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 번 길다. 게다가 난데없는 느낌에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자키 쓰쿠루에게 색채가 없다는 의미가 무엇이며 그게 어떻다는 말이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라고 하던가 아님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 라고 하던가. 구시렁거려봐야 이미 작가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붙여 나와 버렸으니 읽고 싶으면 군소리 없이 읽는 편이 낫다. 그리고 조금만 읽다보면 작가가 붙인 제목의 의미를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하루키가 지금껏 써온 소설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유복한 편에 속한다. 나고야에서 제법 부잣집 아들래미인 그는 중학교때까지 다섯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낸다. 나머지 네명의 동급생들은 각각 남자 둘 여자 둘인데 이들도 가정환경이 좋은 편인데다가 성격이 모질지 않고 둥글어서 그들은 이른바 완전한 결합으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 다만 쓰쿠루가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쩐지 자신이 그들 그룹에서 가장 개성도 없고 색채도 없는 것 같다는 건데, 이름에서만 보아도 다른 친구들은 아카(빨강), 아오(파랑), 시로(하얀), 구로(검은)라는 한자어가 이름에 녹아있는데 반해, 자신의 이름만 만든다(作)는 뜻의 한자가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이름에 딱히 불만은 없고 오히려 자신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 자신이 스스로를 개성이 없는 편이라고 여기는데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옛날부터 강하게 끌렸기 때문이다. 결국 쓰쿠루는 자신이 좋아하는 두가지, 역과 만드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고향 나고야를 벗어난 도쿄의 공대에 진학했다.
처음 일 년 간 쓰쿠루는 새로 살기 시작한 곳에서 딱히 친구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자신은 아직도 나고야의 친구들에게서 느끼는 강인한 소속감에 만족했고 그것이면 더 다른 관계가 없어도 좋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모처럼 방학때 내려간 고향에서 쓰쿠루는 모두가 자신을 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룹 중 한 명에게서 쓰쿠루가 제명되었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듣는다. 그것에 대한 어떠한 이유도 듣지 못한 채. 그러나 쓰쿠루는 마음의 상처를 너무 크게 받아서 그 이유를 제대로 들을 생각도 못하고 도쿄로 돌아와 버린다. 그리고 그로부터 7개월 이상을 오직 죽음만 생각하며 산 듯 죽은 듯 한 시간을 보낸다.
서른 여섯이 된 다자키 쓰쿠루는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짐작갈만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유명 공대를 졸업하고 철도회사에 입사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역을 설계하고 만드는 일을 하는 다자키 쓰쿠루. 그는 스무살 초반에 받았던 마음의 상처도 어느정도 극복하고 나름 건강히 지내고 있었다. 사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는 지인에게서 두 살 연상의 매력적인 여인 사라를 소개받고 그녀에게 강한 호감을 느낀다. 누군가를 강렬히 열망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은 그룹에서 제명된 이후로 처음이고, 사라도 그에게 제법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쓰쿠루와 관계를 갖고 난 이후 사라는 그와 두번째로 관계를 하는 것을 거절한다. 사라는 그와 관계를 갖고 난 후 쓸쓸함을 느꼈으며, 그건 아마 쓰쿠루가 예전 친구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과 더 깊은 사이로 만나고 싶으면 그들을 만나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십여 년 전 자신이 제명당한 이유를 듣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그어오던 적당선을 없애라고 제안한다. 쓰쿠루는 사라를 너무도 강렬하게 원했기 때문에 그러겠다고 약속한다.
이윽고 그들의 소재지를 파악해 온 사라 덕분에 쓰쿠루의 순례 여행은 비교적 빨리 시작된다. 남자인 아카와 아오는 나고야에서 비교적 잘 지내고 있었지만 여자인 시로와 구로에 대해서는 의외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어쨌건 그는 자신이 제명당한 이유와 십 여 년 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여행길에 나선다. 그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타인에 대한 마음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 그리하여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라라는 멋진 여인을 곁에 머무르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갖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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