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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그릇 - 이즈미 마사토

gowooni1 2015. 4. 20. 00:03

 

 

 

 

저는 돈을 많이 벌고 싶거나, 많이 갖고 싶거나, 많이 쓰고 싶은 평범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많고 적고의 기준이 좀 각자 다르긴 하겠지만, 스스로 원하는 만큼 갖거나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므로 돈을 늘 더 원하는 상태라고 해두죠. 그렇다보니 돈에 대해 많은 책도 읽어보고, 나와 다른 세계를 살아가며 큰 돈을 굴리는 사람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도 좀 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어렴풋한 무언가를 감지했는데, 돈은 하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는 동생 하나가 있는데, 그녀는 늘 저보다 두 배 이상의 돈을 씁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버는 것 같지도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에게는 늘 많은 돈이 흘렀습니다. 많은 돈이 그녀에게 들어가고, 그만큼 많은 돈이 그녀에게서 흘러 나오는 것이죠. 어쩌면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부자가 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그릇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한거죠. 제가 만약 200만원을 벌고 200만원만 쓰면 저는 200만원의 그릇만 소유한 사람인 것이고, 제가 1000만원을 벌고 1000만원을 쓰면 저는 1000만원의 그릇을 소유한 사람이 된다고 말이죠. 이런 저의 생각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논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돈의 흐름을 감내할 수 있는 그릇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그런 와중에 '부자의 그릇'이라는 제목에 제가 꽂히지 않기가 더 힘들었을 겁니다. 게다가 부제는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이었으니 내용이 더 궁금할 수밖에요.

 

사실, 이 책은 금방 읽습니다. 일본의 경제금융교육 전문가이자 한때 사업하고 파산한 경험도 있는 저자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여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에 대해 소설의 형식을 빌려 펼쳐놓은 이야기입니다. 내용이 엄청 많은 건 아니지만 중간 중간에 책장을 멈추고 곱씹게 만드는 구절이 몇몇 있어서, 한 두번은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것도 힘입니다. 더군다나 전반적으로 훓어보는데 드는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으니 요즘처럼 바빠서 오랜시간 집중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특히 적합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가 거리에서 맥없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하여 가진 것이라고는 빚 밖에 없습니다. 아내와도 이혼했고 아이는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것 정도만 압니다. 돌아갈 집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일주일 정도의 기한이면 종료됩니다. 자판기의 따뜻한 로열 밀크티를 하나 뽑아 마시고 싶은데 주머니를 뒤져 잔돈을 살피니 100원이 부족합니다. 이상하게 가진 것이 없을수록 더 많이 갖고 싶듯이, 100원이 부족하니까 로열 밀크티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그런 그에게 낯선 노인네가 나타나 100원을 빌려줍니다. 고맙게 받아서 로열 밀크티를 마시고 있는데 이 노인네가 하는 수작이 점점 얄밉습니다. 100원은 준 것이 아니라 빌려준 것이니 반드시 갚으라고 하고, 120원 정도가 적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20원의 이자로 말할 것 같으면 법정 최고금리인 20퍼센트 수준인데, 자신이 주인공에 대해 아는 바에 없으니 신용이 없고, 그리하여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부과하는 최고수준의 금리를 매겼다는 겁니다. 주인공 에이스케, 점점 열받습니다. 100원을 빌려주어 로열 밀크티를 마시게 해준 것은 고맙지만 고작 100원 가지고 생색을 내는 것도 우습고, 자신에게 금리이야기를 나열하는 노인네가 영 못마땅합니다. 지금은 비록 실패한 사업가의 남루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신도 한때는 잘 나가는 은행원이었던데다 경영학과 출신으로서 이론에라면 누구에게라도 뒤지지 않을 거니까요.

 

하지만 어쩐지 노인이 온 모습이 심상치 않습니다. 자신을 조커라 소개하는 노인은 에이스케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온 사람 같습니다. 게다가 노인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노인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처음의 반발심은 어느덧 사라지고 노인을 대하는 에이스케의 자세는 점점 공손해져 경계심을 풀고 자신의 한때 성공담을 풀어놓기에 이릅니다.

 

이 성공담이 아마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거라고 쉽게 추측가능합니다만, 핵심은 남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재미로 듣는 것이 아니지요. 분명 이 에피소드들 사이사이 녹여진 저자의 돈에 대한 메시지가, 부자의 그릇에 대한 메시지들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돈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든가. '돈은 곧 신용'이라든가, '돈에 소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든가, '사람에게는 각자 다룰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있거든' 등등. 에이스케는 사업에 실패하고 낙담하여 좌절한 젊은 날의 저자이고, 돈에 관한 철학을 이야기해주는 일흔살 노인 조커는 수많은 경험을 축적한 현재의 저자입니다. 저자는 두 모습을 하고 돈을 떠나서 부자의 그릇과 돈의 흐름,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철학을 우화 형식을 빌려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에이스케의 성공 실패담에서는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시장조사와 자금조달, 준비단계, 오만, 몰락하는 과정을 상세히 나열하였으니 혹시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읽는다면 마음이 오만하거나 흔들릴 때 경계심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