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할머니 집에 들렀다가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셀린느는 한 미국남자를 만난다. 정처없이 유럽여행을 하는 제시는 셀린느에게 꽂혀 비엔나를 하루 돌아다니겠냐는 제시를 한다. 역사가 깊은 도시를 밤새 돌아다니며 서로에 대한 대화를 끊임없이 했던 두 남녀는 사랑에 빠지지만 당장 함께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6개월 후에 같은 역 플랫폼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비포 선라이즈, 해가 뜨기 전까지 영화의 시간은 흐른다.
2004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제법 잘 나가게 된 미국 작가 제시는 파리로 팬 사인회를 온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사인을 하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던 중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 반갑게 웃고 있다. 파리에 살고 있던 셀린느는 제시가 근방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에 맞춰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9년만에 재회를 하게 되었지만 어쩐지 셀린느는 마음이 아프다. 제시는 이미 결혼을 하여 아들이 있었고, 자신은 뭐 꼭 제시를 기다린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직 결혼하지 않은 채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둘은 다시 얼마 주어지지 않은 짧은 시간동안 농후하게 압축된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또 애틋하게 키워나간다. 비포 선셋, 해가 지기 전까지 이야기는 이어진다.
또 다시 9년이 지난 2013년, 비포 미드나잇에서는 무슨 내용이 이어질 것인가. 전 2편과 같이 시종일관 대화로만 이어나가는 진행방식일거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이미 그런 진행방식에 익숙한 팬들을 위한 서비스차원에서라도, 그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볼만한 도시를 배경으로 찍었음에도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있어 배경은 그냥 대화가 이어지기 위한 장소에 불과하다.(그런 점에서는 우디 앨런의 영화와 너무 다르다)
이번엔 그리스. 영화 초반부터 두 사람은 쌍둥이 딸을 가진 부부로 등장한다. 여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뉴욕에서 온 아들을 다시 보내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조금은 예상했다시피 이 아들의 존재가 셀린느와 제시의 결혼생활에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제시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미국에 건너가 살고 싶지만, 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셀린느는 자신과 딸들의 소중한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미국에 갈 마음은 추호도 없다.
여름을 맞이하여 그리스에 초대를 받은 제시 가족은 이제 다시 파리로 돌아가야 하고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하여 친구가 선물해준 호텔 숙박권으로 부부는 모처럼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랴, 회사에 다니며 일이 치이랴 정신이 없었던 두 사람은 오랜만에 둘이서만 빈둥거리며 거리를 걷고 하나의 주제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늘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이라 언제 감정이 어긋날지 모르는 것이, 대화로만 이뤄진 이 영화를 즐기는 관건이다. 이번에도 둘의 감정은 급속도로 반전, 파국으로 전개된다. 아들의 전화를 바꿔주지 않은 것으로부터 시작한 삐걱거림은 예전의 서운함과 분노를 다 불러일으키는 촉매로 작용하여 급기야 이혼을 하기 직전까지 상태로 전개된다.
비포 선라이즈가 연인이 되는 시작이라면 비포 선셋은 가족이 되는 시작, 비포 미드나잇은 전쟁같은 리얼 라이프를 살아가는 부부들의 사랑과 연민, 우정과 증오, 동정과 슬픔 등 모든 감정이 복잡미묘하게 어우러진 진짜 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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