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중독-Reading/문학*문사철300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gowooni1 2013. 6. 21. 23:05

 

 

 

히가시노 게이고는 평이 좀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다. 다작을 하는 작가들의 특성상 '막 쓰지 말라'는 비판을 외면하기 어려운데 그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도 인간이니까 매번 아이디어가 신선할수만은 없는거고, 그러니 뭐 가끔은 덜 된 작품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걸작으로 보인다. 시간을 넘나드는 설정상 피할 수 없는 서사 전개의 복잡함과, 자칫하다가 앞뒤가 맞지 않을 수 있는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플롯도 잘 짰다. 더군다가 평소 그가 애용하던 로맨스 스릴러 장르도 아니다. 사람 죽는 이야기가 전혀 안나오진 않지만 시간이 흐른 자연사일 뿐이고, 스릴러물이 아닌데에도 자꾸자꾸 뒷장으로 넘기도록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환광원이라는 고아원에서 자란 야쓰야, 쇼타, 고헤이는 삼인조 도둑이다. 방금도 어느 부잣집 주인마님의 집을 털고 나왔다. 근데 하필이면 훔친 차가 불량이라서 도주하다 중간에 멈춰버렸고, 하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빈집으로 몸을 숨긴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곳은 시내에서도 꽤 멀리 떨어진 엄청 오래된 잡화점. 약 30년 가량은 아무도 살지 않은 것 같은 이 폐가 같은 집이 잡화점이었다는 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간판 글씨와 가게 안에 남아 있는 문구류 때문이다. 그들은 일단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가 적당히 주변 분위기를 살펴 도망가기로 한다. 근데 갑자기 그들을 숨멎게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게 우체통 안으로 편지 한통이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일단 숨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근데 아무도 주변에 왔다간 흔적이 없다. 경찰이 그들을 뒤쫓아 오지 않은 한 이 외따로 떨어진 잡화점에 새벽 3시의 시간에 들를 사람은 귀신밖에 없다. 삼인조는 일단 편지를 읽어보기로 하는데, 이 편지 내용 또한 이상하다. 요즘 세상 사람이라면 별로 고민하지도 않을 이야기들을 하길래 그들은 일단 답장을 써서 우체통에 넣어둔다. 그러자 또 괴이한 일이 발생하는데, 편지를 넣자마자 1초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편지를 한두통 주고 받으면서 삼인조는 이 편지가 단순한 편지가 아님을,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있는 집이 그냥 보통 폐가가 아님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들은 지금 30년 전의 과거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는 중이었고, 나미야 잡화점에 흐르는 시간은 문만 열고 나간 마당에 흐르는 시간과 달랐다.

 

고아원에서 멸시와 핍박을 받고 자라 남의 물건이나 훔치며 보잘것 없이 살아온 삼인조였지만, 고민 편지에 대한 해결답장을 보내줌으로써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신들이 대견스럽다. 아무런 보상도 없는 일에 재미를 붙인 세 사람은 과거로부터 날아오는 고민 편지에 대해 열심히 상담해준다. 그러다 조금씩 알게 되는 환광원의 과거와 나미야 잡화점의 과거, 끊임없이 연관되는 이 두 곳의 기원 등이 이야기 속에 풀리면서 자신들이 상담해준 사람들의 현재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실감하는 경이로운 체험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작품들이 그렇진 않지만 비교적 우울하고 슬픈 작가로 인식된 것에 반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따뜻하고 밝고 인간적이고 즐겁고 유쾌하다. 어쩐지 '결국 삶은 살만한 것이며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뉘앙스로 작품 분위기를 마무리하는 작가에게 괜히 인간적으로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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