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김어준이라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쓴 다수의 책들은 거의 읽지도 않았습니다. 몇 페이지 들춰보다 말았다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겁니다. 이유인즉슨, 그의 문장들이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독설적이고 직설적인 문장, 상스러움에 가까운 욕설, 극단적이라 생각될만큼 날카로운 비판 등등. 자기 생각을 너무 여과없이 내뱉는 듯한 그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무엇보다 별로였던 건 정치에 대한 그의 태도였는데, 그가 누구를 옹호하고 욕하고를 떠나서 정치나 시사에 딴지를 거는 말투로 글을 써 관심과 혹평을 받는 것이 별로였다는 겁니다. 찬성과 반대가 극명한 사안을 다루는 것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쉬운 것도 없잖아요. 욕을 먹는 대신 영향력을 확보한 사람, 그게 김어준이라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투를 빈다'는 이 책 역시 누군가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누군가가 김어준의 배낭여행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준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김어준이 대학생일때 유럽에 꼴랑 100만원 들고 배낭여행을 갔다더라, 그런데 어느 명품 매장 마네킹에 걸려있는 양복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더라, 그 양복 가격이 100만원이었는데 그걸 사면 앞으로의 생활비가 없어지는 거였고, 그걸 놓치면 일생 일대의 내 옷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어준은 자신의 만족도를 위하여 100만원을 지불하고 그 옷을 샀다더라.' 이 대목에 '어라? 나랑 어느정도 생각관이 같은데?'라고 생각했으니 그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할 수밖에요. 그래서 이 책을 빌려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에피소드의 뒷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그 옷을 빌려입고 막막해진 생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 멋진 양복을 입은 김어준을 보고 사람들이 있는 집 자식인 줄 알고 더 좋은 일자리 기회를 만들어 주더라, 어떻게든 인생은 저질러 봐야 할 일이며 어떻게든 살아갈 방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등등 이런 결말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읽은 부분에서는 그런 말은 나오지 않더군요. 그는 그냥 그 백만원짜리 양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배낭을 들쳐맨 채 길거리에서 노숙을 했답니다. 그래도 그는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부유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고 하네요. (하도 이 책 저 책을 마구잡이로 읽어대는 통에 기억이 뒤섞인게 아니라면 아마 60퍼센트 정도는 맞는 기억일 겁니다. 절대적으로 참고하진 마세요.)
어쨌든 이 책은 김어준이라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이 흔히 가슴에 안고 살아갈 고민을 선별한 후 김어준 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식으로 꾸며집니다. 예를 들어 이렇습니다. [돈을 함부로 써대는 남자친구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라는 질문에, [남자친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와 당신의 경제관념이 차이가 있는데, 그 경제관념을 공유할만큼 남자친구에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헤어져라], 라고 답합니다. [엄마와 여자친구가 가치관이 달라서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라는 질문에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아직도 효자라는 이름으로 마마보이 노릇할 거냐, 여자친구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성인 대 성인으로 만나 가족이 될 사람이라면 엄마의 가치관에 마냥 휘둘리지 말고 착한척 하지 말아라], 라는 식입니다. [유부녀인데 남편이 아닌 옛 남자한테 마음이 끌려요], 라는 질문에는, [그냥 본인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되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잃는 것이 당연할지니 정숙한 유부녀가 될거면 불륜남을 버리고 불타는 애정을 택할거면 불쌍한 척 하지 말것이며 그 모든 일에 책임을 져라, 그리고 편들어달라는 말은 하지 말라,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선택한 일이다]라고 냉정하게 답합니다.
어느 정도 읽다보면 김어준이라는 사람에게 뿌리깊게 내려있는 가치관이 일맥상통하다는 게 보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며 스스로에게 절대적 책임이 있는 존재로 봅니다. 그렇게 때문에 나약한 아버지, 바람 피우는 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는 형수, 그들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진다거나 집안이 흔들릴거라는 우려는 하지 말고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들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흔들린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키를 남에게 쥐어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거죠. 어릴때부터 대학입시도 많이 실패해보고, 배낭여행도 많이 다녀보고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실패와 경험이 자신감을 만든다면 김어준이란 사람만큼 흔들림없이 강건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들것 같습니다. 독설을 내뱉으면서 영향력을 확보한 사람은 무시할 수 없는 강인함이 있네요. 자신이 뿌린 독설에 사람들의 독설이 토스되면 그것을 방어할 수 있는 강인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 독설로 지금까지 먹고 살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 자신을 방어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마냥 사람좋은 얼굴로 웃으며 좋은게 좋은거지, 라고 대부분 그러잖아요. 물론 정말 강해서 웃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참, 그의 끝을 알 수 없는 스키마의 방대함과 꼬인 속 끝을 알 수 없는 저속한 말투가 상극을 이뤄가는 그의 문장들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네요. 사람들이 그의 글을 많이 찾는 이유가 있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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