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고슴도치의 우아함 - 뮈리엘 바르베리

gowooni1 2015. 5. 25. 12:03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먼저 빌려보았다가 소장가치를 느끼고 다시 사서 또 읽은 그런 작품 중 하나 입니다. 그런 작품이 한 작가에게서 반복되면 나중엔 그 작가의 신간에 대한 평도 읽지 않고 무조건 사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뮈리엘 바르베리'의 새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니면 제가 게을러서 놓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저자 뮈리엘 바르베리는 프랑스에서 철학교사를 하며 소설을 써내던 작가인데, 이 두번째 작품의 성공으로 교사를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하며 산다-고 2009년도 판 책날개 정식 프로파일에는 그렇게 써 있네요-는 멋진 작가입니다. 작가들에게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 식대로 말하자면) 풀타임 작가로 산다는 것은 꿈 같은 일일 겁니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대다수의 예술가들에게 있어 더 이상 생계를 위한 직업을 유지할 필요없이 작품활동만 할 수 있다는 것은 신에게 선택받은 행운과도 같지 않을까요?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생업을 위해 종사했던 직업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작품을 씁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서사적이라기보다 문장 하나하나에서 즐거움을 찾을만 한 작품인데, 이 문장들에 자신의 철학적 지식, 가치관들을 해박하고도 재밌게 녹여내기 때문이죠.


일단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한 두 인물은 굉장히 지적입니다. 파리 시내 그르넬 가 7번지의 엄청 넓고 호화로운 부자 아파트의 수위로 살면서 자신의 지적 능력을 우둔한 표정으로 숨기는 쉰 네살의 르네, 그리고 그 아파트 입주자 중 한 명이자 엄청난 부자이고 국회의원인 아버지를 둔 덕에 잠재적으로 엄청난 부자가 될 열 두 살 짜리 꼬마 아가씨 팔로마.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천재적인 지력을 숨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르네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가난뱅이 수위를 표방하여 입주자들의 관심을 끊고 철저히 필요한 말만 합니다. 수위실 입구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텔레비전을 내내 틀어놓아 그녀가 티브이만 보며 빈둥대는 수위일 거라는 인상을 주려합니다. 몇 십 년간 한 번도 미용실에 가지 않은 덥수룩한 헤어스타일은 못 생기고 가난한 중년 여자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기까지 하지요. 입에서는 매머드 냄새가 가끔 풍겨 다행히 입주자들은 그녀와 말도 잘 섞지 않으려 합니다. 입주자들은 르네가 딱 수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가 자신들이 생각한 전형적인 수위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그녀를 수위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르네는 자신만의 공간에 칩거하여 각종 철학서적을 읽고, 예술 작품을 탐닉하고, 오페라를 들으며 감정의 전율에 환호하는, 취향의 고상함에서는 그들 모두를 압도하는 여자입니다.


팔로마는 비록 열두 살 짜리 꼬마이긴 하지만 천재입니다. 자신의 지적인 재능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시험을 못치르는 데에도 매번 1등인지라 그 이상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밝히면 살기가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깊은 사색을 즐기고 싶지만 속물 근성이 가득한 가족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합니다. 세상이 더 이상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곧 자살을 할 계획인데, 자신에게 주어진 잠재적인 부와 그러한 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한 반기로 방화를 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인명피해를 낼 생각은 전혀 없으므로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불을 지를 계획입니다.


르네와 팔로마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고급 아파트 입주자들을 경멸하지만, 영혼이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고 그들은 각자가 서로 비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섞을 기회가 딱히 없어 그냥 존재만 느끼고 있었죠. 그러다 그들의 아파트에 가쿠로 오즈라는 일본인이 새로 이사를 옵니다. 작가의 친동양적 성향은 르네와 팔로마에게도 그대로 투영됩니다. 다행히 오즈는 그녀들의 호감을 살만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엄청난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속물근성이 없는 그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은 인격체로 대하고 매사에 진심어립니다. 그래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르네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챕니다. 그녀의 고양이 이름이 레옹이라는 것도 심상치 않은데,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로 응수하는 자신을 보고 르네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을 포착했기 때문이지요.



오즈도 자신들의 두 고양이 이름을 키티와 레빈으로 지을만큼 안나 카레니나의 팬이었던 겁니다.(레옹, 키티, 레빈 전부 안나 카레니나의 등장인물입니다) 그는 그런 자신의 느낌을 팔로마에게 은근히 말해봤는데, 사실 팔로마도 르네가 범상치 않은 취향의 소유자임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말하며 그들의 공모어린 우정이 시작됩니다. 오즈는 르네가 자신이 생각하는 인물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르네를 저녁식사에 초대를 합니다.


6년 전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 사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후 이 작품을 다시 읽으니 다가오는 재미의 크기도 다르긴 합니다. 좀 오버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오즈와 르네를 서로 끌어당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이 소설에 넘기는 작가의 발상도 재미있고요.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공통 취향으로 만들어버리며 나오는 작가의 예술작품에 대한 해박함과 해석방식, 취향도 재미있네요. 게다가 오랜 시간 마음 깊숙히 상처를 지닌 르네가 자신에게 새로 다가오는 인간관계들에 어떤식으로 대응할지 지켜보는 것도 조마조마합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프랑스 영화같은 분위기를 잔뜩 머금은 그런 작품입니다. 괜찮은 프랑스 영화 하나 보고 싶은데 마땅히 볼만한 영화가 없을 때, 그 분위기를 조금씩 음미하며 읽으면 딱인 그런 소설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