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영화-MOVIE

호프 스프링즈 Hope Springs

gowooni1 2013. 4. 11. 21:53

 

 

케이(메릴 스트립)가 욕실 앞 화장실에서 한숨을 몇 번 들이쉬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잠시 후 그녀가 호흡을 가다듬었던 이유가 나온다. 그녀는 결심을 한 듯 한 번 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남편의 방으로 돌진한다. 제법 예쁘게 보이려고 입은 나이트 드레스와 함께.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색하게도 남편 아놀드(토미 리 존스)는 갑자기 자신의 방문 입구에 쳐들어와 자신과 같이 자고 싶다는 아내를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다'라는 말로 거절하고, 케이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의 방에 돌아와 자신의 바보스러움에 자책하며 잠이 든다.

 

 

아직도 사랑스러운 눈매와 소녀같은 감성을 가진 케이는 남편과의 로맨틱한 관계를 꿈꾸며 어떻게든 예전의 블링블링한 관계를 되살려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놀드는 아침이면 아내가 해준 밥을 의무적으로 먹고, 볼에 키스를 의무적으로 하고, 의무적으로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고, 의무적으로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골프 채널을 보다가 잠이 든다. 이미 결혼 생활 31년차에 접어든 부부에게 있어서 사실 그건 지극히 일반적이고 평범한 모습처럼 보인다. 새삼스럽게 사랑을 운운하며 불편하게 노력을 하느니 그냥 사는게 그런거지, 하며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케이는 여전히 사랑을 하고 싶은 여자였다. 자식 부부들 사이의 사랑과 배려가 가득한 관계가 부러웠고, 남편의 손길과 진심어린 키스가 그리웠고, 거의 오년 동안 하지 않은 부부관계도 기억에서 까마득했다. 이렇게 살 수 없다고 결심한 케이는 결국 자신의 채권을 팔아 일주일에 4천달러나 하는 부부클리닉에 등록을 해버렸다.

 

 

그런 케이를 아놀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부클리닉 같은 곳에 갈만큼 비정상적인 생활을 한다고 생각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케이의 고집에 진 아놀드는 결국 부부클리닉이 있는 메인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아슬아슬하게 탑승하고, 모처럼만에 둘만의 여행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마음에 내키지 않는 여행이었으니, 아놀드에게는 호프 스프링즈에서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멀고 비싸기만 한 부부클리닉, 모든 것이 터무니없이 비싼 마을 식당, 불편하기 그지 없는 모텔의 카우치 침대, 맛 없는 음식들. 게다가 클리닉의 의사라고 하는 작자는 싸가지도 없다. 멀쩡한 부부들을 데려다두고 심문하는 바람에 잘 지내던 부부들 사이를 파탄내면서도 그걸 막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돈을 더 지불하라며 상담시간만 늘리고 돈을 더 청구하는, '변호사보다 훨씬 지독한' 사기꾼으로만 보인다. 더욱이 새파랗게 젊은 것이 부부 클리닉 의사랍시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부부 사이의 이야기를 자꾸만 물어보니까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다. 그런 의사에게 화를 내면 낼수록 케이는 그런 아놀드에 대한 인내심만 잃어가고, 남편이 자신을 모멸하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만 같다.

 

 

의사가 그들에게 내주는 숙제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하다. 첫번째는 같은 침대에서 꼭 껴안고 자기, 두번째는 부부관계 갖기. 그러나 5년 가까이 부부관계는커녕 같은 침대에서 자 본적도 없고 다정한 스킨십하나 없던 이 부부 사이에서 이것은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숙제였다. (사실 아놀드에게만 그러하다) 아놀드는 자신이 어째서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불평을 하면서도, 첫번째 숙제는 그럭저럭 완수했다. 의기양양하게 같은 침대에서 꼭 껴안고 잔 이 부부는 다음날 의사가 클리닉에서 말하는 소리에 대경실색한다.(사실 아놀드만) 성적 판타지가 뭔지 꼬치꼬치 물으며 31년을 같이 산 부부가 그런 것도 모르면 안된다는 식으로, 그걸 잘 모르니까 서로 성적으로 만족하지 않아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은근 프라이빗한 부분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 부부, 여기에서 처음으로 상대가 가지고 있는 성적 판타지에 대하여 알게 되고, 좀 더 시간이 지나자 상대가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성적인 불만들에 대하여까지 알게 된다.

 

 

그런 것들을 알았으니 이제 서로 상대에게 헌신하며 만족을 줄 수 있으면 되겠네, 하는 생각은 지나친 낙관주의. 두 사람은 그걸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난관에 봉착해버렸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두 사람은 점점 비참해져만 간다. '난 안 돼' 라는 생각만 가득하고, 자신들은 이제 서로에게 성적으로 만족을 줄 수도 없고,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도 없고, 이제 마음 충만한 부부관계를 이어나갈 수도 없다는 절망감에만 휩싸인다. 1주일간의 클리닉 상담이 끝나고 의사는 부부에게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으니 돌아가서도 계속 서로에게 충실하려는 노력을 이어가라'는 충고를 하지만,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두 사람에게 그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

 

 

케이는 자신이 이제 더 이상 행복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여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에 망연자실하며 허무한 시간을 보낸다. 아놀드는 그런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하루 아침에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이대로도 괜찮았으니 그냥 이렇게 지내자고. 그러나 그런 남편의 말을 들은 케이는 딱 한 마디 한다. 나는 그 시간들을 보내놓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자신이 없어. 아놀드는 여기서 이제 위기에 봉착한다. 자신이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으로 이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내 없는 홀아비로 늙어죽을 것임은 자명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케이 없는 자신의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다. 그리고 그 날로 정신을 차린 남편은 각 방을 쓴지 오 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먼저 들어가 결정적으로 관계를 회복시킨다. 음, 역시 모든 일에 진심이 통하지 않는 법은 없나보다.

 

 

둘의 결혼 32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하는 혼인 서약이 아름답다. 32년이 지나도 혼인을 갱신하며 이 사람만을 더욱 사랑할 거라고 말하는 아놀드와 케이. 오래 함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시간들을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가꿀 수 있는 것인지, 그러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를 하고 먼저 사랑을 주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잔잔한 휴먼 드라마 같은 영화, Hope Springs.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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