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변호사 이브 나바로는 매우 순탄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직장에서도 신임을 얻어 당당하고 자유롭게 일을 했고 밤이 되면 30대의 완벽한 아내 아순시온과 열정적이고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 딸레미 마그달레나도 잘 자라고 있다. 이 완벽해 보이는 가족의 상처라면 4년 전 아들이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이지만, 그것은 옛날 일이고 이제 그럭저럭 삶의 정상궤도를 찾은 듯 했다.
그러던 나바로에게 이상한 임무가 주어졌다. 거의 90세에 가까운 절대적 존재인 사장이 특별히 명령한 것이다. 사장인 수리나가의 명령이라면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명령에 익숙한 수리나가가 이번에 맡기는 일은 어째 망설이는 기색도 보이는 것이 부탁을 하는 것도 같다. 그 임무인 즉, 멀리 유럽에서 자기 친구가 하나 오는데 그 친구를 위한 집을 구해달라는 것, 그 집은 반드시 뒤로 절벽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집 내부에서 절벽 바깥으로 통하는 터널이 있어야 할 것, 집 내부의 창은 전부 막아야 할 것 등이었다. 좀 이상하긴 했지만 나바로에겐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순시온이 부동산사무소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식은죽 먹기였다.
근데 이 새로온 사장 친구라는, 유서깊은 가문의 귀족이라는 작가가 참으로 불쾌하고 이상하기 짝이없다. 사람을 초대해놓고 자신의 이야기만 지껄여대고 깜깜한 실내에서 까만 썬글라스를 쓴채 흉측하게 꿰매진 귀에 걸치고 추하게 늘어진 살갗을 조금이라도 더 가리려는 듯 가발가 콧수염을 쓰고 돌아다니며 기괴한 이야기만 하여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아순시온과 마그달레나도 잘 아는 것 같다. 그는 다시는 이 손님 블라드와 마주칠 일이 없을거라며 수상하게 개조된 저택을 나선다. 그 찜찜한 기분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그날밤 그는 아내와 더없이 강렬한 사랑을 나누고, 다음엔 악몽을 꾼다.
그날로 이브 나바로의 완벽해보이던 삶은 뭔가 하나씩 어긋나서, 한 번도 지각해본 적이 없는 직장에 지각을 하고, 아내와 딸은 차례로 행방불명이 된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자초지종을 따지러 찾아간 사장 수리나가는 하루아침에 예전의 안광을 잃고 그저 늙어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노인네가 되어버렸다.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듯 수리나가는 그에게 용서를 구하며 자신은 어쩔수 없었다고 한다. 수리나가는 그에게 구구절절한 설명 필요없이 수상한 서류뭉치를 건네는데, 나바로는 그걸 받아 읽고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새로온 사장 친구, 유서깊은 가문의 귀족 출신 블라드 백작의 정체는, 1450년 경 왈라키아 공국의 왕으로 올라 온갖 잔혹한 짓거리는 다 해 일명 꼬챙이 황제로 불리다가 나중 드라큘라의 전설로 남은 그 흡혈귀 본인이라는 말이다. 수리나가는 영생을 얻고자 블라드를 모셨지만 선택받지 못하였는지 영생을 얻지 못하고 그저 늙어죽을 날만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바로는 자신의 아내와 딸을 돌려받으러 절벽 위 저택을 찾아간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듯 하다가 갑자기 드라큘라가 나오는 것도 모자라 말도 안되는 엔딩으로 치닫고는 끝까지 물음표를 남게 하는 아리송한 작품. 모처럼 괜찮은 작가를 찾았다고 좋아했는데 아쉽게도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작년 2012년 지병으로 타계를 했고, 그래서 더 결말의 암시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길이 없어져 버렸다. 작가나 작품이나 뭔가 to be continued, 더 이어져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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