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연을 쫓는 아이

gowooni1 2013. 6. 29. 22:39

 

 

 

할레드 호세이니의 책 출간 순서는 '연을 쫓는 아이'가 먼저고 다음이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지만, 먼저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던 나로서는 이 소설의 내용이 너무나 우울하고 슬프고 암담해서 도저히 '연을 쫓는 아이'를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걸 읽게 된건 순전한 자발적 의지는 아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소설은 '천개의 찬란한 태양'만큼 암울하지 않다. '연을 쫓는 아이'가 아프가니스탄의 남자들, 그것도 어린아이들을 그린 이야기이고,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의 삶을 그린 이야기인 차이 때문도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땅덩어리는 남자에게 훨씬 호의적인 곳이니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중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이 모인 지역 와지르 아크바르 칸 지역에 사는 아미르는 소위 엄친아다. 돌아가시긴 했지만 지성적인데다 정숙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엄마 밑에서 태어난데다 아버지는 카불 제일 가는 부자다. 멋지고 큰 집에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며 검정색 무스탕을 끌고 다니는 아버지 바바는 아미르 세상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미르가 세상의 중심인 사람이 있었으니 하인처럼 부리는 하산이다. 하산은 바바의 40년지기 친구이자 하인인 알리의 아들로 아미르보다 1년 늦게 태어났지만 둘다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없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같은 유모의 젖을 먹으며 자라났다.

 

아미르는 하산을 친동생처럼 여기며 같이 놀지만 그가 하자라인이고 하인이라는 이유로 공적으로 친구임을 거부한다. 자신과 같은 신분의 또래들이 있을 때에는 하산을 모른척 하지만 단 둘이 있을 때는 곧잘 논다. 그런 아미르가 은근 하산에게 열등감도 느끼고 있었는데 어찌 바바가 자신에게 대하는 것보다 하산을 더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바바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덕목은 아미르보다 하산이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운동신경, 용기, 대범함 등등. 아미르는 글을 읽지 못하는 하산을 가끔씩 잔인하다 싶을만큼 놀려먹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의 비천함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열 두살 겨울에 열린 연 날리기 시합에서 당당하게 일등을 하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아들로서 인정받던 날, 아미르는 자신을 위해 모든걸 아끼지 않으며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를 외치던 하산을 스스로 저버린다. 단지 바바의 인정을 더 받고 싶어서. 그 후부터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하산은 다시 아미르와 친한 사이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아미르의 양심은 그걸 방해했다. 결국 아미르는 자신의 성대한 생일파티에서 받은 돈들을 모조리 들고 알리와 하산이 사는 오두막으로 몰래 들어 가 매트릭스 밑에 넣고 나온다. 도둑으로 몰린 알리와 하산은 그 집을 떠나지만 하산은 그게 아미르의 뜻이기 때문에 체념하고 떠날 뿐이다. 알리와 하산이 떠나던 날 끄떡없을 것 같은 바바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카불에서의 삶이 예전으로 돌아가기 불가피해지자 바바는 자기 삶의 기반이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아미르만 챙겨 파키스탄으로 도주한다. 늘 어딘가 부족하고 못마땅했던 아들의 새로운 삶을 위해 어렵사리 미국으로 망명을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잘 나가던 바바가 미국이라는 땅에서 주유소 일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미르로서는 마음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의 모든 것을 묻어버리고 출발하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었다. 미국으로 온 아프간 사람들이 바바처럼 신분의 추락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허드렛일 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아프간 전직 대사, 외교관, 의사 등등은 미국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건물 청소를 하고 주유소 기름을 넣으며 살아갔다.

 

바바와 함께 싸구려 폭스바겐 버스를 타고 싸게 물건을 떼다 주말 벼룩시장에서 팔며 돈을 벌던 아미르에게 삶의 기쁨이 하나 생겼다. 벼룩시장에서 만난 소녀 소라야 타헤리는 아프간 영웅 타헤리 장군의 외동딸이었다. 소라야를 처음 본 순간부터 한시도 그녀를 잊지 못하던 아미르는 오랜 시간을 들여 그녀에 대한 마음을 키운다. 그 사이 바바는 폐암 말기가 되어 점점 죽어가고 있다가 어느 날 벼룩시장에서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암이 뇌에까지 전이된 바바는 이제 살 날이 며칠 안남았고, 아미르는 바바에게 아버지로서 해줘야만 하는 마지막 부탁을 한다. 장군의 집에 가서 정식으로 청혼을 해달라는 것. 바바는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로서 마지막 의무를 다 하고 자신이 올인했던 아들의 결혼식을 지켜본다. 아미르를 결혼시킨 후 한 달이 지났을 때, 바바는 다정한 아들내외의 모습을 흡족하게 지켜본 후 숨을 거둔다.

 

소라야와 결혼한 지 십 년이 지났을 즈음, 아미르는 바바의 절친했던 친구 라힘 칸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파키스탄에서 전화를 한 라힘 칸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에 아미르가 절대 자신을 찾아오지 않고는 못 버틸 말을 한마디 흘린다. '아직 착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 말 한마디로 아미르는 라힘 칸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카불에서 하산에게 한 그 모든 일들을. 결국 아미르는 결혼 후 처음으로 소라야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낼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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