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마지막 통치자 서태후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별로다. 악독하다, 잔인하다, 사치스럽다, 극악무도하다 등등이 그녀에 대한 평가인데 실제로도 그녀는 인격적으로 그다지 위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한 서태후가 통치자로서 지녀야 할 덕목 중 가장 완벽하게 소화해 낸 것이라면 '강함'이다. 어둡고 혼란한 시국일수록 백성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강한 통치자를 원했고 그런 시대의 바람에 맞춰 서태후는 극강한 통치자로서 47년간 청 왕국를 지배했다. 실제로 그녀가 죽자 청나라는 곧장 멸망하였으니 서태후의 강한 통치력을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다.
펄벅의 '연인 서태후'는 역사적인 시각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그렸다. 악독하고 잔인하며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서태후가 아니라, 한 남자의 연인이고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한 후궁이며 황제를 낳은 어머니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질투를 하는 그런 여인 서태후를 그렸다. 펄벅은 어쩌면 서태후가 그렇게 강해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던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시켰는가 보다.
난아는 함풍제의 황후를 간택하기 위해 나오라는 어명을 받들고 궁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사랑하는 사람 영록이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는 간절한 부탁에도 만무하고 그녀는 기필코 황제의 눈에 들어야겠다는 야망을 품는다. 황후로는 사촌인 사코타가 간택되었지만 다행히 그녀도 후궁으로 간택되었고 자금성 생활이 시작된다. 그녀는 환관들을 조금씩 매수하여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함풍제의 부름을 받는다. 어릴적부터 환관들의 손에 놀아나 서른도 안되어 정기를 다 소진한 황제는 자신의 들끓는 욕구에 응답하지 못하는 몸뚱이 때문에 항상 욕구불만에 사로잡혀있고, 그런 자신을 남자로서 만족시킬 여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예흐나라는 그런 황제의 욕구를 채워주고 건강한 아들을 낳는다.
함풍제의 유일한 아들을 낳은 예흐나라는 자신을 황후로 승격시켜달라고 황제에게 청한다. 권력투쟁과 음모가 난무한 궁궐 속에서 아들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이미 예흐나라의 사랑의 종복이 된 함풍제는 그녀를 자희황후로 명한다. 자희황후는 서쪽에 머물렀고 사촌 사코타인 자안황후는 동쪽에 머물며 두 황후 체제가 시작된다. 자희는 나름대로 믿을만한 심복을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공친왕이나 환관 이연영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기 위해서 혹은 나라를 위해서 그녀의 곁에 머물고 있을 뿐이고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런 궁에서 자희는 더욱 사랑에 목마르고 영록을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끊임없이 계획을 세운다.
서양에서는 계속 전쟁을 일으키고 불평등 조약을 요구해왔고, 서양 문물에 대한 혐오를 지닌 중국황조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위해 지연책을 쓴다. 약조를 해줄 듯 하면서도 확실히 해주지 않는 그런 전략은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먹힐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성급한 서양인들에게는 농락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그들은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조약을 맺는데 성공한다. 그때부터 중국 땅에는 각 나라의 개신교 선교자들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며 새로운 추종자들을 만들어낸다. 한편 애초부터 허약했던 함풍제는 자희의 아들을 황제로 임명한 뒤 서거하고 자희와 자안은 태후가 된다. 아직 아들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자희 서태후는 섭정을 시작하는데 현명한 그녀는 자안 동태후를 공동 섭정자로 선포하여 반란의 씨앗을 막는다. 막강한 권력을 지니게 된 서태후는 자신을 죽이려 한 군기대신 외 두명을 능지처참하고 사랑하는 영록을 군기대신의 자리에 앉힌다. 이로써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을때까지 가까이 둘 수 있게 되었다.
10년간 섭정을 하며 태평천국의 난을 제압하고 더욱 강력한 통치자가 된 서태후는 아들이 16살이 되자 그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물러난다. 그러나 황제가 황후에게 너무 푹 빠져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데다 황후도 자신에게 고분고분 말을 듣는 기색이 없자 문득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힌다. 황후가 황제를 낳고 난 후 자신을 폐위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서태후는 자신이 직접 간택한 머리는 비고 아름다운 후궁들을 이용해 둘의 사이를 벌어지게 해야겠다는 작전을 세운다. 태후의 작전은 성공하였고 예쁘지만 타락한 후궁이 제공하는 향락에 취한 황제는 질펀한 생활을 즐기다 천연두에 걸려 죽고 황후는 목을 매 자살한다. 이로써 다시 한 번 강력한 통치권을 손에 쥐게 된 태후는 자신의 여동생이 낳은 아들을 양아들로 데려와 황제로 선포하고 다시 섭정의 이름으로 청을 다스린다.
그즈음 만만하고 약하기만 했던 동태후가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행동을 몇 번씩 저질렀는데, 이번 황제 역시 자신보다는 동태후를 더 따르는 것을 보고 심기가 거슬린 서태후는 자신이야말로 진정 황제를 사랑하는데 어째서 어린 황제들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동태후는 그저 황제들의 어리광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을 제공하고 아편을 제공하지만 자신은 강력한 통치자로 키우기 위해 적당한 운동과 몸에 좋은 음식들을 제공하고 건강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라고 조언하는 것 뿐이었다. 게다가 이번 황제도 서태후를 싫어하고 자신을 더 좋아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동태후가 지금껏 드러내지 않은 권력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자, 서태후는 지체할 것도 없이 환관 이연영을 시켜 그녀를 제거하도록 명한다. 같은 달 10일, 늘 건강하던 동태후는 갑자기 시름시름 앓고 죽어가기 시작했고, 자신의 임종이 1시간도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안 그녀는 자신의 장례식은 검소하게 치르라는 유언장을 남기고 죽는다. 이로서 서태후에게 반역할 사람은 오직 외세뿐, 자금성 내에는 존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두 명의 황제, 한 명의 황후, 한 명의 후궁, 한 명의 태후를 다 제거하고 강력한 통치자로 군림한 서태후는 70대의 나이로 죽기까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다 죽었다. 말년 그녀의 가장 큰 실수라면 텅빈 국고를 축내고 그것도 모자라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선박을 제조하기 위해 모금된 해군의 국고를 털어 이화원이라는 호화로운 정원을 지었다는 건데 그건 서태후가 자신의 외로움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자신들의 땅이 너무 커서 어떤 무력으로도 그들의 땅을 무너뜨릴 수 없으리라는 시대착오적인 맹신에서 기인했다. 어쨌든 그녀의 몰락은 청의 몰락이었고 그러한 몰락은 꼭 그녀 때문이 아니더라도 청왕조 붕괴는 시대적 요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몰락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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