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전부터 많은 논란이 되었던 '바람이 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애니메이션이고, 73세인 그가 은퇴를 선언한 마지막 작품이다.(몇 번이나 그러했듯 또 복귀할 수도 있겠지만) 물론 그것만으로는 논란이 되지 않는다. 그가 그린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호리코시 지로로, 카미카제 특공대로 알려진 자살특공대에 동원된 전투기 '제로센'의 설계자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릴적부터 전투기에 매료된 지로는 늘 비행기 설계자가 되는 꿈을 꾸며 자란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틈만 나면 비행기 설계공부를 하기에 여념이 없는데,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날 도쿄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바람에 날린 모자를 잡아주는 나호코를 만난다. 의미있을 것 같은 만남도 잠시, 대지진이 모든 것을 덮치고 지로는 나호코 일행을 돌보아 준 후 학교로 급히 돌아간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채 세월이 흐른다. 지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쓰비시에 입사하여 비행기 설계자가 되고 독일 데사우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비행기 설계자로서 더욱 거듭난다. 7년 후 우연히 머물게 된 일본의 호텔에서 나호코와 재회하게 된 지로는 곧장 사랑에 빠져 약혼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호코는 이미 결핵에 걸린 상태.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아무런 격식도 차리지 않은 채 둘은 결혼식을 올린 후 순간순간을 소중히 살아가는 한편, 지로는 제로센의 설계를 완수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로센은 결국 패망한 일본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고 나호코는 아름다운 모습만 보인채 운명을 달리한다.
13세기 징기스칸이 대륙을 평정하던 시절,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은 원나라가 일본을 정복하려 두어 차례 바다를 건넜고, 하필이면 그 때가 여름인지라 태풍이 불어와 결국 원의 일본 정벌은 실패하였다. 그로 인해 일본은 자신들의 나라를 하늘이 지켜주었다고 믿고 그 태풍을 카미카제, 즉 신의 바람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에서 그들은 폭탄을 싣고 적지에 뛰어들어 폭발하는 자살 특공대를 조직하였는데 거기에 이번에도 하늘이 보우하리라는 의미를 담아 카미카제 특공대라 명명하였다. 카미카제 특공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만행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 하려는 말장난이자 세계를 상대로 기만하는 것이고 또 우매한 민중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러하니 그런 제로센의 설계자인 호리코시 지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 자체부터가 문제가 안 될 수 없다. 게다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기량을 총동원하여 영상을 또 어찌나 아름답게 만들었는지. 그뿐만 아니다. 소설가 호리 다쓰오의 자전적 소설에서 그려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가미하여서 '호리코시 지로'라는 인물을 단지 비행기 설계에 미친 공학도에서 진정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순수하고 멋진 청년으로 그려놨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자칫 모든 것을 그저 예쁘고 아름답고 멋지게만 생각해버릴 수도 있겠다. '제로센의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는 자신의 꿈에 대한 열정을 가득 담고 꾸준히 한 길을 판 천재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전시중에도 눈물을 흘리며 한 달음에 달려가는 마음에 순수한 사랑이 가득한 청년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싶겠지만, 만약 그게 정말이더라도 그는 그런식으로 행동하면 안되는 인물이다. 자신의 영향력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그릴 작품이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것인지에 대해, 일종의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심사숙고 해 보아야 한다. 그가 그린 '호리코시 지로'는 충분이 아름다웠고, '바람이 분다'도 매력적인 작품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터링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잠재된 우익의 발톱을 마지막에 드러내고 은퇴한다는 소리를 들어 마땅할 뿐더러 해명을 요하고 싶다. 하야오가 20세기 초반의 시대배경과 비행기라는 소재를 좋아했다는 걸 인정하고 들더라도, 그 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여 2차 세계대전 발발의 합당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하여 영화 맨 마지막에 나온 '호리코시 지로와 호리 다쓰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문구마저도 심기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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