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헤드윅, 조드윅

gowooni1 2013. 8. 17. 12:11

 

 

 

조승우의 헤드윅을 조드윅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거다. 그의 티켓파워가 얼마나 대단한지 오픈된지 1분만에 매진이라는 경이로운 기록도. 이번 조드윅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조승우가 헤드윅을 공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믿거나 말거나 카더라 소문 때문에 나도 한 번 보고 싶긴 했는데, 다행히 양도티켓을 하나 얻어 보게 되었다. 한시간이나 일찍 퇴근을 하고 백암아트홀까지 지옥철을 타고 가는데, 날은 후덥지근하고 전철에 사람은 바글바글하고 코엑스몰은 공사중이라 밥먹을 데도 마땅하지 않고 휴. 조금 일찍 자리에 앉아 있는데 한 여자가 혼자 왔는지 씩씩하게 들어와 내 왼쪽 옆에 철푸덕 앉아서는 조만간 시작할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헤드윅이 무엇이냐 궁금해 하는 사람을 위해 말하자면 뮤지컬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작품이긴 하지만 그 전에 사람 이름이다. 배경은 1961년 경 동베를린. 자유가 박탈된 공산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한셀은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아이인데, 어릴 때 자신의 신체에 이상한 짓을 많이 하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성적 정체성이 여자에 가깝게 자라난다. 더군다가 예쁘게 생겨서 남자들도 그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내성적인 한셀의 유일한 낙은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미국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듣는 것. 그러다 미국에서 건너온 남자가 한셀에게 홀딱 반해서는 청혼을 하고 미국에 건너가 살자고 한다. 조건은 성전환 수술을 하여 까다로운 출국심사를 통과하는 것이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 생각하며 한셀은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며 수술하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러나 의사가 돌팔이였는지 한셀의 수술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는데 수술자국엔 1인치의 살덩이가 남아버리고 말았고, 한셀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 남자와의 결혼생활 1년째, 헤드윅은 이혼통보를 받고 홀로 남게 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베를린에도 자유가 찾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자유와 사랑을 찾아 온 미국인데 사랑은 끝나버리고 떠나온 고향 땅에는 자유가 돌아왔다. 이런 아이러니한 자신의 처지에 연민에 빠지기보다 헤드윅은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고, 마침 근처 부유한 집 아들래미를 봐줄 사람을 구하는 자리를 얻게 되었다. 거기서 낮에는 아이들을 봐주고 밤에는 근처 바에서 노래를 하며 살아가다가, 토미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토미는 자기가 봐주는 어린 아이의 큰 형이었는데, 헤드윅의 노래에 반해서 그녀를 쫓아다니다니며 음악적인 스킬과 재능까지 고스란히 물려받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헤드윅이 사랑고백을 하며 자신의 1인치 살덩이에 토미의 손을 갖다대는 순간, 토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둘 사이는 그렇게 멀어져버린다.

 

토미는 토미 그노시스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록앤롤 가수가 되어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고, 헤드윅은 그런 토미를 쫓아다니며 그림자처럼 그의 공연을 살펴본다. 뮤지컬 헤드윅의 설정은, 이번에도 지방 순회공연을 하러 온 토미의 공연장 근처 '모텔 리버뷰'에 투숙하는 헤드윅이, 리버뷰 모텔 투숙객들을 상대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건너편에서 공연하고 있는 토미와의 관계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노래도 하고 신세한탄하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일종의 토크쇼 뮤지컬이다. 그러니까, 그 두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을 중간에 쉬는 텀 하나 없이 헤드윅이 무대를 좌지우지하며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 헤드윅을 맡은 배우의 역량 하나에만 온전히 의지하고, 노래는 많지도 않으며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다른 뮤지컬이 뮤지컬 자체에 푹 빠지도록 만드는 구조라면 헤드윅은 헤드윅에 푹 빠지게 만드는 구조인 셈이니, 조드윅이니, 교주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할 만 하달까. 어쨌든 '어떻게 하면 관객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조드윅의 고찰의 흔적이 매회 매 순간 발산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조승우와 헤드윅을 왔다갔다 하며 무대를 장악하는 그의 열띤 연기와 노래가 끝나고 앵콜 공연에서 관객들의 열기까지 다 발산된 후 다들 늦은 시간 집을 향해 자리를 뜨고 있는데, 내 왼쪽 옆에 앉은 여자는 처음처럼 혼자 자리에 가만히 앉아 시간에 쫓기는게 대체 뭐에요?라고 물을듯한 얼굴로 공연의 여운을 가슴속 깊이 되새기는 중이었다. 이 근처에 사는가 봐요?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