했는데, 티타가 분노의 마음을 품고 요리를 하면 콩들이 하나도 익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고 요리를 해야 콩들이 즐겁게 푹 삶아집니다. 페드로에게 받았던 사랑 가득한 장미꽃다발로 만든 메추라기 요리를 먹은 둘째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자신의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욕정을 숨기지 못해 온 몸에서 진한 장미향을 발산하는데, 말도 안되는 먼 곳에서 그 향을 맡은 혁명군 장군은 전투를 하다말고 격렬히 말을 몰고 와 벌거벗은 헤르트루디스를 납치합니다. 또 죽은 사람들이 유령으로 나타나 티타를 도와주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묘미는 바로 요리입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구성된 각 장에서는 메인 요리가 선정되어 그걸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데 그걸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진짜 있는 요리인지 알 수가 없어서 더 알쏭달쏭합니다. 예를 들어 크림 튀김이라는 것이 하나 나오는데, 달걀 흰자로 거품을 내서 만든 크림을 튀김옷에 입히고 튀겨내는 요리라는 겁니다. 맙소사, 이런 요리가 정말로 존재한단 말이야? 궁금한 마음에 급히 검색을 해봤지만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적어도 우리 나라에는 없는 요리인 듯 합니다. 나중에 멕시코에 가게 될 일이 있으면 한 번 찾아봐야 겠습니다.


어릴적 읽었던 기억으로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새드 엔딩이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이 결말을 슬프다고 해야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슬프다면 슬프지만 어떻게 보면 행복한 결말일 수도 있네요. 오랜 시간이 지나 이야기에 공감하는 감정이 바뀐다는 건 삶의 다양한 측면을 인정하는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아닐까요.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비가 와서 나들이가 내키지 않는 주말, 소파 깊숙히 앉아 읽으면 좋은 분위기의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