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관심가는책200+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 윤성근

gowooni1 2015. 1. 31. 15:29

 

 

 

얼마 전 차에서 라디오 채널을 변경하다가 흥미로운 인터뷰에 귀가 꽂혔습니다.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 작은 골목에서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과 라디오진행자의 전화 인터뷰였는데, 그 내용이 뭐랄까, 좀 색달랐습니다. '잘 나가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돈벌이도 안되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장'이라면 역시 조금 소설적이잖아요. 가게 문을 열고 처음 6개월간은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책을 하나도 못팔았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7~8년을 운영해오고 있다는 것도, 점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전국에서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점도, 일본에서 잡지를 보고 찾아온 사람이 있을 정도라는 것도 전부 말이에요. 이제는 단골 손님이 점점 늘어나서 운영하기가 처음보다는 수월해졌다는 주인장의 말에 라디오 진행자는 그 단골 손님의 수가 몇 명 정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돌아오는 숫자는 살짝 더 놀랍습니다. 5~60명 정도. 처음에 '오륙~'이라는 말이 언급될때에는 '오륙백명?'하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입소문이 나서 일본에서 찾아올 정도가 된 헌책방의 단골손님이 고작 5~60명밖에 안된다는 걸 보면, 정말 헌책방 사업이 사양산업의 최고봉이긴 한가 봅니다.


당장 흥미가 생겨서 인터넷으로 그 주인장이 운영한다는 책방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그 이름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입니다. 많은 블로거들이 다녀온 후기와 함께 상세한 사진을 올려놓은데다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친절한 홈페이지 덕분에 정보를 찾기가 수월했습니다. 주인장은 홈페이지에다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찾아오는 길'까지 마치 로드뷰처럼 사진을 올려 설명해놓았습니다. 더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책방이라면 으레 알고 다녀왔을 법한 친구를 만나 물어봤더니 역시, 이 친구는 갔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 다녀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책방은 너무 영세하며, 망하기 직전이라 주변인들의 기부금으로 유지되고 있기는 한데 언제 문닫을지 모르겠다며, 자신도 북카페를 하고 싶었지만 그 책방을 보고 참 마음이 심란했다고 합니다.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아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쩐지 그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인세로라도 보탬이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으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주문했습니다. 헌책으로 살까 하다가 말이지요.

 

무엇보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저자 윤성근이라는 사람이 어떤 연유로 해서 그 책방을 열게 되었느냐를 알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책에는 저자가 책을 좋아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성인이 된 지금 그 책방을 차리고 운영하며 지니고 살아오는 가치관까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단 첫번째 신선함은 저자가 팔고 있는 헌책들은 전부 저자가 읽은 책들이라는 겁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는 대략 3000권의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다 읽어봤다는 거죠. 저자는 겸손해서 그 정도 책을 읽었다고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읽어본 책을 파는 이유는 채소가게 주인이 신선한 채소를 파는 것과 빵가게 주인이 맛있는 빵을 파는 것과 비슷하답니다. 책방 주인은 자신이 정말 감명깊게 읽은 책만 팔며 손님들에게 양질의 책을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오, 어쩐지 책방주인의 깐깐한 면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두번째 신선함은, 저자가 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헌책의 가치를 모르고 무턱대고 값을 깎아 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할인가에 팔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처음부터 이 책방을 운영한 것이 아니므로 매출과 매상을 우선하지 않는답니다. 그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이 좋은 책을 읽고 올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깨어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역 시민단체와의 네트워크가 활발한것도 그런 저자의 생각관과 일맥상통합니다. 거기다가 저자 역시 어렸을 때 책 한권 사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책에 대한 접근문턱이 낮아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그런 생각에 저는 살짝 걱정도 됩니다. "윤성근씨. 그래서야 그 책방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겠습니까? 헌책방을 운영하는 취지도 좋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헌책만 구매하게 되면 작가들은 대체 무슨 수로 밥을 먹고 삽니까? 내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헌책으로 구매했다면 당신에게 돌아가는 인세는 없었을텐데 말이에요. 인세 못받는 작가들이 어찌 양질의 생각을 하고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어요." 이렇게 말해주고 싶기는 하지만 이건 뭐 제 생각일 뿐이고 또 윤성근씨의 반박도 어느 정도 예상되고, 또 전달하면 오지랖만 넓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말렵니다.

 

참,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이라는 이름은 저자가 좋아하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패러디한 것이라고 하네요. 저자의 이상한 취향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고, 뭐 매력적이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