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높고 푸른 사다리 - 공지영

gowooni1 2015. 3. 30. 14:49

 

 

 

오랜만에 여유를 갖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적당히 재미있었다면 며칠에 나눠서 읽으려고 했는데 역시 공지영 씨는 책을 중간에 덮을 수 없게 합니다. 막상 몇 장 펼쳐보니 종교적 색채가 강한 그 단어들에 흥미를 잃어, 사 놓은지 몇 달 동안 들춰보지도 않았던 책인데 말이지요. 한 번 읽기 시작하니 금방 속도감이 붙습니다.

 

처음에는 뻔한 드라마 같은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부가 되고 싶은 한 청년이 한 여자를 알게 되어 겪는 격렬한 흔들림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복선이 잔뜩 깔려 있습니다. 이별이 온 존재를 휩쓸고 갔다는 첫 부분의 문장 때문에 주인공과 깊은 관계를 맺는 자들이 어딘가에서 사라질 거라는 것이 쉽게 예측됩니다. 게다가 읽다보면 이제 곧 죽겠구나, 싶은 부분에서 꼭 죽습니다. '이게 뭐야, 너무 예측 가능하잖아, 시시해', 라고 할 법도 한데, 그리고 뒤에 이어질 내용이 어느 정도 뻔한데, 그럼에도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것이 또 다른 재밉니다.

 

곧 있으면 종신서품을 앞 둔 요한은 스물 아홉살 청년입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이십대 초반부터 수도원 생활을 한 그는, 제대로 된 연애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여자를 만날 때 느낄 설레는 마음 정도는 아는 청년입니다. 그런 그에게 수도원의 대표 아빠스가 한 임무를 내립니다. 미국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자기 조카아이가 이곳에서 머물 예정인데 그녀를 손님으로서 잘 돌보라는 겁니다.

 

그러나 아빠스의 속셈이 무얼까요? 조카인 소희는 너무나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게다가 연배도 요한과 같습니다. 더욱이 아빠스는 요한이 제대로 된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청년이라는 것도 누구보다 알 만한 사람입니다. 종신서품을 앞 둔 요한이 평생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만큼 유혹에 강한 인물인지 시험을 해보려던 심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요한은 아빠스, 그리고 하느님의 시험대 위에 올려졌고, 거기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습니다. 단 한 번도 온 존재를 뒤흔들만큼 강렬한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는 하필이면 아빠스의 조카이자 올해 말 결혼을 하기로 되어 있는 소희와 불구덩이 같은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그런 그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눈들이 있습니다. 수도원 생활을 할 때부터 형제처럼 지내왔던 미카엘과 안젤로, 그리고 요한이 처음 수도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존경하고 좋아했던 토마스 수사가 그들입니다. 미카엘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재벌가 막내딸과 예정된 결혼까지 뿌리치고 신부가 되기 위해 온 친구이고, 안젤로는 아무 연고도 욕심도 없어 그저 세끼의 식사와 몸 눕힐 곳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수도원 생활을 하기 위해 들어온 친구입니다. 미카엘과 요한과 안젤로. 이들은 각자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여 서로에게 상처입히고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렇게 오래토록 함께 지내온 동료 수사들입니다. 그러니 요한이 불같은 사랑에 빠져있는 판국에 어찌 그들을 속일 수 있었을까요? 이미 요한과 소희의 사랑은 그들끼리만의 비밀인 공공연한 사실이었던 겁니다.

 

초반부터 복선되었던 이별은 중반부터 서서히 시작됩니다. 요한은 이별에서 오는 상실감와 배신감과 분노에 하느님에 대한 믿음, 사랑에 대한 믿음, 모든 것에 대한 믿음에 깊은 회의를 느낍니다. 존재가 뿌리 끝까지 흔들린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슬슬 이 소설이 단순 드라마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드러납니다. 한국의 근현대를 살아왔다고 설정되어 있는 자들로부터 직접 겪은 비참한 근현대사가 이어집니다. 북한의 아우슈비츠가 불리우는 곳에서 핍박받고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모든 것을 받아들인 토마스 수사의 이야기, 흥남철수에서 만삭의 몸을 이끌고 겨우 빅토리아 메러디스 호에 올라탔으나 남편과 생이별을 한 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중요한 건 이들이 이 이야기를 요한에게 한 시점입니다. 그가 모든 것에 믿음을 잃고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 이야기들은 하나의 계시처럼 요한에게 다가옵니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그녀의 이야기 발화 시점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독자가 읽는 내내 '마지막 부분이 핵심이구나'라고 느낄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 발화 시점 때문입니다. 그녀는 사회나 정치적 측면에 관심이 많은 작가 중 하나인데(그것 때문에 비난도 많이 받는 듯 합니다만), 이야기 소재거리를 종종 신문 기사에서 찾는 모양입니다. 이번에도 그녀가 감화를 받은 것은 신문기사였군요. 그러나 그 신문기사가 무엇이었는지까지 이야기를 해버리면 소설 전체가 너무 뻔하고 재미없어지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