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몰리나와 게릴라 발렌틴은 같은 감방을 쓰고 있다. 몰리나는 미성년자를 범한 죄로 수감되었으나 모범수로 정평 나 있고 발렌틴은 다루기 힘든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혁명을 꾀하는 반동분자이다. 몰리나는 감방에서 지내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발렌틴에게 자신이 본 영화 이야기를 해주고 발렌틴은 그것을 마치 자장가 삼아서 듣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발렌틴은 계속 설사를 하면서 아픈데 사실 이는 감옥에서 고의적으로 그의 옥수수죽에 설사약을 타서 기력을 쇠하게 하려는 작전이다. 몰리나는 모범수로 일부러 발렌틴과 함께 감금된 것이었으며 교도소장으로부터 특별한 지시까지 내려받고 있다. 발렌틴과 친해진 후 그에게서 게릴라들의 은신처 및 동료에 관한 정보를 캐내오는 것이다.
몰리나는 얼핏 보았을 때 이 지시를 잘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의도는 잘 파악되지 않지만 발렌틴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에게 잘 대해준다. 설사로 정신없이 아픈 그를 위해 자신의 시트를 양보하고 빨래도 해주고 심지어 몸을 깨끗하게 닦아주기도 한다. 감방 음식 때문에 설사를 하는 것일수도 있으니 가능하면 그 음식들을 먹지 말라고 하며 교도소장으로부터 얻어온 음식들-발렌틴에게는 면회온 어머니가 가져다 준 음식이라고 속인 음식들-을 그와 함께 사이 좋게 나눠 먹는다. 잘 익은 바베큐 치킨 두 마리, 통조림 과일, 과바 페이스트, 카밀레차, 감, 푸딩 등등 그 음식들을 아낌없이 발렌틴에게 먹이고 그가 기력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게다가 몰리나는 재미있는 영화를 많이 알고 있고 그것들을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재주도 있어서 지루한 감방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발렌틴은 점점 몰리나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남아메리카 문학하면 환상 문학이라고 대표되는 기존 인식에 새로운 척도를 제시했다고 인정받는 작품이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간극을 없앴다고도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아마 시나리오를 썼다가 방향을 전환하여 소설가의 길을 걸은 마누엘 푸익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거미여인의 키스는 대부분 몰리나와 발렌틴의 대화, 혹은 소장과 몰리나의 대화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지문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또 사회적 약자인 성적소수자와 반동분자의 결합으로 이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와 연극으로 수없이 리메이크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리고 문학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그런 세상의 인식이나 평가보다 몰리나의 영화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인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발렌틴을 서서이 감정적으로 옭아매는 몰리나를, 발렌틴이 직접 거미여인이라고 칭한 데에 기인한 제목이다. 작품의 유명세 때문에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 읽으면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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