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잠재된 하와이언의 영혼이 희박해지는 과정

gowooni1 2013. 9. 5. 23:17

 

 

 

거의 충동적으로 우쿨렐레를 구입했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고 나서부터 계속 설레서, '내 안에 잠재된 하와이언의 영혼을 불살라 주겠어'라고 다짐도 제법 굳게 했다. '거의 충동적'이라곤 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악기를 하나 연주하고파'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우쿨렐레로 선택된 것이었다. 바이올린은 어째 너무 전문적인 것 같아서 엄두도 안 나고, 기타는 줄이 여섯 개나 되어 코드 잡기가 힘든데다가 크기도 꽤 큰데, 그런면에서 보면 우쿨렐레는 그야말로 딱이었다. 줄도 네 개 밖에 안되어 코드 잡기가 수월할 것도 같고 크기도 작으니 언제 어디서든 간편히 들고 다니며 음유시인의 정취를 마음껏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온 우쿨렐레. 한 번도 직접 본 적도 없고 기초 지식이 없으니 그나마 조금 알고 있는 현악기인 기타에 비교해서 이것 저것 만져보고 튜닝도 해보려 하는데, 어째 좀 이상했다. 기타와 달리 윗줄에서 아랫줄로 가는 화음이 점차적으로 올라가지도 않고, 또 제일 윗 줄이 두 번째 줄보다 굵기도 가늘고. 어설픈 지식으로 튜닝을 하다가 그만 줄을 좀 세게 조이고 말았는지 사고가 나버렸다. 우쿨렐레의 목이 뚝 부서지고 만 거다. 그럼에도 그때까지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당당해서, 끊어지려면 줄이 끊어져야지 어떻게 목이 부서질 수 있냐고 따지며 새제품 교환을 요청했고, 다행히 저쪽에서는 새 걸로 교환해주었다.

 

헌제품을 보내고 새 제품을 기다리는 그간 우쿨렐레에 대한 지식이 좀 쌓여서 이번엔 받자마자 이것저것 코드를 잡고 스트로크 법 연습을 했는데, 확실히 기타에 비해 작아서 그런지 그럭저럭 연주할 만은 했다. 그런데 코드만 띵깡거리고 있으면 무슨 재미란 말인가. 연주를 해야지. 아르페지오로 하나의 곡을 연주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고난도의 연주를 하겠다는 건 애초부터 포기하고 좀 쉬운 코드로 연주를 해보기로 했다. 그러다 귀에 꽂은 엠피쓰리에서 흘러나오는 제임스 므라즈의 I'm yours에 꽂혔고, 그 길로 I'm yours 연습에 올인했다. 다행히 코드는 쉬워서 네 개만 연주하면 됐는데 문제는 스트로크 기법,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노래가 영어라는 점. 노래없이 우쿨렐레만 뚱깡거리면 당연히 재미없을거고 그렇다고 노래를 하자니 천성적으로 고음불가에다가 가사도 잘 못 외우는 사람에게 이건 꽤나 큰 도전이었다.

 

I'm yours 가사를 외우는 것도 문제였지만 스트로크도 내 멋대로 잘 안되었다. 더 큰 문제는 그것들을 동시에 한번에 하려니 두개 다 되지 않는 사태 발생. 가사도 까먹고 스트로크는 멋대로 꼬이고. 거기다 코드도 이상하게 잡혀버리고 왼손가락 끝에는 빨갛게 부어가며 굳은살이 형성되는 중. 우쿨렐레를 치던사람들이 하나같이 블로그에 남긴 말이, I'm yours는 우쿨렐레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학교종이 땡땡땡'이지, 라는거다. 더 오기가 나서라도 반드시 이걸 노래로 부르면서 연주를 해보이겠어, 집념을 불태우며 드디어 완성. 동영상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찍어서 극친한 지인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다들 반응이 I'm yours가 이렇게 어두운 노래였었나? 혹은 우쿨렐레는 연주만 잘하면 되는게 아니라 노래도 잘 해야 하는 악기였구나, 뭐 이런 식이라서 나의 '잠재된 하와이언의 영혼을 불사르겠다'는 의지는 이런 식으로 희미해져 버렸다.

 

그래도 I'm yours 가사 하나만큼은 제대로 외웠으니 다행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