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Daily/일상-생각-잡담

신종 구걸

gowooni1 2013. 6. 16. 22:42

 

 

 

나는 원래 물고기를 잡아다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자는 주의라서, 길을 지나가다 간혹 적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타입은 아니다. 물론 내 주머니 사정이 별로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러나 간혹가다 예외적으로 돈을 건네주는 경우도 있다. 너무 늙어 일반적인 노동으로 전혀 돈을 벌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나, 아니면 정말로 사정이 안되서 돈이 필요해 보이는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그러니까 얼마 전에 만난 사람은 두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줄 알고 그랬다. 비가 주룩주룩은 아니어도 제법 부슬부슬 내려 우산이 없으면 흠뻑 젖을만한 밤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굴다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웬 남자가 우산도 없이 혼자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나와 친구)가 다리를 통과하며 어쩔수 없이 그 사람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간절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죄송한데요, 제가 지금 우산도 안가져오고 핸드폰도 고장이 나서 그러는데 집에 갈 차비가 없거든요, 천원만 주시면 안될까요?"

 

가만 보니 그의 말은 제법 사실 같아 보였다. 일단 하얀 폴로 티셔츠에 아이보리색 반바지를 입었는데 비를 맞아 젖어서 그렇지 딱히 후줄근해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머리도 비에 흠뻑 젖었으나 말리면 나름 스타일리쉬할 것 같고 무엇보다 사람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구조를 요청하는 눈빛이 애절하지만 비굴해보이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구걸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나는 정말로 지갑에 현금이 한 푼도 없어서 주지는 못했지만, 친구는 지갑을 꺼내 천원짜리 한장을 건네주었다. 그는 감사합니다, 라고 크게 말했고 우리는 다시 가던 길을 걸어 굴다리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어째서 천원이란 말이지? 요즘에는 아무리 싼 대중교통이라도 천원짜리 한장으로 갈 수 있을만한 곳이 없을 뿐더러, 만약 그가 일반 버스보다 싼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돈을 구한다 해도 그 근처에는 마을버스 정거장도 없었다.(물론 일반 버스 정거장도) 정말로 집에 가기 위해서였다면 최소 2천원은 요구했어야 마땅하고, 사실 2천원이나 필요하다면 택시를 잡고 집으로 가서 돈을 건네줄 수도 있었을텐데. 어째 속은 듯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뒤를 돌아 아직도 굴다리 안에 있는 남자를 관찰해보기로 했다. 역시나. 그는 지나간 우리가 쳐다보고 있을거라고는 생각못하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돈을 구걸하고 있었다. 아마 똑같은 멘트를 날리고 있는지 아까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핸드폰을 보여주는 제스처를 취하며.

 

"대체 뭐지 저건? 신종 구걸 수법인가?"

"놔둬. 저렇게라도 돈이 필요한가 보지."

 

다시 방향을 틀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이리저리 상상해보았다. 멀쩡한 허우대를 이용하여 진짜 적선을 전문적으로 하는 노숙자(그러기엔 옷이 좀 깨끗했지). 혹은 비만 오면 심심해서 굴다리 밑을 찾아 다니며 돈을 버는 앵벌이꾼(그건 약간 가능성도 있겠어). 그것도 아니면 담력도 쌓고 용돈도 벌겸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진심이 통하는지 시험을 해보려는 배우지망생(그러기엔 좀 어딘가 허술하지 않아?). 그것도 저것도 다 아니면 그냥 정말 돈이 필요했는데 한 사람에게 달라기 미안해서 분산구걸한 순수한 일반인일지도.(뭐 그거라면 다행이지만)